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향기

 

 

                                                                                한혜경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풋풋하면서도 알싸한 향기가 스칩니다. 여기저기 코를 킁킁거리다가 현관 옆 방문 위에 매달아 둔 장미꽃 다발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꽃잎의 끝이 거무스름하게 변한 채 말라가고 있더군요. 그런데도 맵싸한 향이 희미하지만 확실하게 맡아졌습니다.

졸업 후에도 정기적으로 모여 소설 공부를 하는 제자들이 가끔 안부전화를 합니다. 졸업했다고 끝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그들이 기특하여 짬을 내어 지난 주 그들 모임에 갔습니다.

각자 창작한 소설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고민을 얘기하고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갔고 저녁을 함께 먹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졌지요.

잘해 보려고 하지만 재능이 따라주지 않는데서 오는 회의,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 마음들을 털어놓는 그들은 곧 젊은날의 내 모습이었습니다.

그 날 그들이 건넨 한 다발의 붉은 장미. 꽃병에 꽂을까 하다가 신경써서 고른 듯 꽃봉오리 모양도 예쁘고, 그들의 마음을 좀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벽에 걸어 놓았지요. 그리고는 그만 잊고 있었는데…, 나 아직 여기 있다고, 나 좀 보라고 슬쩍 신호를 흘리는군요. 싱싱한 원래 자태는 사라졌지만 향기가 남아 나를 불러서는 그 날 제자들의 진지하던 얼굴과 젊은날 같은 고민으로 괴로워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박완서의 소설이던가요,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에도 장미꽃 향기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장미꽃은 저기 있는데 향기는 온 방안에 있는 걸 보면서 주인공은 하나의 물건이 두 가지 방법으로 존재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또 불 끄는 것을 잊어 새까맣게 태운 소꼬리를 두고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숯처럼 탄 소꼬리를 버린 지 오래인데도 고약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녀는 소꼬리가 소꼬리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집안에 남아 있는 거라고 여깁니다.

그리고는 몇 년 전 시위 도중 죽은 아들의 존재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집안에 아무도 없을 때 아들이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말을 걸면 집안이 곧 아들로 가득 찬다는 거지요. 향기가 장미꽃의 또 다른 존재이듯이 보이지 않는다고 부재하는 게 아님을 강조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 전에 본 한 미국 드라마의 장면이 기억나는군요. 다정한 노부부가 있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아내가 죽습니다. 아내를 그리워하던 노인은 아내가 생전에 녹음해 남겨놓은 자동응답기의 음성을 되풀이해 들으며 눈물짓곤 합니다. 사실 그는 응답기를 사려는 아내에게 그런 물건이 무슨 소용이냐며, 기계에 저장된 소리는 싫다고 아내를 타박했었죠. 그런데 그 기계가 이젠 그를 위로하는 물건이 된 것입니다.

필요 없다고 여겼던 것이 어느 순간에는 절실해질 수도 있다는 삶의 역설, 하찮은 일로 아내 마음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한 뒤늦은 그의 회한이 가슴에 아릿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통해 아내의 흔적을 되새기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지요. 우리 나라에 아직 자동응답기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도 그런 경험이 낯선 것은 아닙니다. 함께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눈빛이나 체취를 느끼고, 목소리나 글에서 그를 기억했던 적이 있다면 말입니다. 한 존재를 깊이 생각하게 되면, 길을 걷거나 집 앞에서 벨을 누르는 잠깐 동안, 또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얘기하는 일상 사이 사이에 어디선가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지요.

주변을 돌아보면 당연히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실망감이 아니라 뭔가 충만한 느낌이 가슴 끝까지 차오르는 건 옆에 없어도 함께 있다는 확신,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바쁘게 살아가면서 여기저기 생활의 때가 끼면서 그런 느낌들과 멀어진지 오래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해결하기에도 정신 없는데 보이지 않는 눈빛이나 냄새로 누군가를 기억하고 사는 건 사치처럼 보이니까요.

더욱이 확실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들에게 곁에 없는 존재를 생각하고 믿고 하는 것들은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한 치의 여유 없이 몰아치는 일과에서 잠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을 혼자 조용히 응시할 때의 고즈넉함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느낌의 소중함을 압니다.

사실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이 일 저 일로 또는 이 사람 저 사람과의 관계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을 때는 다른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어렵지요. 몸 안에서 뭔가 빠져나간 듯 허전하고 공허할 때에야 비로소 다른 존재를 생각하고 그리워합니다. 지금 곁에 없는 존재들의 은밀한 속삭임에 귀기울이는 시간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에 요란한 것들이 많아지고 있어서인지 그런 시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젠 바싹 말라 향도 나지 않는 장미꽃 다발. 아직 방문 위에 걸려 있습니다. 잊고 있던 것을 되살려준 풋풋한 향이 여전히 나는 듯해서 선뜻 버리기가 어렵군요. 오갈 때마다 한 번씩 바라보며 제자들의 얼굴과 젊은날의 내 모습을 떠올립니다.

 

 

 

<계간 수필>로 등단(98년).

현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