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품

 

 

                                                                                    강호형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키 크기 순으로 출석번호를 매겼다. 키에 관한 한 부모님의 혜택을 받지 못한 나는 6년 내내 10번 밖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키 큰 아이들이 부러웠지만, 그렇다고 키 작은 것을 비관하지는 않았다. 키가 커서 공부 잘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을 뿐더러, 그런 아이들이라고 다 힘이 센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 크고 싱겁지 않은 놈 없다”는 속담을 응원가삼아 스스로 용기를 복돋우던 터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난 어느 날, 여고생 교복이 단정한 집안 여동생을 만났다. 대학생 오라비로는 첫 대면인 터라 빵까지 사 주면서 한껏 폼을 잡았건만, 먹을 것 다 먹으면서 하는 말이 사뭇 충격적이었다.

“오빠는 다 멋있는데 단 한 가지, 키가 너무 작아서…….”

이 아이가 겨우 말꼬리 사리는 걸로 빵 산 준 값 하려나 했는데, 다음 말을 듣고 보니 빵값 따위는 관심 밖인 모양이었다. 제 친구 중에 착하고 예쁜 애가 하나 있어 나를 소개하고 싶어도 ‘그 기집애’는 키 큰 남자만 찾는다는 게 아닌가. “키 큰 놈 치고…”의 응원가가 공염불이었다. 싱겁다 못해 맹탕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한 5㎝만 클 수 있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이후 구두 뒷굽을 한껏 높여 신고 다니다가 빙판에 큰 댓자를 그리며 나가떨어진 일은 차마 누구에게 말도 못했다.

키가 작아 손해를 봤으면 다른 혜택이라도 있어야 공평하다. 그러나 징병검사에서는 갑종 합격 판정이 나왔다. 안 믿을지 모르지만 당시 우리 나라 성인 남자의 평균 신장보다도 1㎝ 이상 컸으니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갑종 합격증이 키 큰 남자 좋아하는 여학생의 환심을 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맥빠진 그 응원가나마 되뇌이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이었다. L백화점 지하 광장 분수대 앞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아 붐비는 인파 속을 헤매다가 얼굴 없는 처녀와 마주쳤다. 내가 얼굴도 못 보고 처녀임을 알아차린 것은 옷차림 때문이었는데, 운동화 신은 발등에서부터 군더더기 없이 쭉 뻗어 올라간 청바지 가랑이와 텍사스 풍의 가죽 벨트와 그 위에 받쳐 입은 회색 티셔츠의 바스트 부분까지만 보고도 직감이 갔다. 내 키로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 고개를 한것 제껴 쳐다보니 과연 아직 여고생 티도 다 벗지 못한 앳된 처녀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머리가 그녀의 어깨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키가 그만큼이나 크면 얼굴은 당연히 거인 특유의 큰 골격일 법도 한데, 어느 미인 못지않게 작고 곱고 예뼜다. 누구를 찾는지 어슬렁 어슬렁 분수대 주변을 맴돌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캐주얼복을 광고하러 나온 슈퍼 모델이 아닌가 싶을 만큼 멋져 보였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백화점에도 그녀의 패션과 같은 옷을 파는 곳이 있을 터이고 보면, 그 상인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공짜 광고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멋져 보인다고 아무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같은 옷만 입으면 자신도 그렇게 보일 것으로 착각한다. 제품업자나 상인들은 그런 심리를 잘 안다. 그렇다고 같은 제품을 계속해서 만들지는 않는다. 한 번 판 제품이 수명이 다해서 또 사러오기를 기다리다가는 망하기 십상이다. 색깔 조금 바꾸고, 디자인 조금 고치고 하면 최신 유행이 되고, 그거 안 입고 안 쓰면 속절없는 ‘촌놈’이다. 색깔 조금 바꾸고, 디자인 조금 고친 것은 순전히 거품이다. 그래도 촌놈 안 되려면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거품을 돈 주고 사야 한다. 같은 물건도 놓인 장소 따라 값이 다르고 매장의 분위기 따라 천차만별이다. 클래식 음악 틀고 샹들리에 밝히고, 층마다 주 고객 성향 따라 향수까지 뿌려놓으면 촌놈도 단박에 귀족이 되어, 잔고도 없는 신용카드 들고 구름처럼 모여든다. 멋진 유니폼에 매너 좋고 인물 좋은 종업원들의 서비스까지 받다 보면 물건 값이 비싸다는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양 머리 내놓고 개고기를 팔아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10년 전에 버린 옷과 똑같은 디자인이라도 복고풍이기 때문에 안 살 수 없고, 넝마 뭉치 속에서 나온 찢어진 청바지는 개성을 살리기 위해 사야 한다. 그러니 클래식 음악, 샹들리에 불빛, 성향에 맞는 향수 냄새, 인물 좋고 매너 좋은 종업원의 서비스`─`요컨대 효용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거품을 웃돈 얹어주고 사는 셈이다. 물론 그것도 신용불량자가 되지만 않는다면 가치 있는 소비재일 수 있다.

신문에 끼여 오는 광고지가 신문보다 훨씬 고급 지질에 고급 인쇄고, TV에서는 무엇을 선전하는지 알아보기도 어려운 ‘현대감각’의 광고가 짜증나게 이어진다. 이게 다 마케팅이란 고상한 용어로 포장된 ‘거품 내기’ 전략이다. 물론 거기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은 결사적으로 ‘촌놈’되기를 거부하는 소비자들이 물어야 한다. 벌어도 벌어도 모자라고 뛰고 또 뛰어도 점점 더 바쁘다. 견디다 못해 죄짓는 사람도 있다. 죄도 못 짓고 자살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죄라 해도 양심은 있는 셈이다.

맥주는 적당히 거품이 떠야 맛이 있다지만, 그 거품은 마시면 좋고 안 마셔도 그만이다. 키 5㎝도 크면이야 좋겠지만 안 커도 아무 지장이 없다.

구두 굽 높여 신고 다니다가 빙판에 나둥그러진 일이 두고두고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