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 가자스라

 

 

                                                                                문향선

  

장마철로 접어든 토요일 오후, 무료를 떨치기 위해 몸이 곳곳에서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탈까 걸어갈까 망설이다가 그냥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지는 헌책방이 있는 동네. 한 시간 반은 족히 가야 하는 곳이니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어느 소설가는 말했다. 글쓰는 사람은 걸어다녀야 한다고. 차를 타면 놓치는 것들이 많다고 한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건과 사람들, 하다못해 어느 담장 아래 피어 있는 민들레 홀씨라도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가 나를 길로 내몰았다.

일본의 어느 학자들은 파리의 센 강변에 있는 헌책방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고 했다. 이쯤이면 학문을 넘어 호사에 이르는 취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거기서 생각하는 것은 헌책방이 점점 줄어든다는 안타까운 하소연이다. 고서를 만나러, 혹은 어떤 책의 초판본을 찾으러 가는 그네들의 나들이는 나 같은 간서치(看書痴)에게는 꿈에서조차 상상할 수 없는 호화스런 것이었다.

다리가 팍팍해질 쯤에야 헌책방이 있는 동네에 들어섰다. 버스를 타고 다닐 때는 무심했는데 걸어서 당도하고 보니 어쩌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 모습인지……. 헌책방 주인들 역시 변함없이 고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젊은 주인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생계를 위한 것이건 책이 좋아서였던 간에 묘하게도 나는 정답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닌가.

재일교포 출신 소설가인 유미리가 왜 서점은 창이 없는가에 대해서 항상 의아해 하다가 『창이 있는 서점에서』라는 산문집을 냈다. 그 책을 읽고 나도 같은 의문을 가지고 서점에 갈 때마다 눈여겨보았지만 역시 창이 있는 서점은 없었다. 이곳도 창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창이 없어도 매캐한 책 냄새는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한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책들도 많았다. 깨끗한 책들도 적잖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을 보며 ‘책천자(冊賤子)는 부천자(父賤子)’라는 말을 떠올렸다. 책을 천하게 여기는 것은 아버지를 천하게 여기는 것과 같다고 했다는데, 바닥에 먼지를 쓰고 있는 책들은 그 말을 무색하게 했다. 행여 내 책도 헌책방의 한자리를 차지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왠지 두렵고 서글픈 마음이었다.

서울에서 삼대째 헌책방을 연 ‘공씨책방’의 공진석 씨는 자신의 저서를 한 권 냈는데, 이런 글이 기억에 남아 있다.

“책을 내도 헌책방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생명이 긴 책을 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헌책방의 서가에 꽂힐 수 있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이라야 만이 헌책방에 꽂힐 수 있다.”

서릿발 같은 말이었다.

다락방만큼이나 작은 공간에 책은 천장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더운 날씨에 나는 땀을 뻘뻘 흘렸다. 책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는데 할머니는 나의 취향도 모르면서 이 책 저 책 권한 것이 여태 마수도 못한 눈치였다.

책을 뒤지다가 마침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란 책이 눈에 띄었다. 말바우 시장 앞을 지나올 때 보았던 한 남자가 생각났다. 길을 건너기 위하여 신호등 앞에 서 있었는데 배우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생긴 남자가 우왕좌왕 설레발을 치며 돌아다녔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점잖아 보이는 노신사에게 다가가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내가 이래 봬도 명색이 황제 폐하인데,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 이건 환장할 노릇 아니요?”

“이런 정신 나간…….”

노신사는 때맞춰 신호등이 바뀌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삶이 그를 어떤 길로 내몰았건 슬픈 광경이었다. 얼마나 원대한 뜻을 품었으면 자신을 황제라고 생각하는 걸까. 좌절된 꿈이었지만 그는 아직도 현세의 황제로 존재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깨어진 꿈의 허상을 좇는 남자, 어쩌면 너무 많은 책을 읽어 환상에 젖어 사는 남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할머니는 쉼없이 책을 권하며 내 눈치를 살피기에 이르렀다. 은근한 채근이 부담스러워서라도 마수의 기쁨을 안겨줘야 할 것 같았다. 한 아름의 책을 골라냈는데 거의 읽은 책이니 이건 또 무슨 마음의 조화인지 모르겠다. 『새의 선물』(은희경), 『헤세 시집』, 『해방 후 정치사 100장면』(김삼웅), 『구로 아리랑』(이문열), 『세월』(버지니아 울프), 『암태도』(송기숙), 『북회귀선』(헨리 밀러), 『노동의 새벽』(박노해), 『비명을 찾아서』(복거일), 그리고 또 다른 몇 권의 시집과 소설책들이었다. 배낭에 넣고 매어 보니 어깨가 뻐근했다. 그런데도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내 서음(書淫)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이달로스의 미궁을 방불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책을 헐값에 사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다. 오래 된 책일수록 값이 비싸야 할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출판 연도를 확인하고는 천 원 혹은 천오백 원을 불렀다. 헌책과 새 책의 차이는 엄청났다. 누군가의 손길이 스쳐갔던 책이라고 해서 작품에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다. 집에 가서 잘 닦아내고 손질하면 반듯해진다. 책장에 꽂으면 마음은 더없이 흐뭇하다.

가끔 헌책방에 가 보자. 거기서 보석 같은 명작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절판된 책도 손안에 쥘 수 있다. 서가 곳곳을 뒤지는 재미도 있다. 창이 있는 일본의 어느 서점처럼 고양이가 있어 눈을 맞출지도 모르지 않은가.

 

 

 <문학과 의식>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90년). 현재 가교문학 회장.

수필집 『오래 된 시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