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실제

 

 

                                                                                             백임현

 

어느 날 의정부를 지나 포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새로 생긴 도로변에 색다른 모양의 가로등이 눈길을 끌었다. ‘아, 참 예쁘다’ 나는 탄성을 지르며 줄지어 서 있는 예쁜 가로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보름달 같은 전등 위에 금속 파이프로 만든 한 마리의 새가 좌우 두 날개를 위로 치켜올린 채 지금 마악 비상을 시도하며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려는 듯,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탐스러운 박덩이를 발끝에 매달고 하늘을 나는 새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였다.

 

밤길에 차를 모는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주로 한 일반 가로등의 모양은 어디를 가나 생김새가 비슷하다. 높은 전신주 위에 마치 골프채를 거꾸로 잡아맨 듯 커단 주걱처럼 매달려 있다.

 

사실 운전하는 데 있어 가로등의 모양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빛의 밝기가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시골의 후미진 길은 대개 전등이 흐리다. 통행량이 적고 사람의 왕래가 뜸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을 절약하는 차원이겠지만, 그런 길을 가자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런 길을 지나 도심 가운데로 들어서면 불빛이 밝아 정신이 난다.

 

가로등의 가치는 생김새보다는 그 성능이기 때문에 제작자나 운전자도 모양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는 것 같다. 어느 거리에서나 비슷비슷한 가로등만 봐 오다가 같은 물건이라도 아름답게 만들어 행인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한 시당국의 문화적 감각과 배려가 고마웠다.

 

그 날은 물론 그 이후 의정부 가로등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밤에 불이 켜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불켜진 전등 위에서 모든 새들은 황금빛으로 빛날 것이다. 금속성 파이프마다 불이 들어오면 황금 날개를 편 새들은 보름달을 발끝에 달고 신호를 기다리는 선수들처럼 일제히 칠흑의 밤하늘을 향해 날아 오를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것은 등불의 차원을 넘어 예술의 경지가 아닌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였다.

 

사는 곳에서 의정부가 멀지 않아 어느 날 하루 밤 외등이 켜질 때, 구경을 한다고 벼르면서도 일삼아 밤길을 가게 되지는 않아서 차일피일 뒤로 미루게 되었다.

 

의정부는 시댁의 연고지여서 아는 사람들이 많다. 절친한 후배도 있고, 집안의 조카들도 산다. 그래서 자주 그쪽으로 외출을 하지만 대개 낮에 다녀오기 때문에 불켜진 가로등을 보게 되지 않는다. 나는 의정부 지인들을 만나면 나이답지 않은 말을 묻곤 한다.

 

“밤에 새로 생긴 금오동 가 봤어? 거기 가로등 불켜진 것 참 예쁠 텐데…….”

 

나의 이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답들이 한결같이 시원치 않다. 그곳의 가로등을 눈여겨본 것 같지도 않고, 보았어도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것 같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 이 나이에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가 어른스럽지 못한 것인가 쑥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내가 생각을 해도 좀 이상하기는 하였다. 무슨 일에 호기심이 많은 성격도 아니고 여행을 즐기며 새로운 풍물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닌데 정말 나이답지 않게 그것은 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밤길을 혼자 갈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아 미루어오다가 눈발이 날리는 초겨울 어느 날 저녁 의정부를 향해 떠났다.

 

운전석에 앉은 남편은 별 이상한 외출을 다 한다면서 내 소녀적 취향을 은근히 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치기어린 감상일지라도 내게 아직 그런 감성이 남아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늘 익숙하게 다니는 길이지만 북쪽을 향해 가는 밤길은 쓸쓸하고 적막했다. 북쪽이란 어휘는 언제나 황량함을 연상시킨다. 북녘 땅, 시베리아 유형지, 북망산… 북망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밤길에 한낱 환상을 보기 위해 이것이 무슨 짓인가 싶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언짢은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는 것이 어쩐지 꺼림해서 차를 되돌리고 싶었다. 더구나 의정부 외곽도로는 전등의 촉수가 낮아 앞길이 침침했다. 그러나 마음먹고 나선 길 끝까지 가 보기로 하였다.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착잡해졌다. 잠시 후면 내가 상상해온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광경이 나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와 아니면 그와 반대로 볼품 없는 모양으로 내 환상과 기대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실망감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라도 가서 확인하고 담담히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다졌다.

 

마침내 우리는 새의 가로등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금빛 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촉수 낮은 외등의 불빛은 너무 침침해 새의 모습을 비추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어둠 속에서 새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분간되지 않았다.

 

새는 낮에만 아름다운 것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금빛 새는 나의 상념 속에서만 존재했던 한낱 허상이었다. 환상이 무너진 빈 가슴에 어둠이 밀려왔다. 허탈감, 그러나 담담했다.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한 실망과 허망함을 얼마나 많이 경험했던가. 이 정도야 웃어 넘길 수 있는 일이지만, 세상은 결코 어떤 환상도 가질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삶의 고비 고비에서 얼마나 절실하게 터득해 왔는가.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렇게 가로등이 좋았다면 의정부 사람들이 왜 몰라. 구경 좋아하는 사람들 벌써 소문났지.”

 

듣고 보니 사실 그랬다. 내가 물었을 때 사람들의 소극적인 반응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찾아오지 말걸 그랬나 보다”고 하는 말에 남편은 말했다.

 

“그래도 그 동안 생각하면서 행복했지 않아.”

 

맞다. 그 환상이 비록 허망한 꿈일지라도 꿈을 꾸지 않았던 것보다는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의정부에 금빛 새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