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happy, I’m happy

 

 

                                                                                  박미경

  

장대높이뛰기, 도움닫기 멀리뛰기를 한다. 목적지를 향하여 워밍업처럼 도움닫기를 하다가,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공중을 나는 순간 비상의 황홀함을 떠올린다. 비행기가 서서히 이륙할 때면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느낌에 몸을 맡긴다. 곧추서듯 구름으로 파고드는 날갯짓, 그 흥분과 감동의 ‘피곤한 쾌락’`─`여행의 시작은 늘 감미롭다.

그러나 배낭 하나 메고 등산복 차림으로 비행기에 오르기는 처음이다. 히말라야의 오지 마을을 찾아 나는 무슨 용기로 이 여행에 합류했던가. 덜컥, 겁이 난다.

로얄네팔 항공에서 짐을 분실하는 것은 다반사다. 전혀 친절하지 않은 승무원과 쾌적하지 않은 기내,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항공기는 결항된다. 네팔 왕이 외유할 일이 생기면 자신의 소유인 항공기를 마음대로 쓰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종종 몇 시간씩 기다리거나, 방콕이나 상해를 경유해 카트만두에 도착하곤 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홍콩에서 다시 방콕으로 우여곡절 끝에 카트만두 공항에 내렸다. 그런데 공항세는 상상외로 비쌌고, 처음 방문객보다 두 번 이상의 방문객에게 갑절의 공항세를 받았다. 네팔이 얼마나 좋으면 다시 찾아왔겠는가. 그러니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식의 이론인 것 같다. 네팔의 이런 어이없는 규범이 재미있어진다.

 

새벽 두 시에 타멜 거리로 들어서면서 나는 묘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낡고 허름한 건물과 골목, 배회하는 개들과 쓰레기를 뒤지는 소, 아스팔트 없는 흙으로 된 도로… 6, 70년대 우리가 살았던 동네였다. 네팔은 그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그의 품에 나를 끌어들였다.

환경연구소팀과 젊은 한의사들이 동행한 네팔 여행의 목적은 의료 봉사와 트레킹이었다.

세계의 4대 오지에 속한다는 히말라야 시클리스 마을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아마도 내가 1년 동안 걸은 양보다 더 많이 걸었는지 모른다. 몬순의 피해로 길은 막히거나 패이고 바위투성이었다. 온몸으로 강을 건너고, 주가(거머리)에 물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행을 잃었다. 어두워지는 하늘, 끝없이 펼쳐 있는 바윗길,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러나 공포는 정면으로 부딪칠 때 사라지는 것, 포기보다 용기가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

‘You Happy, I’m Happy.’

우리 팀이 내건 플래카드는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였다. 네팔리들에게 “You Happy?” 하면 그들은 천진하게 웃으며 “I’m Happy”라고 했다.

산기슭에서 어쩌다 눈에 띄는 가옥이 몇 채뿐인 마을에 새벽부터 환자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밤새 어떻게 소문이 난 것일까. 상처 치료를 못해 손발이 곪아 있는 아이들, 호흡이 가쁜 노인들, 두통과 복통을 호소하는 아낙네들……. 뜨거운 태양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은 마당 곳곳에 누워 생전 처음 보는 의료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고작해야 연고를 발라주거나 소화제, 감기약 등을 들고 이리저리 뛰면서 눈물을 훔쳐내기에 더 바빴다. 결코 연민 때문만은 아니었다. 머리가 온통 부스럼으로 뒤덮였어도, 손발이 세균 감염으로 퉁퉁 부어 있어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아이들의 표정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와중에 들것에 한 노인이 실려 왔다. 맥을 짚어 본 한의사는 지금 처방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니 빨리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노인의 딸은 죽어가는 아버지의 입에 먹을 것을 넣으며 통곡했다. 그러나 이 오지에서 들것으로 환자를 시내에 있는 병원으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진료를 마치고 다른 행선지로 이동하는 중에 이미 시체로 들것에 실려 돌아오는 노인의 일행을 만났다. 오열하던 딸도 침묵했다. 조의를 표하는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이미 죽음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인 듯 초연해 보였다.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말아라. 그건 무례한 일이다.’

