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천료>

 

만지금(滿地金)

 

 

                                                                                       구민정

  

푸른 빛 감도는 계절이면 눈길이 아주 먼 산에 머문다. 화사한 봄꽃들이 길 가는 이의 시선을 끌기도 하고, 발길을 오래도록 붙들어두기도 한다. 청명한 봄날의 기운이 하늘에 닿을 기세인데, 후미진 곳에서도 자생력을 잃지 않는 꽃들이 있다. 그 중 양지 바른 곳에서 자라는 민들레는 땅 위에 납작 엎드린 채 깃털 모양의 잎 사이로 꽃 받침대를 곧추세우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성화 봉송하는 선수 같다. 빛깔 또한 강렬하여 꽃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희망이 솟는다. 들녘을 노란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하여 만지금滿地金이라 부르기도 한다.

민들레는 키가 너무 작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낙화의 아쉬움을 느낄 겨를조차 주지 않는다. 여린 잎과 뿌리 모두 약용으로 쓰이고 그 맛은 고채苦菜라 불릴 정도로 매우 쓰다. 민들레는 강한 색채만큼이나 성장 과정도 깔끔하다. 꽃대가 올라오기까지는 봄 풀 사이에서 그 실체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꽃이 피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연녹색의 틈을 비집고 떡하니 군림한다.

대부분의 봄꽃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속설을 지키려는 듯 속절없이 지고 말지만, 민들레는 아주 이색적이다. 꽃 보기가 지루하다 싶을 즈음이면 씨앗들이 한데 어울려 흰 깃털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때 민들레 홀씨가 만들어낸 원 모양 안엔 작은 우주가 담긴 듯 신비롭기까지 하다.

어려서부터 길을 가다 민들레 씨앗을 보면 나는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홀씨 날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입으로 “후~” 불거나 손가락 끝으로 튕겨보기도 했다. 민들레 홀씨에 날개라도 있는 걸까.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나풀나풀 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바다를 비상하는 갈매기처럼 들녘을 선회하다 먼 곳으로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런 민들레를 보고 있노라면 기억 한편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유방암으로 투병중인 직장 동료가 약용으로 민들레 즙을 먹은 일이 있다. 그녀와 나는 평소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다른 부서에서 업무상 자주 만나는 정도였는데, 살아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이 내 마음에 들었다. 일 처리도 잘해 1급 관리자로 인정도 받던 여성이다. 매사에 진취적인 그녀에게선 여장부다운 기개가 넘쳤고,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면 절로 힘이 솟았다. 그렇던 그녀가 깊은 병에 걸린 걸 알고 나는 가슴이 아팠다. 틈틈이 그녀 집에 들를 때면 항암제 후유증으로 빠진 머리를 하고도 나를 맞는 표정은 밝았다.

어느 날은 함께 민들레를 캐러 가기도 했다. 그것이 약이라고 하여 막상 나서니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렇게도 들판에 널려 있던 꽃이 우리가 작정을 하고 찾아 나섰을 때는 눈에 잘 띄지가 않았다. 어쩌다 듬성듬성 나앉은 꽃 무리는 주차하기 어려운 도로변에 있거나 채취하기 험한 장소에서 유혹하여 우리를 난감하게 했다. 마침내는 근교 사찰에까지 이르렀다. 인적이 뜸하여 그런지 그곳에는 민들레 지천이었다. 우리들은 여기저기 앙증스럽게 앉아 있는 민들레를 마구 파헤치기 시작했다. 잔뿌리 하나라도 놓칠세라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반가운 마음도 잠시였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노스님 한 분이 “사찰 안의 하찮은 생물 하나라도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를 놓았다. 우리는 노송 아래 앉아 서운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늙은 소나무 아래에 자생하고 있는 짧고 단단해 보이는 민들레 무리를 보니 아쉬움이 더했다. 땅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것이 분명 토종 민들레로 보였기 때문이다. 도를 닦은 스님이 뭐 그리 야속한지 속으로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려오던 우리는 다행히도 은인을 만났다. 젊은 선학 스님 한 분이 도움을 주겠다며 주소를 물어왔던 것이다. 노스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우리들을 진작부터 지켜봤던 모양이다. 그 후로 그 젊은 스님은 사찰 주변에서 캔 민들레를 정성껏 포장하여 소포로 부쳐왔다.

그러기를 몇 해, 항암 치료를 마친 그녀는 지금 민들레 생명력만큼 강한 의지로 삶을 일구어가고 있다.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의지를 버리지 않아 어엿하니 새 직장에 나가고 있다. 예전처럼 상급 간부는 아니지만, 민들레 홀씨가 어둡고 척박한 곳에서 뿌리 내려가듯 활기찬 모습이다. 우뚝 선 그녀의 홀로서기 뒤엔 젊은 스님의 인정이 있지 않았던가. 그 스님 역시, 지금쯤엔 아마 큰 도道를 얻어 어려움에 처한 중생들을 돌보리란 생각이 든다.

이 봄 나는 길을 가다 문득 문득 민들레 홀씨 곁에 쭈그려 앉는다. 그때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민들레처럼 강인한 삶을 살아가라고 맘속으로 기원한다. 온 들녘을 노랗게 물들이는 또 다른 이름 만지금. 몸을 앓는 사람들에게 그런 기운 넘치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들녘에는 어느 새 희망의 빛이 퍼져간다.

 

 

 

 <천료 소감>

 

이른 나이에 결혼하는 저에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부엌에 가서 솥뚜껑 한 번 돌리고 가렴. 복을 좀 두고 가려무나.”

그게 무슨 효과가 있다고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을 그렇게 표시하셨습니다. 복덩어리라며 애지중지하던 셋째딸을 내놓기가 서운하셨던 모양입니다.

살면서도 운이 잘 따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필 공부를 해온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이번 초회에서 천료까지의 길이 순탄하여 두렵습니다. 한편으로 이것도 행운이 아닐까 느껴지기도 합니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지도해 주신 선생님과 지인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민들레 홀씨 하나가 만지금의 세상을 이루어가듯, 이제 갓 움튼 새싹에 자양분을 쏟아 부어 좋은 작품의 열매 맺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묵묵히 노력하는 수필가가 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군포여성문학회 회원. 시문회 회원.

한국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재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