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등이 켜질 무렵

 

 

                                                                                           최민자

 

노을이 진다. 발그레한 하늘이 회보라빛으로 물들어가고, 도시는 온통 어스름한 빛으로 에워싸인다. 하늘과 땅, 사물과 사물의 경계가 소리도 없이 허물어진다. 낮과 밤, 해와 달의 정령들이 가만가만 자리를 바꾸어 앉는 시간. 거리에 하나 둘 외등이 켜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저녁마다 찾아드는 이 점령군은 작전 타임을 오래 끌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들이 다 그렇듯 일몰의 고즈넉함도 순식간에 어둠에게 먹혀버린다. 꽃, 젊음,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라지는 것들은 쓸쓸함을 남긴다. 도시는 이미 포위되었다.

 

나는 지금 교보 빌딩 1층에 있는 카페에 와 앉아 있다. 넘쳐나는 책들 사이에서, 아직도 책의 향기에 코를 박고 싶어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받은 위안을 조금 더 따뜻하게 공글러 두고 싶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창 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중이다. 수묵이 번지듯 어두워오는 거리. 유리창 저편으로 내다보이는 초저녁 거리 풍경이 좋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컷의 삽화처럼 낯설고도 친숙하다. 긴 코트를 입은 중년 여인이 건물의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온다. 서류 가방을 든 젊은 남자 하나가 문 밖으로 나가려다가 유리문 안쪽에 비켜 서 있다. 이제 그 남자는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지하도를 향해 성큼성큼 내려갈 것이다. 아니면 가슴 속에 외등 하나를 켜고 아침에 떠나온 얼굴을 향하여 운전대에 키를 꽂을지도 모른다. 여우가 굴을 찾듯, 까치가 둥지에 오르듯 제각각 어딘가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는 시간. 해가 산 너머로 돌아갈 때 사람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나는 언제나 신기하다.

 

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집이란 모름지기 세상을 향한 베이스 캠프일 터이다. 건물 어딘가에 진을 쳐 두고서, 사람들은 아침마다 바깥으로 바깥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저마다 원하는 봉우리를 향하여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다시 도전한다. 지치고 고단한 몸뚱이를 누일 최후의 보루가 거기밖에 없음에 안도하고 때로 절망한다.

 

검정 앞치마를 두른 청년들이 주문을 받기 위해 테이블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지치지도 않고 담소를 나눈다. 의미 없는 소음은 때때로 방음벽과 마찬가지여서 자기 안의 세상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나이 지긋한 신사들이 더러 눈에 띄어서일까. 카페 안 사람들의 표정은 지금 이 시간에도 비교적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막연하면서도 내면적인, 무언지 모를 느림의 냄새가 가만가만 풍겨나고 있는 것도 같다. 서울에서 가장 큰 서점의 위층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일단 여기에 약속을 정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필요이상으로 관대해지곤 한다.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뒤편 테이블에서 와아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벙근 꽃봉오리가 일시에 터지듯 싱그럽게 쏟아내는 웃음소리는 차라리 분출하는 향기에 가깝다. 빛깔이 주는 느낌을 음악과 연결시킨 화가도 있지만, 향기 또한 음악과 부드럽게 환치된다. 언젠가 을지로 3가 지하도를 걷고 있을 때 알 수 없는 박하 향 같은 것이 지하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충만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답답한 지하 공간을 메우고 있던 것은 한 CD점에서 울려 퍼지던 앤디 윌리엄스의 ‘문 리버’였을 뿐인데. 감미로운 음악이 있는 곳에서는 커피 향이 더욱 깊게 스며오는 걸 보면 후각과 청각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제 거리로 나온다. 수형이 의젓한 느티나무는 벗은 모습도 아름답다. 하늘은 까만 잔가지들로 섬세하게 나뉘어 있고, 정월 초순의 조각달이 나뭇가지 사이에 샛노랗게 걸려 있다. 여름날 이 시간쯤이었다면 짙푸른 가지 저편으로 빨아먹다 버린 레몬 조각 같은 달이 어슴푸레 얼굴을 내밀었을 것이다.

 

길가 은행나무 가지마다에 가느다란 전깃줄이 빽빽하게 동여 있다. 수정되지 않은 물고기 알처럼 줄에 매달린 작은 전구들은 이제는 저녁에도 불을 켜지 않는다. 연말 연시, 휘황한 불꽃으로 온몸을 휘감은 나목들을 볼 때면 아름답다 싶으면서도 걱정이 되곤 하였다. 저것들이 무리 없이 싹을 낼 수 있을까. 제 안을 다스리며 묵상을 해야 할 시기에 뜨겁고 찬란한 빛의 화형을 당하고 있었으니 호르몬에 교란이 생기지나 않았을까.

 

마당에 시멘트를 깔면 계절은 그냥 지나간다. 그러나 흙을 부어두면 봄이, 여름이, 가을이 머물다 간다. 제비꽃이 피고 개망초가 흔들리고 볼이 하얀 박새도 날아와 앉는다. 삭막한 광화문 네거리에도 계절이 오고 또 가는 것은  몇 그루의 저 인내심 많은 나무들 덕분일지도 모른다.

 

빌딩의 창문마다 넘쳐나는 불빛. 어느 새 밤이다. 도시의 밤은 불빛이 있음으로 하여 비로소 아늑하고 견딜만 해진다. 이제 하늘에도 불이 켜질 것이다. 개밥바라기 같은 부지런한 별들은 서쪽 산마루에 진즉 돋아나 있을지 모른다. 별은 뜬다는 표현보다 돋아난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날개 달린 점등인들이 광대무변의 공간을 날아다니며 길다란 막대 끝으로 하나씩 하나씩 불을 옮겨 붙이듯, 도시 하늘의 별들은 그렇게 돋아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아침에 나간 사람들이 돌아오기 전에, 시간이 빗장을 걸어 잠그기 전에, 서둘러 진지에 들어야 하리라. 받아들일 사람을 다 받아들이고 재울 사람을 다 재우고, 오늘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저 혼자 가만히 일렁거리다 시간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영겁의 늪 속으로 가뭇없이, 가뭇없이 회귀해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