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핀 자목련

 

 

                                                                                            구양근

 

시원한 아침 공기를 쐬며 주택가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웬일인가, 양지쪽 인형처럼 이쁜 어느 집 앞에 자목련 한 그루가 활짝 웃음을 머금고 나를 반긴다. 지금이 12월도 중순을 넘어서고 있는데……. 나는 가슴이 메여 기쁨과 놀라움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기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만(灣)의 건너편 알바니 동네에서 아침 운동을 하려 언덕을 오르는 중이었다. 미국에 온 지 4개월이 되었는데도 나는 여기가 한국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아침이면 서울에서와 똑같이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만큼 산책을 하고 돌아온다. 다만 거리 풍경이 서울과 좀 다를 뿐이다. 서울에서는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강변 산책로를 걸었는데 여기는 자연 그대로의 마을과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수많은 사람이 걷고 뛰련만 겨우 한두 사람 만날까 말까이고 거의가 나 혼자만의 산책길이다. 백인 여자 하나가 항상 와서 맨손체조하듯 상봉에서 몸을 풀고 내려가고, 또 어떤 동양인 하나가 열심히 나처럼 언덕을 오른다. 하도 만나는 횟수가 잦아서 한번은 영어로 인사하지 않고 중국어로 해 보았다. 그는 냉큼 중국어로 대답한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북경에서 왔고, 자기 딸이 여기서 포스닥을 하고 있어서 다니러 왔단다.

 

여기는 어느 집이고 대문도 없고 담벼락도 없다. 넓고 한가로운 한길 양쪽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원과 주택이 있다. 일본처럼 도둑이 없다는 나라에도 자기 집 경계 표시로 허리쯤 오게 듬성듬성한 철책 같은 것을 쳐 놓았다. 물론 자물쇠는 채워두지 않고 손님이 끄르고 들어가서 현관문에서 노크를 한다. 그러나 여기는 아예 그 낮은 철책 같은 것마저도 없다. 그러니 잔디로 대표되는 미국 주택의 아름다운 정원을 자유스럽게 지나다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요리는 중국 요리, 집은 양옥집…” 어쩌고 하던 옛날 옛적 어릴 때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래서 집은 양옥이 제일이라고 했구나. 누구도 거부감을 느낄 만한 집을 별로 가지려 하지 않는다. 어디고 아주 초라한 집도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자기 집의 잔디와 꽃과 정원수를 정성들여 손질한다. 나는 만약 미국에서 집을 산다면 꼭 저 자목련 정원이 있는 저 집을 사야겠다.

 

나는 미국에 머리를 식히러 왔다. 지금까지 꽁생원처럼 쫓기며 살아왔으니 이번에는 가슴을 펴고 실컷 놀다 가려니……. 그러나 그것도 팔자인가 보다. 골프를 좀 배워볼까 하고 남을 따라 나서 몇 번 쳐보았더니 손이 저려와서 견딜 수 없다. 새끼손가락 하나는 아예 오그라지지가 않는다. 차도 한번 운전해 볼까 하고 몰고 나갔다가 주차장에서 말뚝을 들이받아 앞이 쪼그라들고 말았다. 내 팔자는 평생 책이나 들여다보며 살라는가 보다 하고 다시 한국에서와 똑같은 생활로 환원하였다.

 

아내는 자목련을 제일 좋아하였다. 자목련만 보면 아! 하고 환성을 지르며 발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아내는 고고하고 청초하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기 같은 자목련을 좋아했나 보다.

 

나는 양지쪽으로 뻗은 그 집 자목련 가지의 꽃송이를 만져보았다. 아내의 마지막 날 만져보던 머리카락처럼 굵고 진한 색이다. 아내는 머리카락이 유난히 굵고 진하고 윤기 나는 흑색이었다. 나의 가늘고 노랑기 나는 머리칼과 비교해 보면 마치 남녀가 바뀐 격이었다. 우리 머리카락 좀 바꾸자고 몇 번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자목련을 보고 학교를 갔더니 이번에는 고생물학 박물관 잔디밭에 세 그루나 자목련이 나를 반긴다. 전에는 머금고만 있다가 오늘쯤 만개한 것 같다. 웃음을 웃고 손짓까지 한다. 어쩌면 저렇게도 고아하게 눈이 시도록 파란 하늘에 꽃송이를 하늘거리고 있을까.

 

이곳 자목련은 한국처럼 곧게 뻗은 것이 아니고 오래 된 노송처럼 자리 잡은 아담한 목련이다. 한국에서는 봄에만 피는 꽃이 이곳은 기후가 달라서 12월에 꽃을 피운 모양이다.

 

나는 어디서나 불현듯 목이 메는 버릇이 생겼다. 혼자 보기가 아까운 경치를 보면 그런 발작을 하나 보다. 학교 언덕에 자리잡은 로렌스 박물관에 갔을 때도 나는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전시된 물건들을 보고 밑 층 식당으로 내려섰을 때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건너편 샌프란시스코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청명한 날, 앞바다에 떠 있는 베이 브리지, 골든 브리지 하며 전 시가지가 손에 잡힐 듯이 다가왔다.

 

나는 거기서도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참을 서 있었다. 어느 동양인 남자의 거동이 궁금했던지 한 백인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차를 한 잔 대접하겠으니 쉬어 가라고 미국인답지 않은 호의를 베푼다. 마침 식사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앉을 수 없는 시간인데도 나만은 오래 앉아 있다가 가라는 눈치이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주는 차를 받아 들고 창가로 갔다. 해가 골든 브리지를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바다를 보고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