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金世忠

나는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인 1988년 8월 말경에, 당시 몸담고 있던 서울의 법률회사를 나와서 우연히 인연이 닿게 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안동(安東)이란 전통 고장으로 내려왔다.

처음으로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개설한 지 며칠 뒤, 범상치 않은 위엄이 몸에 배여 있는 듯한 초로(初老)의 신사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내가 건네준 명함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나는 속으로 ‘혹시 저분이 나에게 어느 학교 출신인지, 또는 전에 근무한 곳이 어딘지 등을 물어보려고 하는 모양이다’라고 잠시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그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이내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왔다.

“관향(貫鄕)이 어딘가요?”

대구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만 생활해온 나로서는 순간 어리둥절하였으나 ‘아마 어디 김씨인가를 묻는구나’ 싶어 “김해(金海)인데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바짝 다가앉아 내 손을 잡으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느 파(派)이신가요?”

대도시 생활 속에서 철저한 학연지상주의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상대방이 무안해 할까봐 “삼현파(三賢派)입니다”라고 마지못해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내 손을 잡고 있던 그의 두툼한 손바닥에서 악력(握力)이 갑자기 몇 배나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이어 그는 “우리 집안 14대 조모(祖母)님이 바로 당신 집안에서 시집오셨소!”라는 것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문화적 충격은 쉽게 필설로써 표현하기가 어렵다.

‘추로지향(鄒魯之鄕)’이란 자긍심을 지닌 안동 지방에서 살아오던 중, 객지인(客地人)인 나의 가슴에 가장 인상적으로 와 닿은 것은 바로 엄청난 ‘뿌리’의식이었다. 혹자는 요즈음과 같은 고도산업사회에서 그까짓 케케묵은 뿌리를 찾아보면 무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안동인의 뿌리의식은 정말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손(子孫)은 항상 현조(顯祖)의 가르침을 잊지 말고, 절대로 조상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는 언행을 스스로 삼가자는 마음가짐이 바로 이러한 뿌리의식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대구나 서울에서 생활할 때에는 나의 조상이 누구인지 별 관심도 없었고, 누구 한 사람 나에게 가르쳐주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안동에 내려온 지 몇 년쯤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나의 ‘뿌리’를 찾게 된 셈이었다.

나의 조상 중에는 조선조 성종 17년 문과(文科)에 장원급제하여 춘추관의 사관(史官)으로 재직하다가 연산군 4년 무오사화 때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선생이 계시고, 그분은 사림파(士林派) 유림세계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나는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신조를 하나 갖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조(顯祖) 탁영 할아버지의 후예답게 매사에 자중하고 성실한 삶을 영위할 것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탁영 할아버지에게 못난 자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요즈음 새로이 만난 사람들과 통성명을 하다가 옛날 탁영 할아버지와 동문수학한 분들(탁영 할아버지의 스승인 (金宗直) 선생의 다른 제자들)의 후예(後裔)라도 만나게 되면, 그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수하던 손아귀에 불끈 힘이 들어가곤 한다.

 

서울 법대 졸업. 서울시립대, 한국방송통신대 강사. 현재 경북법무법인 변호사.로펌(LEE & KO) 소속 변호사, 국제로타리 3630지구 호스트클럽 회장 등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