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돌멩이 세 개

 

 

                                                                                            김광

  

몇 년 전의 일이다. 여행을 워낙 좋아했던 나는 틈만 나면 계획에도 없는 여행을 떠나곤 했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나의 무책임한 증발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종종 골탕을 먹었다. 그 날도 마침 주말이었는데 퇴근해서 집에 가다가 보도에 눈이 부신 햇발을 던지고 있는 하늘이 날 부르는 것 같아 결국은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터미널로 달려가 버스를 타고야 말았다. 퇴근길에 떠난 여행이었으니 행색이라고 해 봐야 시집 몇 권 들어 있는 손가방 하나 달랑 든 모습이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다섯 시간 넘게 버스에 시달리며 남원에 도착해서 다시 구례를 향해 한 시간 남짓 지나서야 구례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터미널에 내리면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이미 어둠이 짙어진 구례 땅에도 무심함과 한가함이 반반씩 섞인 이질적 기운들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구례에서 천은사 쪽으로 쭉 가다 보면 길 한편에 ‘미상’이라는 향토 음식점이 있다. 나는 그곳을 이런 행색으로 가끔 들린다.

그 집은 건물보다 마당이 훨씬 넓었다. 동화 속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키 작은 나무 울타리가 흰색 칠로 단장을 한 채 빙 둘러져 있는 뜰에는 제법 커다란 연못도 있었고, 정자도 있었다. 건물은 재래식 한옥이었지만 정갈하고 야무진 느낌을 주는 것이 집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말해 주는 집이다. 내가 그곳을 찾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곳 주인 때문이다.

젊어서 청상이 되었다는 백발이 성성한 노파와 산악 사고로 남편을 먼저 보내고 역시 과부가 되었다는 며느리, 그 두 주인을 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이대에 걸친 쌍과부의 손에 ‘미상’은 운영되고 있었고, 난 그쪽 지방을 지나갈 때면 가끔 찾아가곤 했었는데 내가 찾아간 그 날도 쌍과부는 사람 좋은 미소로 뛰어나와 반색을 했다. 민박도 겸하고 있는 터라 방부터 정해 놓고 식사를 위해 마당에 있는 테이블로 나와 앉았다. 그 집 대청마루에는 늘 거문고와 기타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거문고는 노파가, 기타는 며느리가 사용하는 것으로 고부는 이따금 밤이면 마루에 마주 앉아 담근 술을 권하며 그 악기를 다루곤 했다. 참 보기 좋은 모습들이었다. 일박을 위해 객방에 들었던 길손들도 고부 간에 덕담을 나누는 그 흥겨운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내곤 했다.

이들에게는 각기 특색이 있었다. 노파는 이제 가게 운영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건만 참 부지런한 분이었다. 단아한 모습이 궂은일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 손님들을 위해 떡도 빚고, 진달래 잎 넣어 부침개도 부치고, 두견주도 담그고 두부 만드는 일까지, 하여간 미상의 음식은 모두 그 노파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그 노파가 쉬는 걸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 노파의 얼굴에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품 같은 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부지런하기로는 며느리도 결코 시어머니에 못지않았다. 널따란 가게 청소에서부터 지리산에 올라가 약초도 캐오고 어쩔 땐 틈틈이 기타도 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남자들도 어려운 패러글라이딩을 즐겨한다는 것이다. 실력도 만만치 않아서 멀리까지 원정 비행을 다니곤 한다는데, 아직은 젊어서 그렇겠지만 장사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걸 더 좋아하는 자칭 ‘지리산 아낙’이다. 그 여인은 목월 박영종 님처럼 나그네 같은 여행을 즐기기도 하지만 문 밖만 나서면 온 산천이 그의 품에 안기는데 굳이 여행이라고 구분할 필요는 없을 터, 자신의 행각을 글로 남기길 좋아해 온라인 상의 문학 동호회서 알게 된 나에게 종종 근황을 들키곤 했었다. 이 지리산 아낙이 쓴 글을 대하면 난 많은 생각이 들곤 했다. ‘타라’가 걷던 황무지가 생각나고, ‘동이’와 ‘허생원’이 바라보던 달밤의 하얀 소금 밭도 생각나고, 거뭇한 산야 뒤로 아스라이 사라지던 서편제의 구슬픈 가락이 생각나기도 했다. 들꽃이 물결처럼 흐르는 평원을 배경으로 영상처럼 사는 것 자체가 시며 소설이며 문학인 이 아낙은 꽃잎 같은 입술을 열어 시어머님이 타는 거문고 앞에서 창唱을 하기도 했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온화하지만 기품이 있고, 며느리는 어찌 보면 자유분방한 것 같지만 절도가 있었다. 두 사람을 보면 고부 사이라기보다는 모녀 같기도 했고, 자매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한 다정함이 있었다. 자칫 경직되고 반목하기 쉬운 고부 사이를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보듬는 연기를 멋지게 엮어내는 연출가들이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 집을 찾아가면서 나는 젊은 여주인을 처음 만나던 날과 만나기 며칠 전에 보냈던 이 메일을 생각했었다.

‘나도 님의 얼굴을 모르고 님도 나의 얼굴을 모릅니다. 아는 것이라곤 동호회 게시판에 가끔씩 올라오는 서로의 글들과 이름뿐입니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 몰라도 해질 무렵에 지나는 여행객이 님의 가게에 들어와 식사하고 간 자리에 돌멩이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으면 내가 왔다 간 줄 아세요.’

동호회 게시판에선 가끔 글을 주기도 받기도 한 사이였지만 난 그때 아마 장난을 치고 싶었던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아무 내색도 안하고 식사를 한 후에 돌멩이 셋을 돈에 싸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왔었다.

무엇이 그때 나의 장난기를 발동시켰을까? 왜 하필 돌멩이 세 개였을까? 그건 평소에 그 집 마당에 조약돌을 깔아놓아서 걸으면 잘잘거리며 돌 밟히는 소리가 난다는 그녀의 글에서 나도 모르게 감전된 탓이었으리라. 이따금 동호회 게시판에 소개되는 그들의 사는 모습은 상큼한 봄나물처럼, 때론 한 줄기 분수의 시원함으로 나를 채우곤 했었다. 좋은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온 느낌이었다. 그들처럼 나도 자연 속에 한 가족이 되고 싶었던가 보다.

나도 이 담에 늙으면 자연 속의 한 점 돌이 되어 흐르는 세월 속에 놓이듯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미상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