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시 이 산중에 있으련만

 

 

                                                                                     許世旭

  

나는 비몽사몽간에 벌떡 일어났다. 비척거리며 서재로 건너갔다. 잠결에 보았던 그 파일을 허둥지둥 뒤졌다. 열흘이 넘도록 찾았던 ‘아내의 기도’가 글쎄 그 속에 얌전히 누워 있질 않았겠는가?

10여 일 전, 우송이 내게 전화를 주셨다. 지지난 달 ‘치과의원 대기실’과 함께 건네주신 ‘아내의 기도’가 이제 쓸 일이 없으면 돌려달라는 말씀이었다. 지당한 말씀이라 우선 “예” 하고 <계간 수필> 전용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예의 원고는 틀림없이 거기에 있으려니 하고 두 번 세번, 아니 이 잡듯이 추심해도 흔적이 없었다.

이튿날, 우송께 전화를 드렸다. 제게는 없으니 선생의 그 전용 서랍을 다시 뒤져 보시라고. 사나흘 지나서 다시 전화를 드리면서 그 원고의 안부를 물었다. 이 잡듯이 뒤져도 없노라 하시면서 입맛 다시는 소리가 수화기에 남아 있었다.

낭패였다. 공이 또 내게로 넘어온 것이다. 머리를 긁었다. 나는 분명히 드렸는데. 슬그머니 원망이 치밀었다. 아~니 한평생 수필을 쓰신 분이 어쩌자고 두 편을 주시면서 나더러 한 편을 고르라 하신담?

그 날부터 숙제가 생겼다. 예의 원고가 내게 있다면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성립됨은 물론 끔찍한 장물애비일 수도 있어서였다. 그보다는 오랫동안 모신 분에게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 거기다 이러한 일로 왜 안달을 부리는지 자신을 쥐어뜯고 싶었다. 그렇게 자나깨나 뒤척인지 일주일쯤, 그 날 밤 꿈인 듯 환시인 듯 파일을 본 것이다.

그 파일이란 <계간 수필>에 게재했던 원로 작가들의 육필 원고 모음이었다. 언젠가는 귀중한 문학 사료로 남겠지만 내게는 시쳇말로 의외의 ‘콩고물’이었다.

그 원고를 찾자 어서 날이 밝길 기다렸다. 당장 우송에게 그 결과를 알렸다. 나의 불찰과 성급한 수집벽이 저지른 사건이었지만 내가 어디서 석방된 기쁨으로 울렁거렸다.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그 원고를 들고 갔다가 깜빡 반환을 잊어먹곤 되레 게재했던 원고와 함께 수입 잡기에 바빴던 것이다.

아내에게도 숙제가 있었다. 2년 전 서울 강남에서 용인 수지로 이사 나올 때 집 문서를 잊은 것이다. 우리들 구세대는 집 문서로 불리는 소위 부동산 등기필증이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는 집을 팔고 살 때 필수의 증빙 서류였던 것이다.

아내는 틈만 나면 그걸 수색했었다. 안방의 옷장과 문갑은 물론 내 책장까지 뒤졌다. 그때마다 나의 설법은 마찬가지였다. 우리들의 소유권이 분명하고 인감증명이 있는 한 그 따위 등기 문서는 있으나마나라는 법률적인 해석을 앞세웠고, 집안에 있는 문서 쪽이 발이 달려서 어디로 가겠느냐는 늘쩡한 발상을 폈었다. 더구나 그 미물이 이 세상 광명 천지 어느 구석에서라도 건재할 것이라는 만물각자설로 얼버무리면 아내는 으레 입을 삐죽거리고 말았다.

최근 들어 아내의 수색전은 막바지에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전 이사올 때 분실한 것을 2년 후 전세 만료로 다시 이사할 때까지 찾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지 않았다. 어젯밤 아내는 막내의 방, 옷장과 책장, 장농과 문갑을 샅샅이 뒤지는 가위 소탕전을 벌였다. 오늘 아침, 과연 희색이 만면했다. 글쎄 예의 집 문서가 막내의 헌옷 꾸러미 속에 깊숙히 묻혀 있더라는 것이다. 필경 이삿짐 센터의 소행이라고 추정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2년 동안의 난제가 하루 아침에 풀리고 만 것이다. 굳이 노심초사하면서 찾지 안 했을지라도 며칠 후 이사 대작전 때 낙엽을 쓸다가 알밤이 굴러나오듯 불거질지도 몰랐다. 그래도 아내를 위해 그의 추심은 바람직했다. 적어도 뿌듯한 성취감을 안을 수 있어서였다.

당(唐)나라 때 가난뱅이 시인 가도(賈島)는 한때 출가(出家)했었다. 문호 한퇴지(韓退之)의 권유로 환속했지만 환속한 뒤 건진 벼슬이 주부(主簿)라는 말직에 그쳤었다. 기껏해야 장부나 문서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이가 죽자 그의 유산으로 병든 노새 한 마리와 낡은 거문고 하나뿐이었노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도사를 찾으러 산중으로 들어갔었다. 소나무 아래서 도사의 동자를 만났다. 도사 계시냐고 물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도사는 마침 약재 캐러 나가셨다 했다.

가도는 난감했다. 모처럼 산중까지 친구 찾아 발섭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누구를 탓하랴! 그 도사를 찾긴 찾아야 했는데. 그때 동자의 말이 더욱 어른스러웠다.

“필시 이 산중에 계실 텐데, 구름이 저토록 자욱해서 계신 곳을 알 수 없어요”라고.

동자의 핑계는 저 변화막측한 구름에 돌렸다. 그리고 틀림없는 추정을 내렸다. 자기의 주인인 도사는 이 산중에 있노라고.

이상은 가도의 시 ‘은인 군자를 찾아서’의 내용이었다.

 

열흘이 넘도록 안달을 떨었던 나나 두 해가 넘도록 초지일관했던 아내, 모두가 그 동자만큼 느긋하지 못한 것이다. 필시 우리 집에 있으련만, 동자가 필시 이 산중에 있으려니 했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