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타는 개구리

 

 

                                                                                             宋圭浩

 

사천성(四川省)의 아미산(峨眉山)은 예로부터 선경(仙境)으로 널리 알려진 명산이다. 자동차는 산허리에 자리잡은 만년사(万年寺)를 향해 안개의 숲 속을 조심스레 올라간다.

 

시냇물이 굽이 도는 길섶에 두 여인이 광주리를 내려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세월을 함부로 앞당겨 쓰지 않은 여유로운 산사람들의 까마득한 옛 풍정이다.

 

관심봉(觀心峰) 낙타고개를 등진 높다란 만년사다. 여기 대웅전 앞의 백수지(白水池) 연못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게 마련이다. 가야금을 타는 개구리, 곧 탄금와(彈琴蛙)를 만나보려는 것이다.

 

옛날 이백(李白)과 주지스님 광준(廣浚)은 밝은 달밤이면 이 연못가에 나와 이백은 시를 읊고 광준은 가야금을 탔다고 한다. 그때 개구리가 귀동냥으로 얻어듣고 흉내낸 가야금 소리가 오늘날까지 이어내린 것이라 전해진다.

 

개구리의 가야금 연주를 들으러 모여든 사람들로 연못은 이미 겹겹으로 에워싸였다. 소리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아미산 자섬(윗수염두꺼비)이라 한다. 때마침 개구리 두 마리가 연못의 바위에 마치 우둘투둘한 흑갈색의 전복처럼 엎드려 달라붙어 있다.

 

사람들은 개구리의 가야금 소리가 빨리 듣고 싶은 것이다. 점심까지 가지고 기다리는 늙은이 내외에도 아랑곳없이 개구리는 옴쪽도 하지 않는다. 문득 옛날 일본 사람들이 두견새를 두고 이름난 다이묘(大名) 세 사람의 성격과 그 됨됨이를 견주던 말이 떠오른다.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자 두견새.

 

울지 않으면 울도록 하자 두견새.

 

울지 않으면 없애 버리자 두견새.

 

 

오전도 반나절이 지나건만 개구리는 아직도 눌어붙은 자세 그대로다. 그렇다고 ‘빨리 빨리’를 외치며 돌을 던지는 사람도 없거니와 요란스럽게 휘파람을 불며 재촉하지도 않는다. 기다리다 못한 사람은 조용히 떠나고, 지루하면 가볍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모르기는 하지만 개구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엎드려서 아직껏 가야금 12줄에 음정을 맞추어 목청을 가다듬는지도 모른다. 대체로 암수컷이 거의 같은 도·미·솔의 높낮이 음정이라 한다.

 

아차! 어쩌면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셨나 보다. 이들은 일손 바쁜 논두렁에서 가갸거겨 글줄이나 외우고, 개골개골 개굴거리며 날씨 타령이나 하는 청개구리와는 거리가 먼 족속이다.

 

아직도 움직거리지 않는 참을성 많고 고집스런 개구리다. 그렇다고 신선이 물려준 석장천(錫杖泉)의 샘물을 마시며 선경에서 노니는 홍춘평(洪椿坪)의 개구리를 부러워하는 것도 아니리라.

 

연못에 하얀 물거품이 보글보글 동그랗게 솟아오른다. 개구리 내외는 구경꾼을 대할 적마다 답답하고 미안한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버릇처럼 중얼거리나 보다.

 

지금 이 마당은 달 밝은 밤이 아니외다. 그리고 시도 가야금도 없소이다. 그런데 물 속에 던져진 동전 몇 닢으로 어찌 이 마음을 낚아올리려 하는지요.

 

진정 원이라면 비단결 같은 물 무늬에 실려 번지는 가야금 소리를 들으세요. 그것을 듣지 못한다면, 거기 꽃동산에 마치 비둘기가 날개를 편 듯한 구화(鳩花)꽃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리다.

 

개구리의 혼잣말에 느꺼워 발길을 돌리는 사람마다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이 없다. 이 세상에는 말없이 태어나서 말이 없는 가운데 많은 말을 남긴 것들이 수없이 많다.

 

황산(黃山)의 배운정(排雲亭) 앞에서는 여러 모양의 돌들이 볼거리다. 그런데 그곳 ‘가야금 타는 선녀’의 음악 소리를 직접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녀의 손끝에서 빚어진 그 신비로운 자연의 가야금 소리는 오로지 마음의 눈으로 들을 따름이라 한다.

 

뇌동평(雷洞坪)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같이 올라온 해발 3,077m의 아미산 정상이다. 그런데 해돋이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구름 안개가 시나브로 가시기 시작한다.

 

새벽 추위에 빌려 입은 방한복을 되돌려주고, 굽어보는 주목朱木의 숲바다는 아직도 꿈속이다. 멀리 공가설산(雪山)의 그리운 산줄기가 허옇게 빛나 보이는 아침이다.

 

만년사의 개구리도 이맘때면 일어났으리라. 이백의 아미산월가(峨眉山月歌)를 연주하는 가야금 소리가 아니, 그들 본디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아미산에 조각달도 외로운 가을 밤

 

달빛은 평강平羌(강물 이름) 강물 따라 흐른다.

 

청계淸溪(곳의 이름)를 떠나 삼협三峽을 향하여

 

그대를 그리며 유수(지금의 중경重慶)에 이르렀다.

 

                                                   ─ 필자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