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진부령, 밋밋하여 어이없던 고갯길

 

 

                                                                                          배채진

  

오는 가을을 외면하고 가는 가을을 만나러 진부령을 다녀왔다. 이곳 남쪽은 저쪽 북쪽보다 가을이 더디게 올 터이다. 오는 가을에게는 내 집 앞 백양산에서 잠시 기다리라 하고, 가는 가을 끝자락을 붙들려 먼 길을 출발한 것이다. 시월 초입 어느 날 오후, 나는 집으로 급히 전화했다. 워크숍이 있어 내일 설악산 가는데 일상사 다 팽개치고 같이 가자고 말이다. 그녀는 머뭇거렸다. 이박 삼일을 집 비우고 다녀오면 쌓여 기다리는 일상의 일더미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이튿날 우리는 북으로 동해안 길을 따라 먼 길을 달렸다. 오른편의 동해 바다 파도가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코스모스도 건들거렸다. 영덕이라는 이름의 지역을 들어서니 길가의 코스모스가 유난히 키가 작았고,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코스모스는 건들거려야 코스모스인지 건들 또 한들거리고 있었다. 내가 한들거릴 땐 사람들이 내게 꾸중을 했는데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것을 보고는 꾸중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여행은 고갈한 영혼을 적셔주는 모양이다. 우리 둘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차 안에서 이야기를 많이도 했다. 이야기하는 중에, 그 이야기들과 풍경으로 인해 우리의 영혼은 풍요로움으로 젖어들고 있었다. 고요한 절집 백담사 마당이나 그 절 뜨락 한 켠의 가을 꽃밭 언저리에서, 산사의 단풍 색 언뜻 비치는 키 큰 나무 아래에서, 무엇보다 우리가 이틀 동안 머물 오색 숙박지의 적막한 방에서, 기다리며 혼자 읽을 수필집 하나 가져가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부산에서 북으로 하루 종일 달려, 한계령도 넘고 진부령도 넘고 다시 진부령 돌아 미시령도 넘을 생각으로 먼 길을 먼 줄 모르고 가까운 듯 신나게 달렸다. 그러나 가는 길 운전은 천천히…….

워크숍이 끝난 날, 우리는 한계령을 넘어 진부령으로 갔다. 달리다 보니 한계령과 헤어진 길은 미시령과 진부령을 바라보며 북으로 또한 계속 뻗어 있었다. 설악의 품도 내설악에서는 제법 온순하다더니 과연 그랬다. 길도 그저 곱게 꼬리를 감추는 사뭇 착한 길이라고 하더니 그 또한 그랬다. 내가 사는 남녘에는 아직 코스모스가 지지 않았지만 여기선 길가의 코스모스가 씨를 맺고 있었다. 이쁘지 않아서 더욱 이쁘게 보이는 코스모스 씨 주머니… 오가는 계절이란 참으로 새삼스러운 것인지, 몇 번을 맞이하고 또 보낸 계절인데 가을이 새삼 내 마음에 새롭게 다가왔다.

용대라는 지명의 마을에서 오른쪽과 왼쪽으로 진부령과 미시령은 갈라섰다. 우리는 왼쪽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제법 올라와도 우리는 고개인 줄 몰랐다. 버스 정류소 푯말이 있고, 커피도 마시고 라면도 끓여 먹는 상점이 있어,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여기가 바로 진부령 정상이란다. 미심쩍어 다른 사람에게 또 물어보았다. 진부령이란다. 한계령 쪽으로 오르면 고개 맛이 나지 않지만 고성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고개 맛이 날 거라고 일러주었다. 진부령은 한계령, 미시령과 더불어 설악의 3대 준령으로 꼽히지만 진부령 고갯길은 여느 고개와는 견줄 바 없이 녹록하고 수더분하다고 그 고개 사람은 일러주었다. 반대편으로 올라와도 슬슬 몇 구비 돌다 보면 어느 새 고갯마루에 닿게 된다고 말했다.

