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과 나

 

 

                                                                                        엄정식

  

나는 버트런드 러셀을 직접 만나거나 그와 서신을 교환한 적은 없다. 그러나 주위의 어떤 사람 못지않게 그는 나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며, 또 나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아마 가장 진정한 의미로 나는 그를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의 어떤 점이 존경스러운지 지적하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인물 중에도 우리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고, 소박한 인물 중에서도 존경할 만한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의 자유분방함과 다양성, 그리고 모순과 역설투성이의 삶 그 자체를 존경하는지도 모른다.

러셀은 현대를 이끈 최고의 철학자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98세라는 긴 생애를 살아가면서 세계대전을 두 번씩이나 겪었을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중심에 서서 하나의 시대 정신으로 군림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의 생애와 사상은 얼핏 보기에 서로 상반되는 다양한 측면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가령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수리철학자이며 논리학자이기도 하지만, 해학과 기지가 넘치는 문장가로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결혼을 네 번씩이나 했던 자유사상가이고, 피카소가 화풍을 바꾸듯 자기의 철학적 입장을 자주 번복할 정도로 분방한 학자였지만 결벽증 환자에 가까울 만큼 엄격한 도덕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실증주의적 경험론자로서의 일관성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현대의 가장 위대한 비판 정신의 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러셀은 철저한 평화주의자로서 과격한 반전운동을 전개하다가 90 객으로 옥고를 치른 적이 있으며, 기독교와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가장 일관되게 비판적이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그를 ‘만났다’는 느낌이 든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그의 『서양철학사』와 『자서전』, 그리고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읽었을 때였다. 나는 그때 사랑과 인식과 신앙의 문제로 번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더구나 분단된 조국의 한 청년으로서 민주화와 산업화의 와중에서 이념적 갈등을 체험하기도 했었다. 특히 ‘나는 빛이기 때문에 외롭다’든지, ‘너희들은 다만 행복하라. 나는 진리와 함께 괴로워하리라’고 설파한 니체로부터 헤어나지 못하여 정신적 혼란은 더욱 심화되었다.

그때 마침 노년의 톨스토이에게 쓴 젊은 로맹 롤랑의 편지를 우연히 읽고 용기를 내어 나는 러셀에게 긴 편지를 썼다. 아마 인류의 장래와 조국의 운명과 나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서툰 영어로 며칠에 걸쳐서 작성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그 편지를 부쳤던 것 같았으나 롤랑의 경우와는 달리 결코 답장을 받지는 못하였다. 러셀이 이 대학을 떠난 지는 이미 40년도 더 지났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몰랐었던 것이다.

그 후 25년이나 지난 1987년 겨울 영국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었는데, 이때 나는 비록 간접적으로나마 러셀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 교정을 두루 살피며 그가 제자인 비트겐슈타인에게 논리적 원자론을 강의하던 곳, 교수 식당, 연구실 등에서 그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런던으로 가서는 고색창연한 어느 성당에서 그와 이른바 ‘세기의 논쟁’을 벌였던 코플스톤 신부와의 면담을 통해 그 당시의 회상에 함께 젖어보기도 하였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는 신의 존재에 관한 러셀과의 논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러셀의 불가지론적 입장을 논파했다고 믿었는데 요즈음 다시 생각해 보니 결국 그 존쟁은 무승부로 끝난 셈이더군…….”

그렇게 말하는 그의 노안에서 러셀에 대한 존경의 표정도 읽을 수 있었다.

러셀을 최근에 다시 만났다는 느낌이 든 것은 우연히 그의 자서전을 다시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대학 시절에 부분적으로나마 그것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 왔는가’ 하는 대목에서였다. 러셀에 의하면 단순하지만 저항하기 어려운 세 가지 열정이 그의 생애를 지배했는데, 그것은 여인을 향한 사랑과 지식에 대한 갈망과 인류에 대한 연민이 그것이었다. 여인을 향한 사랑을 통해서 그는 삶의 절정에 이르는 즐거움을 맛보았고, 외로움의 심연에서 헤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예술적 감흥과 종교적 신비도 체험할 수 있었다. 이에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고 그는 절대적인 확실성을 성취하기 위해 지식에 대한 갈망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심성의 본질과 물질의 구조와 우주의 변화에 대해서 끊임없는 탐구를 멈추지 않았지만 별로 얻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사랑과 지식은 그것을 갈구하면 할수록 우리를 높은 곳으로 고양시켜 주지만 인간의 수난과 질곡, 고통과 질병, 고독과 가난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것이 그가 인간에 대한 연민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별로 이룬 것은 없지만 그것은 바람직한 삶이었으며,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렇게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러셀은 자신의 글을 마무리한다.

대학 시절에 이 글을 읽었을 때 나에게는 결연한 의지와 비장한 결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 나에게 러셀을 만났다는 느낌이 든 것은 인생의 목표를 제시해 준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그렇다면 요즈음 다시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히 결연한 의지나 비장한 결심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냉정한 반성이나 차분한 회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내가 그것을 늘 의식했던 것은 아니지만 러셀의 목표가 실제로 내 삶의 지침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제인가 나는 어떤 형태로든 러셀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만남은 과연 어떤 모습을 띌 것인가. 그러나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은 다시 한 번 러셀과 대면하게 될 나 자신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