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이었을까?

 

 

                                                                                          안인찬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는 때도 있지만 별것도 아닌 것이 잘 풀리지 않는 때가 있다. 일이 잘 풀릴 때야 풀리는 대로 즐기면서 넘어가면 그만이다. 문제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인데 그럴 때는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계획과는 달리 빗나가고 막힌 것이 나중에 알고 보면 큰 축복이었던 일도 드물지 않으니 세상살이가 재미있는 것이다. 2003년 여름 피서지를 정하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절실하게 하였다.

여름마다 집에서 나와 한 달씩 객지에서 지내기를 10년 가까이 되풀이하노라니 이제는 그 방면에 이골이 났다. 아내는 짐 꾸리기 전문가가 되었고, 나는 집 구하는 데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돈주고 방 하나 얻는 일에 자신감 운운할 것이 뭐 있느냐고 생각할 분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르는 이의 생각이지 아파트 생활처럼 편하면서 산수 좋은 곳에서 비싸지 않은 거처를 마련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거의 매년 국내외 어디서건 가는 곳마다 별 힘들이지 않고 독채 아니면 스무 평 이상의 집을 구하여 살았다면 큰소리쳐 봄 직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선수에게도 2003년 여름에는 만만치 않은 시련이 있었다.

경상북도의 백암온천에서 시작하여 정처 없이 장맛비를 무릅쓰고 강원도 해변, 산골짜기를 헤매다 보니 5박 6일만에 녹초가 되었다. 그 동안에 경비도 예년 같으면 한 달을 견딜 만한 액수가 이미 지출되었다. 이곳 저곳 기웃거려도 마땅히 머물 곳이 없으니 모양새 좋은 피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을 살자고 챙겨온 짐은 자동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한 채 이제 패잔병처럼 돌아갈 참이었다. 한 달 후에 보자며 기세등등하게 떠나온 이웃들을 한 주일도 못되어 만날 일을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장마 끝내고 시작되는 더위에 시달릴 생각을 하면 그것도 작은 일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전히 비는 쏟아지는데 집으로 돌아갈 요량으로 서둘러 길을 떠났다. 얼마를 달리다 보니 제법 큰 폭포 옆에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 차를 세우고 잠시 구경꾼들과 어울렸다가 차를 타러 돌아가는데 웬 승용차가 내 차 뒤로 다가갔다. 차를 세우려나 보다 싶었는데 스르르, 그럴 만한 곳이 아니건만 내 차의 엉덩이를 받는 것이 보였다. 받친 곳을 살펴보니 부서진 것은 아니지만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돌아서기에는 할퀸 자국이 너무 컸다. 피서간 답시고 나왔다가 자리도 잡아보지 못하고 어깨가 축 쳐져 돌아가는 길에 아직 3,000㎞도 안 탄 차 엉덩이에 상처만 내다니 실로 기분이 언짢았다.

가해자는 서울 차를 운전하던 여자 분인데 당황하는 기색 없이 차분하였다. 자동차의 흠집을 보며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었다. “고치기는 고쳐야겠는데요” 하고 나도 그냥 끌고 다닐 수는 없겠다는 의견을 담담하게 전하였다. 그러면서 서울 분의 발을 보니 남자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고무신을 보는 순간 서울서부터 여자가 남자 고무신을 신고 나섰을 리는 없고 아마도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는 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 분 아니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서울 분은 나의 엉뚱한 질문의 뜻을 얼른 알아채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정처 없는 나로서는 가까운 곳에 살면 나 좀 데려가 주쇼 하고 아무에게나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속마음을 어떻게 읽어냈는지 우선 자기 집으로 가서 이야기하자고 하여 서울 분을 따라갔다.

