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부적

 

 

                                                                                          이윤임

  

질금거리던 비구름이 정오쯤에 꼬리를 사렸다. 휴일 남편을 졸라 바닷바람이나 쐬자고 차 나들이를 도왔다. 도심을 벗어나자, 8월로 넘어가는 산야가 오랜만에 햇볕을 만나 허리를 젖히며 웃고 있다.

한때는 유명했던 ‘송포松浦 포도단지’였는데, 세상도 세월 따라 흘러 이제 포도원은 묵정밭처럼 띄엄띄엄 보인다. 길가 포도밭엔 하얀 종이 봉지가 주렁주렁 달렸다. 뒷좌석에 앉은 딸아이가 내 어깨를 집적거렸다.

“엄마, 포도 좀 사요.”

“주인도 없는데 어떻게 사?”

“저~기 있네.”

제 누나 곁에 앉은 아들애가 차 유리를 콕콕 두드린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내 무뎌진 가슴에 아릿한 향수가 스미면서, 시큼한 가슴앓이가 입안에 고였다.

‘할아버지, 왜 봉지를 다 씌워요? 답답하겠다.’ 아들녀석이 느닷없이 아는 체를 한다. 노인이 허허 웃는다. ‘벌레 못 들게 하려고 씌우지. 뙤약볕도 가리고, 볕에 데이면 물커지거든. 폭우가 오면 마구 떨어지는데 봉지를 씌워두면 안 떨어지지.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노인은 포도송이를 따면서 덧붙였다. ‘포도알이 골고루 자라게 되지.’

아버지는 틈만 나면 호주머니에서 그 쪽지 수첩을 꺼내 보곤 했다. 그 수첩에는 총각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거의 다 사주 심사에서 낙방한 듯했다. 궁합 심사까지 통과되면 남자를 불러왔다. 나는 작은 방에 갇혀 낯선 남자와 선을 봐야 했다. 맞선보다 어색한 만남이 또 있을까? ‘예’ 아니면 ‘아니오’라는 짧은 대답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열 번을 더 넘기자, 나달거리는 아버지의 수첩은 드디어 명운을 걸고, 나의 사전에는 ‘아니오’를 지워버렸다.

 

“예.” 그 ‘예’가 늦은 겨울에 협궤열차처럼 나를 낯선 터에 내려놓았다. ‘결혼’이라는 서툰 단어는 갑자기 나를 서먹하고 난감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그 집은 마루가 높았다. 지대 아래엔 삼층 섬돌이 놓였고, 신방대에 올라서지 않고는 마루에 오를 수가 없었다. ‘정자 좋고 물 좋은 데가 없다더니……. 살다가 마땅한 집이 나면 옮길 요량하고. 위채엔 안노인 혼자 있으니 조용하고 사람이 좋니라.’ 시아버지가 고르고 골라 들판 아랫자락에 있는 남의 행랑채에 셋방을 얻어주었다. 제금을 났다. 방 한쪽에 궤짝 같은 반닫이만 달랑 놓였다. 누우면 발이 벽에 닿았다. ‘살면서 하나씩 장만하는 것도 사는 재미다. 좋은 소리 듣기게 행동하고.’ 시어머니는 손바닥만한 방을 나서며 말 못을 친다. 수저 두 개, 밥그릇 두 개, 쬐끄만 백철 솥 하나, 조막단지 몇 개. 이 소꿉놀이가 나를 속절없게 하였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부적을 구해 와서 방문 위에 붙이고 베개 속에, 이불에, 심지어는 자리 밑에도 넣어두는 것이었다. 그 정성과 기원을 알면서도 부적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순전히 아버지의 수첩 때문이라고 원망을 했지만, 세월이 부리는 도섭을 누가 이길 것인가. 원망은 원망이 되었다.

한 밥 잡힌 누에는 짬을 주지 않는다. 그 날도 나는 시댁에서 추잠秋蠶을 돌보고 있었다. 여름 끝물을 물고 며칠째 쏟아지는 장대비가 아무래도 심상찮았다. 설마, 하면서도 속으론 집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해거름 무렵에, 강물이 들판을 덮치기 시작했다고, 남편의 전화가 왔다. 공무원이 자기 집 건지려고 주민들의 아우성을 내 몰라라 할 거냐고, 남편은 되레 용심을 내면서 배부른 나더러 얼른 우리 방에 가 보란다. 시어머니와 함께 나서려는데, 그 마을이 물에 잠겼다는 기별이 왔다.

아침이 뜬눈으로 왔다. 남편의 오토바이 뒤에 실려서 도토리 재를 넘어 동네로 들어섰다. 아래 들 끝자락이라 낮긴 하지만, 이렇게 홈빡 물을 담기는 수십 년 만에 처음이라 했다. 뻘범벅이 되어 뒹군 가재도구, 독 단지들, 질퍽거리는 마당에 난장판으로 널려 있다. 네 것 내 것 구분이 없다. 아수라장이란 데가 이럴까?

나를 내려놓고 남편은 주민들의 피해 복구가 급하다며 도망치듯 가 버린다. 매운 콧잔등을 훌쩍이며, 뻘물 머금은 궤짝에서 옷가지를 끌어냈다. 아꼈던 하늘색 비단 두루마기도 못 쓰게 됐다. 가슴이 미어졌다. 옷을 마당바닥에다 패대기를 쳤다. 결혼 사진도 얼룩이 먹어버렸다. 모두 쓰레기가 된 것이다.

나는 울음으로 현기증을 쫓으며 궤짝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것은 네가 죽을 때 곽 속에 넣어 가야 하는 것이다. 명심해서 잘 간수하도록 해라.’ 온전한 건 그것뿐이었다. 비닐에 싸인 혼서를 쥐고 만삭이 된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방을 훔쳐내다 마루로 나오는데 발이 미끌 하는 순간, 나는 마당으로 나가떨어졌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남편이 나를 안고 있었다. 다친 데도 없고, 뱃속의 아기도 뛰고 있었다. 둘러섰던 사람들은 조상이 돌봤다고 했다.

 

포도 한 상자에, 세 송이를 더 얹어주면서 노인은 나를 돌아본다. ‘올핸 잘 익었어요. 약도 안 치고 했으니까 그냥 드셔도 괜찮을 겁니다.’ 노인의 말이 참 순했다.

봉지를 텄다. 속이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리는 청포도의 당실당실한 알이 엄마의 젖꼭지처럼 탐스럽다. 포도는 종이 봉지 안에서 따뜻한 햇살을 안고 파아란 하늘 물을 머금어, 이렇게 맛있는 포도송이가 되었을 것이다. 아들의 말마따나 얼마나 답답했던가. 때로는 푸른 하늘이 보고 싶었다. 찬란한 햇빛에 몸을 드러내고 마음껏 바람을 마시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걸 참고 견딘 다음에야 이렇게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리라.

흰 종이 봉지를 만져본다. 산다는 것은 얇은 종이 봉지에 싸여 어디론가로 보내지는 게 아닐까. 나는 갈 곳도 모르는데. 아버지의 수첩을 비롯하여 방이며, 혼서, 어른들의 잔기침 소리들은 나를 쌌던 봉지였다. 액을 쫓는 부적인 게다. 헌데, 언제부턴가 나도 힘없는 이 종이 봉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에 별 것도 아닌 엄마라는 종이 봉지. 행여 잘못될까. 아이들에게 붙어 다니는 부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