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냄새

 

 

                                                                                   문순하

  

뒷골 재실은 토박이 강씨들 소유였다.

그 재실에 사는 나이든 이 생원에게 동네 사람들은 하대했다. 이 생원은 해마다 가을이면 강씨 문중 시제 준비를 도맡아 했고, 대소사 궂은 일과 선산을 지키며 살았다. 이 생원은 열심히 공부하는 딸이 대견하여 항상 싱글거렸다. 그 딸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마침내 우리 동네 초등학교에 첫 여선생으로 부임했다.

어느 날 작은언니는 재실에 사는 선생이 담임이 되었다며 좋아했고, 그 후로도 종종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는 마른 내를 거쳐 출퇴근했다. 마른 내에서 놀 때 그가 지날 때면 아이들이 일어나 인사를 했다. 나도 덩달아 절을 하였는데, 그럴 때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그는 아이들을 잘 가르쳐서 교장선생님도 흐뭇해 하셨다. 그런데 샛터의 촌수가 높은 강씨 한 분이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그가 있는 한 동네의 강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 요즈음 양반 상놈을 가리는 시대는 지났노라고 설득했지만 그 어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은 교육청에 건의해서 그를 서울로 전근시켰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 그는 이삿짐 트럭 앞자리에 앉아 긴 머리를 날리며 떠나갔다. 그 뒤로 재실은 한동안 비어 있었고, 동네 사람들은 강씨 어른에게 불평했다. 능력 있는 선생님을 놓친 아쉬움과 정 많던 이 생원의 빈 자리가 너무 크다고 하였다.

상반 시비의 애환을 마지막으로 겪는 아픔이었을까?

어느 해 여름, 교회의 중·고등부 수련회에 나도 따라 나섰다. 강원도 산골에 자리한 분교였다. 운동장 옆으로 시내가 흐르고, 시냇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교정을 지키고 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특히 꽃밭이 눈길을 끌었다. 작은 돌들로 구역이 나뉘어진 꽃밭들.

‘샛터, 움무시, 솔아단, 뒷골, 범동골’이란 명패의 팻말이 꽃밭마다 세워져 있다. 그 명패를 보고 놀랐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방학 때라 교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수련회 둘째 날, 점심 설거지를 막 끝내고 나무 그늘에서 부채질을 하다가 화단에서 한 여인이 풀을 뽑는 걸 보았다. 꽃밭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꽃밭이 참 예뻐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예쁘게 봐 주시니…….”

그는 호미질 하던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 꽃밭 이름이 제 고향의 동네 이름 같아요.”

그는 일어서며 나를 유심히 보았다.

향나무 그늘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그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그는 고향을 떠난 후, 서울에서 교직생활 30여 년 만에 학교장이 되었다. 나이 들면서 전원생활이 그리워졌다. 가족들 만류도 뿌리치고 이곳에 부임한 지 3년째라며 웃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가 해맑다. 그는 어린 시절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동네 이름을 속으로 외워보곤 했다. 끝내는 동네 이름을 꽃밭 이름으로 붙이게 되었노라 했다.

그 날 밤, 교장 사택에 들러 옛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는 수첩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줬다. 고향의 초등학교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거기엔 단발머리 작은언니가 그녀 옆에 있었다.

“선생님, 여기 작은언니도 있어요.”

손가락으로 짚으며 소리쳤다.

“아, 요 꼬맹이.”

그는 내 긴 머리를 쓸어보며, 작은언니의 안부를 물었다.

갓 스물에 첫 아이를 낳다 요절한 언니 이야길 듣고 혀를 차신다. 아이는 건강하게 커서 결혼했다는 이야길 들으며 고개만 끄덕이셨다. 한참 만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만 감사하며 살리라 다짐했고, 1학년 꼬맹이들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그 시절을 회상하는 그의 눈이 빛났다. 그때 노크하며 차를 들고 열두서너 살쯤 보이는 아이가 들어왔다.

“엄마, 차 드시며 말씀하세요.”

“우리 딸 고맙다.”

뜨악해 하는 나를 보더니, 마지못해 아이 이야기를 했다. 이 학교에 부임해서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자매를 맡아 키우게 되었고, 요즈음 그 애들 때문에 웃는다고 흐뭇해 하셨다. 미소 짓는 그의 뺨이 백일홍 꽃잎처럼 물들었다.

저토록 담담하고 평온한 모습은…….

“그래, 그랬다.”

고향의 조종산에 꿋꿋이 서 있던 그 소나무를 닮았다. 그리고 저 눈가의 잔잔한 주름은 마을 앞 바가지 샘에서 물이 넘쳐흐를 때 지던 그 물결을 닮았다. 그는 고향을 닮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선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고향의 향기가 났다.

풀잎 냄새가…….

밤이 이슥하여 숙소로 돌아올 때 옥수수 한 광주리를 주며, 학생들 간식으로 쪄주라셨다. 광주리를 이고 늦은 밤길을 걸었다. 흩뿌린 듯 별이 쏟아지는 고즈넉한 밤길, 시냇물만 졸졸거리며 꽁무니를 따라왔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가 마을 어귀를 돌아 나올 때까지 느티나무를 등지고 서서 그는 손을 흔들고, 그의 어린 딸들은 느티나무를 맴돌아 뛰어다녔다. 느티나무 우듬지에 걸린 낮달이 하얗게 웃고 있었다.

 

 

전북 김제 출생.

<계간 수필>로 천료(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