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끊고 가시더니

 

 

                                                                                             李正林

 

 비구니만 기거하는 수덕사의 암자 '환희대'는 조촐한 여염집과도 같다. 그 자그마한 뜰로 들어서면 두 개의 댓돌이 보인다. 그 댓돌 위에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안쪽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누가 조심스럽게 마룻바닥을 울리며 걸어 나오는 기척이 난다. 그 소리에 잠시 귀를 모으고 서 있자니,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 여인이 모습을 나타내며 다소곳이 눈인사를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환영일 뿐, 여인은 방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무명 치마저고리가 아닌 잿빛 장삼을 입고 어깨에는 괴색(壞色) 가사를 걸친 그 낯익은 모습, 동그란 안경을 쓴 노스님이 영정(影幀) 속에서 무념의 시선으로 사바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 '청춘을 불사르고' 어느 날 홀연히 출가했던 일엽(一葉) 스님이 여기에 이렇게 계실 줄이야….

 나는 지금 스님이 43년 동안 몸담고 있었던 환희대의 선방(禪房)에 앉아 그와 마주하고 있다. 그가 장삼 자락을 스치고 다녔을 장판방, 그가 소리 안 나게 딛고 다녔을 마루, 그가 마음 비우고 내다보았을 작은 마당. 그 곳곳에 스며 있을 그의 체취를 가늠해 보며 나는 많은 것을 그에게 묻고 싶었다.

 인연이란 무엇인가. 인연의 사슬은 끊어질 수 있는 것이던가. 속세의 인연은 매정히 끊고 가시었으나 또 다른 인연을 새로이 만들지는 않으셨는가. 스물세 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두 번의 혼인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그 애집(愛執)의 연줄을 끊고 미련 없이 속세계를 등진 당신, 무엇이 당신을 이 곳으로 오게 했는가.

 나는 지금 달필로 내려 쓴 그의 육필 서한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주의 총아는 사랑이다. (…) 나는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자라서는 문학을 사랑하고 사랑을 사랑하였다. 사랑으로 인생문제를 해결 지으려 하였으나 인생문제를 상대적인 그 사랑으로는 해결 지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대가(代價) 없는 사랑은 사랑할 수 없고, 반응이 없는 사랑에는 복수심이 생기고, 사랑을 독점하기 위하여 질투하게 되는 그 사랑은 괴로움의 수레바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 찾아 전진한 결과 사랑문제를 완전하게 해결 지어 임의로 운용하는 부처님께 귀의(歸依)하게 된 것이다."       

    

 '대가 없는 사랑, 반응이 없는 사랑, 독점하지 못하는 사랑', 그런 사랑이 안겨주는 고통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면(不眠)의 밤을 보내었던가. 사랑이라는 추상 명사까지도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은 언제부터 감각적인 사랑을 갈구하게 되었고, 갈구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사랑은 곧 고통임을 우리는 날마다 배워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난 어느 아침, 그는 여인의 화려한 옷을 미련 없이 벗어버리고 잿빛 승복을 입었다. 잿빛은 다른 빛깔을 받아들이지 않아, 승복에는 "속세에 물들지 말고 자기 정진(精進)에 전념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데, 마음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봇물처럼 새어 들어왔을 그 원색의 정념(情念)을 그는 어찌 다스렸을까.

 

  "사랑과 슬픔은 내 마음의 소작(所作)으로 내가 안고 다니는 줄 알면 아무 데나 버릴 수도 있다. 촉(觸)을 모르면 처(處)가 안 생기고, 처(處)가 없으면 일이 일어날 곳을 잃어 천하는 태평하다."              

  

 스님이 이 법어(法語)를 깨치게 되기까지 수행했던 그 긴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세월이 새삼 마음을 아릿하게 한다.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버리고 또 버렸을 마음, 그러나 본디 버려야 할 마음도 지녀야 할 마음도 따로 없음을 시각(始覺)한 그날, 그는 비로소 몸이 떨리는 법열(法悅)을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얼굴이 달빛처럼 창백한 어린 손상좌(孫上佐)가 향기로운 솔잎차를 내온다.  향기가 너무 짙어 취해버릴 것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불가에서 맺어진 또 다른 인연들이 노스님의 향기로운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오늘도 정진 수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불연(佛緣)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고 보면 이승의 인연이란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업(業)의 고리 같은 것이 아닐까. 아니, 전생의 인연이 이승에서 맺어지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두 그 인연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운명적인 존재들이 아닐까.  

 법손(法孫)들의 배웅을 받으며 암자의 문을 나선다. 이 터가 너무 좋아 '환희대'라 하였다지만, 그 환희대를 나서는 내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마음이 만든 인연의 번뇌가 무겁고, 그 인연 자르지 못하는 무명(無明)한 집착이 또한 무거웠기 때문이다.

 갈 때보다 더욱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공즉시색(空卽是色)을 깨닫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했다. 내 어리석은 미혹(迷惑)은 대체 언제쯤 끝이 날 것인가.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