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새벽 예불

 

 

                                                                                            최순희

 

고교 동창회에서 마련한 문화유산 답사에 따라 나섰다. 선암사, 천은사와 화엄사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는데, 내 개인적으로 가장 잊을 수 없는 경험은 화엄사 새벽 예불에 참례한 일이다.

 

화엄사라면 오래 전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일 때 부러 찾아 내려온 적이 있으나, 국립공원 입장료 징수 문제로 승려들이 데모 중이어서 아쉽고 황당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곳이다.

 

예불 시간은 새벽 3시. 2시 반에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불자인 두 친구를 따라 나섰다. 새벽 하늘엔 열사흘 달이 휘영청 밝고, 지상의 반짝이는 보석들이 죄다 저 위 검은 비로드 휘장에 올라가 박힌 듯 별빛 또한 총총했다. 11월 초의 날씨는 걷기에 상쾌할 정도로 전혀 춥지도 않다. 우리는 거뭇한 산줄기를 바라보며, 또 길 오른쪽 계곡을 콸콸 흘러내리는 물 소리를 들으며, 절이라고 짐작되는 방향을 따라 아스팔트 길을 걸어 올라갔다.

 

마침내 일주문 앞에 섰다. 잠겨 있다. 음, 이젠 어쩐다? 싶은 참에 안쪽 멀리서 불빛 하나가 흔들리며 다가왔다. 경비원이 문을 열어줌과 동시에 탁, 타악, 맑은 목탁 소리가 고요히 잠든 새벽을 깨우며 저 안쪽 요사채를 감돌아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량식이 막 시작된 것이다. 경비원에게 물으니 3시부터 도량식이고, 예불은 3시 40분부터란다. 우리는 모든 것의 첫 시작에 때맞춰 온 셈이다.

 

일주문 바로 안쪽의 돌확에서 목을 축이고 대웅전을 찾아 어둠 속을 더듬어 올라갔다. 목탁 소리가 지나가자 선방 여기저기에서 소리 없이 불빛이 밝혀졌다. 대웅전으로 들어가 친구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절에서 묵은 손님인 듯, 우리보다도 앞서 온 불자 두어 명이 자리를 잡고 묵상에 잠겨 있다.

 

두 친구는 먼저 불전함으로 가더니 준비한 예물을 공손히 넣는다. 어제 친구에게 물었으나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하여 생각 없이 따라온 것인데, 영 예가 아니게 되었다. 친구는 거기 비치된 것인 듯, 천수경을 내 앞에 놓아주었다. 나중에 따라 읽으라는 것이겠지.

 

조용히 합장하고 앉아 법당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과 소리에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열 달째 주일 미사도 빼먹고 있는 준 냉담자이긴 하지만, 나는 공식적으로는 ‘남자 따라’ 주저 없이 가톨릭을 받아들인 가톨릭 신자이다. 만약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래 전 몹시도 외롭던 유학 시절, 내 발로 지쳐 찾아간 어느 미주 영락교회의 찬양대에 매혹되어 개신교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내세 따위는 없이 죽으면 그저 ‘무’로 돌아갔으면 싶은 지금은, 때로 잘못된 신앙이 마음을 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닫는 게 아닐까 회의가 드는 지금은, 만약 내게 새로이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기독교보다는 오히려 불교에 귀의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주위 분위기가 조금 낯설긴 해도 남의 집에 온 듯한 서름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벽 미사를 볼 때처럼 첫 새벽의 청정한 고요 속에 몸과 마음이 함께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앞쪽, 그러니까 불상을 향해 우측 구석에 홀로 앉은 스님이 앞에 세워진 징을 치는 것을 신호로 그 새 제법 많이 모여든 신도들은 제가끔 배를 올리기도 하고 묵상에 잠겨 있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가족사진을 붙인 기도문을 앞에 놓고 앉은 것이, 그들을 위한 간절한 마음 속 염원을 비는 모양이다.

 

스님들이 하나 둘 들어와 정좌했다. 가늘게 공기를 흔들며 사라지는 징 소리 끝자락과 겹쳐지면서 대웅전 밖에서는 낮고 은은한 법고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취해 앉아 있는데, 문득 북 소리가 잦아들더니 모두들 일어서서 일 배를 올리고는 다시 앉아 일제히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3시 40분, 도량식이 끝나고 이제부터가 새벽 예불인 모양이다.