과연 고개 주위를 돌아보니 수더분하고 밋밋했다. 높지 않으니 가파르지 않고, 가파르지 않으니 소문 듣고 짐작한 만큼 그렇게 험하지도 않았다. 고갯마루에는 버스 정류소도 있고, 이런저런 가게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으니, 백두대간의 고갯마루라고는 통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오가는 발길 많이 늘어 이전보다 덜 적적하긴 해도 알고 보면 이 고갯길은 애처로운 길이라고 진부령 사람은 말했다. 하기야 고개를 노래한 노래의 음색치고 슬프지 않은 음색이 없으니 따라서 고개치고 슬프지 않은 고개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고갯마루에 이름도 그럴싸한 알프스 리조트가 있어 사람들은 이국적인 스키장의 낭만을 떠올리지만, 겨울이면 으레 눈이 키보다 높게 쌓이는 고산지대의 설원을 그리며 마음 들뜨지만, 정작 이 고갯길은 단절의 길이라 더욱 슬픔의 길이라고 한다. 남도의 끝자락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1,680리를 거슬러 오르다가 분단선에 가로막혀 그만 속절없이 주저앉은 백두대간의 아픔을 깊이 가진 길이라고 한다. 속내에 사무치는 이런 아픔이 있어 진부령 고개턱엔 봄도 늦게 찾아온다고 한다. 하기사 강원도 어느 산골에 봄이 빨리 찾아들겠는가만, 가을도 길 떠날 차비하고 있는 여기 진부령, 진부령 그 위에 내가 서서 조금은 슬퍼졌다. 밋밋해서 그랬고, 한 잔의 찻값보다 더 많은 얘기를 들려준 진부령 사람의 얘기 내용에서 그랬다.

고개를 떠나려다가 왼편의 ‘진부령 문화 스튜디오’라는, 조금은 도회적이고 세련되어 단풍 색처럼 돋보이는 세로 간판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차를 끌고 가 그 앞에 세우고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미술관이었다. ‘동물원 옆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영화가 있었는데 이 미술관은 가만 보니 ‘포병부대 옆 미술관’이었다. 내가 포병 출신인지라 포병부대는 선명히 눈에 들어왔고, 빤질빤질 윤을 내며 날렵하게 뻗은 포신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포병부대와 미술관은 묘하게 이미지가 대비되며 나를 끌었다. 그 안에는 뜻밖에 이중섭 특별실이 있었고, 내 친구 화가 신부인 조광호의 작품도 있었다. 쓸쓸한 진부령의 발길 뜸한 미술관에 말이다.

진부령 미술관은 이전에 출장소 건물이었다고 한다. 이중섭 기념사업회가 주축이 되어 만든 설악권의 유일한 상설 전시관이라고 한다. ‘소’, ‘달과 까마귀’, ‘가족’, ‘소와 새와 게’, ‘도원’ 등 이중섭의 복사본 그림들을 젊은 미술관지기는 성의 있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미술관지기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그의 미술 세계와 정신에 빠져들려고 애썼다. 그림들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그리 오래 머물렀어도 우리들뿐이었다. 하루에 한 명조차 오지 않는 날들이 많다고 했다. 젊은 미술관지기가 커피를 끓여왔다. 쓸쓸한 곳에서 마시니 더욱 정다운 커피였다. 전시실 안에는 끝까지 우리 둘과 그 젊은 미술관지기뿐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액자 속의 그림을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그곳에서 다음에 다시 마시고 싶은 커피였다. 미술관지기의 정다운 인사를 받으며 미술관을 나섰다.

포병부대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운전을 하다가 속도를 낮추고 돌아보기도 했다. 옆에서 그런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본다. 고성 쪽으로 내려가니 과연 덜 밋밋했다. 그래도 고갯길은 수더분하고 밋밋하기까지 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저 꼬리를 감추는 듯 사뭇 착하고 순한 이 길이 눈이 오면 얼굴 모습을 확 바꾸려나. 진부령, 밋밋하여 슬프고 어이없던 고갯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