가풍(家風)

 

 

                                                                                    고봉진

  

가풍이란 말을 화제에 올리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행세깨나 하던 집안 출신들이 많다.

가풍은 집집마다 지니고 있는 독자적인 생활습관과 기풍(氣風)을 일컫는 말로, 달리 표현한다면 한 집안의 문화이다. 그 집의 구성원이 긍지를 가지고 의식적으로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음 세대로 면면이 이어질 것을 바라고 또 그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개념이다. 기존 구성원이 결혼이나 입양에 의하여 새로 참입하는 새 구성원에게 전통적인 자기들의 문화에 동화하도록 요구한다. 가장(家長) 세대 즉 노(老) 부부 세대(世代)가 젊은 자식 세대에게 자기들의 생활방식을 답습해 가도록 희망하고, 그들을 의도적으로 교육하고 감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핵가족화 되어가면서 가풍이라는 말이 거의 풍화 되고 말았다. 요즘은 앞뒤 세대가 이어가는 전통적 가족 문화라는 뜻보다는 하나의 단독 세대(世帶)가 지닌 가족 문화라는 정도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한 세대의 가족 문화라 해도 전 가족이 공유하는 문화라는 측면도 거의 실종되어 가고 있다. 가장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각 가정의 중심이 다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맞벌이 세대의 부부 사이에는 누가 누구에게 의지한다는 종속관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각기 다른 생활환경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집에 돌아와 머무는 동안에도 취미나 관심사가 공통된 것이 드물다. 두 사람을 한동안 굳건한 문화공동체로 묶어주는 것이 있다면 오직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이다. 그러나 각 가정이 소자화(少子化 )되어가는 추세라 그 기간 또한 그리 길지 않다. 아이가 자라면 그들 역시 부모와 떨어져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부모와 같은 문화를 지니기보다는 자기 중심의 세계에 머물며, 자기 고유의 신세대 생활문화를 구축한다. 그러고는 그 새로운 개인 문화를 지니고 언젠가는 새 배우자를 만나서 집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이 가정의 축이 되건 말건 독자적인 문화를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의식주에서는 가족과 공동생활을 하는 한, 복장을 제외하고는 혼자만 검소한 생활을 하거나 사치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별로 크지 않다. 다만 학문, 예술, 도덕, 종교, 정치에 대한 태도(attitude)에서 그 독자성이 나타난다. 특히 예술 부문에서는 창조적인 참여를 할 때는 물론이지만, 흔히 취미생활이라고 표현하는 어떤 예술을 즐기는 생활자세만으로도 그 사람의 특수한 개성적인 문화가 형성된다. 역설적인 표현으로 요즘은 가족 구성원이 모두 자기만의 개인 문화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각 집안의 새로운 가풍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세상이 변모해 간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하게도 옛날의 전통적인 의미의 가풍이 아직도 엄존하고 있는 집도 흔히 볼 수 있다. 안주인이 가족 문화를 지배하며 다른 일방이 그에 맹종하는 내 주장 가풍이다. 대체로 지배자인 당자를 빼고 나면 가족 전 구성원이 그러한 가풍에 별로 긍지를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굴절된 생활문화이다. 남권 우월 시대의 낡은 미망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의 망언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여자 엉덩이에 깔려 정신을 못 차리는 주체성 없는 사나이’, 그것도 나이깨나 잡수신 남성 동지를 볼 때는 어이가 없어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된다. 그 가련한 사나이,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를 위해 밝혀둔다면 그런 가풍은 인류 사회에서 가장 오래되고 뿌리 깊은, 그리고 동과 서를 가리지 않고 양 세계를 걸쳐 아주 흔한 생활양식이다. 그런 가풍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랴 하고 고자세를 취하기에는 나도 확률적으로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