그 집에 들어가는데 절차가 복잡하였다. 미로 같은 길을 몇 구비 돌아 커다란 숲 입구에 이르러 우선 쇠사슬을 풀고 100여 m 숲 속을 지나 다시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골프장같이 널찍한 잔디밭이 펼쳐졌다. 말 그대로 그림 같은 별장이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이런 곳에 사는 분이라면 아예 새차 한 대 사 주셔야겠습니다 하는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그 안에 집이 두 채 있는데 그 중 한 채에 들어서니 응접실의 벽 한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어 3,000여 평의 잔디밭은 물론 주변의 산까지 모두 꿰뚫어 보게 해 주었다. 내 집에는 없는 등걸이 의자가 보기에도 여유롭고 어느 단체의 영빈관으로 몇 차례 내주었다는 주인의 설명에 걸맞게 값나갈 만한 주방 기구, 침구까지 완비되어 집에서 챙겨온 살림살이 내놓기가 쑥스러웠다. 주인은 나와 동갑내기 종씨인데다가 고향도 나이도 그리고 종교까지 같아서 그 집에서 여름을 나기로 쉽게 합의를 하였다. 자동차를 수리하는 문제는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집주인은 나흘을 함께 지내더니 캐나다의 딸네 집에 갔다가 한 달 후에나 오마고 두 집 열쇠를 모두 건네고 별장을 떠났다.

졸지에 별장지기가 되고 보니 도맡아 해야 할 일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삼천 평이 넘는 풀밭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한 차례 풀을 깎고 돌아서면 첫날 깎은 자리는 다시 토끼가 새끼칠 만큼 우긋하게 짙게 되어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뿐인가 300평 남짓한 연못 주변을 두르고 있는 느릅나무 울타리가 여름내 더벅머리꼴로 자라서 그것도 일손을 불렀다. 나무가 많다 보니 가지 잘라 줄 놈이 숱하고 이 구석 저 구석 풀 뽑아줄 일만도 몇 식구 심심풀이는 될 만하였다. 때맞추어 개밥을 먹여야 하고, 밤에는 선선하여 3~4일 간격으로 군불도 때야 하니 잡념 같은 것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해야 되는 일들은 나의 평생 직업과 거리가 멀었고, 잔디 깎는 기계를 만져보는 것마저 처음이었다. 그 모든 일이 주인과 계약을 맺거나 정해진 나의 의무는 아니었다. 그래도 남의 좋은 집에 들어와 사는 사람으로서 걸맞는 노릇을 해야겠다는 자각심에서 힘닿는 데까지 바지런히 움직였다. 몸에 익은 일이 아니므로 결과가 번듯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잔디를 깎는 일부터 잠깐만 움직여도 바로 그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좋아서 열심이다 보니 피서한 답시고 시원한 곳에 가서 땀은 내 집에 머무른 것보다 몇 십 배 더 흘리게 되었다.

여름에 땀흘려 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어 좋은 점도 있었다. 두어 시간 땀을 흘리고 목욕한 뒤에 거실에서 시원한 냉수를 마시며 가즈런해진 풀밭을 내다볼 때는 보이는 것들이 다 내 것인 양 거늑하였다. 그럴 때 장끼가 풀밭에 나와 뚜벅뚜벅, 쪼르르, 푸드득 재롱을 떨기라도 하면 그 순간에는 나 역시 한 마리의 꿩이 되었다. 밤에는 밤대로 반딧불이가 고향놀이 하자고 떼지어 창문 앞에서 서성거려 어울릴 만하였다. 그곳을 찾아온 친지들이 어떻게 그렇게 좋은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그냥 씩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돌이켜보면 5박 6일을 헤매는 동안 아무데서도 우리를 잡지 않고 놓아 준 것은 실로 잘된 일이었다. 길 옆에 차를 세워놓았다가 받친 일로 그럴 듯한 별장을 한 여름내 차지하고 주인인 양 땀 흘려 가꾸며 지내게 된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별장 주인을 비롯하여 남들은 대개 인연이라는 말로 간단히 풀이를 하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그 답이 궁금하여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