웅위(雄偉)한 아름다움, 히말라야의 설산(雪山)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북미 원주민의 이 말을 떠올렸다. 나도 모르게 손을 모으며 ‘신이여’라고 중얼거렸다. 세계의 최고봉으로 둘러싸인 네팔의 산에서 신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감상은 아니리라. 그러나 신은 산에만 있지 않았다.

가슴에 손을 합장하고 고개 숙이며 ‘나마스떼’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한없는 평화와 무욕이 담겨 있다. 구도자의 그것처럼 맑았다. 빛나는 설산과는 대조적인 남루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소짓는다. 행복해 보인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 1인당 연간 국민총생산은 250달러. 우리는 그들보다 몇십 배 더 많은 1만 달러를 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보다 그만큼 행복할까.

한국인은 부자나 거지, 모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데, 네팔리는 삶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 같다.

그들의 풍경은 한껏 게으르고 평화롭다. 개들은 늘어져 자고, 닭들은 때도 없이 울어 제킨다. 꾀죄죄한 꼬마들이 흙바닥에서 놀고, 코를 푸는 사람, 짜이를 마시는 사람, 쪼그리고 앉아 아이 머리의 이를 잡는 엄마.  낡은 집들 사이로 가꾸지 않은 화분 속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소스라치게 아름답다. 수십 리 길을 걸어야 나오는 초등학교. 농사철이면 텅 비는 교실. 저녁이면 호롱불 밑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낙네들. 시골은 대부분 아직 전기도 전화도 TV도 없다. 가족은 보통 3대가 함께 산다. 아이들은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를 섬기며 지극히 순하고 정이 많다.

네팔리들은 오랜 세월 자족적으로 살아 왔다. 히말라야와 정글 속에서 남에게 지배를 받은 식민의 역사도 없다. 그들에게 땅과 음식을 주고 보호해 주는 자연, 그래서 그들은 거친 환경 속에서도 대체로 행복해 하며 만족스럽게 산다. 낙천적이며 당당하다.

자연의 기(氣)가 워낙 강해서인지 여인들의 옷차림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짙은 핑크색, 빨강, 노랑, 주황 강렬한 색깔의 옷과 장신구를 통해서 자연과 대조를 이룬다. 한 마리의 새나 한 송이 꽃들도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인간과 똑같이 조화를 이루는 곳, 그곳이 네팔이다.

‘진보는, 경제성장은 미덕인가.’

트레킹 중에 만나는 네팔리들의 소박한 미소를 받으며, 걷고 걸으며 이 화두는 떠나지 않았다. 오직, 경제성장과 개발만을 기치로 달려온 우리들, 과연 우리가 꿈꾸던 행복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아파트 평수를 늘이고 더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는데도 왜 우리는 행복에서 점점 멀어만 지는 것일까.

더러운 길거리, 지저분한 아이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좌판을 벌인 아낙네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설산뿐인 네팔`─`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 유럽이나 일본인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네팔에 오면 눌러앉아 살고 싶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맨발로 땅을 밟고,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높은 사람들, 그들은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듯,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고, 태양을 막는 차양을 해두며, 강물을 건너게 뿔을 마련해 두는 3가지의 미덕을 누구나 행한다.

“Keep your culture!!”

네팔을 떠나며 우리 팀의 대장인 작가 최성각 님은 그들에게 당부했다.  

외국인들이 아무리 자주 들락거려도, 네팔 왕가의 탐욕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당신들 산중 사람들은 당신들 문화를 지켜내기를 바란다는 그런 맥락이었고, 그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문화란 외부로 드러난 것만이 아닌, 사람들의 심성 속에 씨를 뿌리고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가는 것임을 확인하며 나도 간절하게 손을 흔들었다.

“You happy, I’m happy.”

 

 

<월간 문학>으로 등단. 동포문학상, 대표에세이문학상 수상.

작품 『내 마음에 라라가 있다』, 『박미경이 만난 우리 시대 작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