 

친구가 제일 좋아한다는 ‘지심…’으로 시작하는 긴 기도문이 계속되는 동안 일념삼천, 나도 덩달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내 마음 속의 기도문을 외웠다. 그런데 습관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거기 화엄사 대웅전의 엄숙하고 장려한 새벽 예불에 참례하고 앉았는데, 난데없이 ‘주님, 제 안에 모시기 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하는, 가톨릭 미사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기도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 무슨 망념일까. 당황하여 얼른 ‘부처님,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이 곧 이 마음으로 통하는 것, 알아주시겠지요’라고 중얼거렸다. 대자대비하신 부처께서는 이 중생의 모습을 빙긋 미소 띤 얼굴로 굽어보고 계시리라 믿고 싶었다. 노랫가락 같은 염불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저 무념무상, 더 이상 무얼 비는 것도 잊어버린 채 맑고 텅 빈 평정심으로 앉아 있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즉 구업(口業)으로 지은 죄를 깨끗이 한다는 진언眞言으로 시작하는 천수경 독경이 이어졌다. 내 혀 속에 들어 있는 칼과 도끼날을 잘못 날려 남에게,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 상처입힌 일이 어쩔 수 없이 떠올랐다.

 

지난 연초, 게으름을 부리며 또 미사 빠질 궁리를 하는 나를 그가 나무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교회 안에서만 사랑과 용서를 말하고 교회 밖의 일상사에서는 원칙과 도덕의 이름으로 비신앙인보다도 더 편협하고 가차 없는 잣대를 가졌다면서, 그런 그의 모습이 싫어서라도 교회에 나가기 싫다며 대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설마 한두 주일 지나면 함께 가자고 해줄 줄 알았으나, 일 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도 그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다. 가톨릭 교리를 정통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다만 상징과 은유로 받아들이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주일날 그와 손잡고 함께 미사를 다녀오면 뭔가 맑고 좋은 것을 함께 나눠 가진 듯한 유대감을 맛보곤 했었다. 이제 그런 시간이 없어지니, 혼자 왔다갔다 하는 그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데 이상하게도 더 외로워진 것은 나인 듯하다. 이제 내 쪽에서 먼저 슬며시 그를 따라 나설 때가 가까워오는 것일까.

 

천수경이 끝나자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하며 되풀이되는 기도와 함께 모두들 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옆에서 정성스런 몸짓으로 배를 올리는 두 친구들의 모습이 그지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나도 따라 읊으며 배를 올렸다. 가톨릭 신자로서의 거부감이나 저어함 같은 것은 들지 않았다. 무얼 간절히 간구하기보다는 그저 무념무상의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예를 다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몇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배는 꽤 오래`─`나중에 알고 보니 백팔 번`―`계속되었다. 힘이 들면 잠깐씩 쉬기도 했지만 나도 아마 칠팔십 배는 올린 것 같다. 진작 알았으면 백팔 배를 채웠을 텐데, 무척 아쉬웠다.

 

백팔 배가 끝나자, 미사를 마치고 옆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처럼 서로서로 합장하고 인사를 나눈 다음 법당을 나왔다. 다시 시계를 보니 5시 10분 전. 비록 내 것이 아니긴 하지만 함께 무언가 귀한 것을 나눠 가진 듯한 내밀한 충만함이 가슴 속에 뿌듯이 차올랐다.

 

내려오는 길엔 달이 지고 대신 별빛이 아까보다도 더 총총하게 밝았다. 어느 것이 안드로메다 자리일까? 또 카시오페이아는? 별만 올려다보며 걷다가 양쪽 찻길을 구분짓는 네모난 요철에 걸려 아스팔트 위에 호되게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아팠고 왼쪽 무릎과 턱이 얼얼했으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발 밑을 살피는 데만 급급하여 저 영롱한 별빛도 제대로 못 올려다보는 것보단 좋지 않은가.

 

그대로 큰 대 자로 누운 채 나는 언제쯤 다시 미사에 나갈지 생각해 보았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던가. 언젠가 가까운 날, 그러나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그때까진 아직 정리해야 할 입장이 남아 있고, 다짐해야 할 자세가 있다.

 

조금 전 지극한 몸짓으로 배를 올리고 기도문을 외우던 친구들에게서 받은 감동을 되새겨보았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무얼 따지고 분별하는 것이 아닐 터이다. 교회에도 방금 새벽 예불에 참례했듯 아이 같은 단순 소박한 마음으로 그냥 그 자체만을 위해서 나갈 수는 없을까. 만일 가까운 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남편의 손을 잡고 미사에 따라 나서게 된다면, 그건 여기 화엄사 새벽 예불 때 맛본 부처님의 감화력 덕분일 것임이 아이로니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