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가에서

 

                                                                                             최병호

매표 아가씨가 선뜻 표를 바꾸어주었다. 좋은 일진(日辰)이구나.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아니, 이건? 번호만 다른, 같은 조건의 앞자리가 아닌가. 말을 잘못 들은 건가? 다시 매표구로 갔다. 그녀는, 자긴 좌석 배치를 잘 알 수 없으니 원하는 번호를 대라고 했다. 나는 즉각 버스로 달려가서 확인하고 이를 복명했다. 그녀는 거침없이 그건 다 매진된 좌석이라 했다. 퍼뜩 묘한 생각이 들었으나 뒷자리도 괜찮다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일솜씨는 왕년의 일급 타자수처럼 기민했다.

좌석은 사뭇 뒤로 밀려 있었다. 그런데 자리는 그 자리가 그 자리였다. 이런! 울컥 속이 치미는데, 찍~ 하고 문이 닫히며 버스가 움직였다. 듬성듬성한 빈자리부터 눈에 띄었다. 지정석에 앉고 보니 앞 줄은 건너편 자리까지 고스란히 비어 있다. 나는 우정 고독 같은 걸 즐기기 위해 뒤에 만큼 물러 앉은 묘한 꼴이 되어버렸다. 비실비실 일어나 앞 창가 자리로 옮겨 앉았다.

밖으로 향해야 할 눈길이 저절로 감겨졌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민영(民營)이라서 그럴까? 철도처럼 우대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내가 매표 아가씨에게 무슨 미움 살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연이라면 참 고약한 일진이구나. 퍼뜩, 이것도 그 일환(一環)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나는 열차를 자주 타는 편이다. 육로의 변수를 믿을 수 없어서다. 벌써 철도회원이 되어 제법 예약의 편의도 누리고 있다. 서둠 없이 역에 나가 특정 창구에서 VIP처럼 느긋하게 표를 받아 열차에 오르면, 그때마다 배정된 자리는 거의 같은 조건의 자리였다. 푹신 앉고 보면 창설주가 옆을 내리 막고 있었다. 앞뒤로 밀쳐진 커튼까지 거느리고. 앞 의자의 등받이가 이에 맞대어져 밖을 보기엔 매우 옹색했다. 창가라기보다는 창설주 가였다. 그래도 나는 그걸 그냥 감사하고 흐뭇하게 여겼다.

자리는 고사하고, 표 한 장을 얻기 위해 네댓 시간도 꿈쩍 않고 줄 섰던, 그리하여 천행으로 표를 얻게 되면 밀림 같은 입석의 틈새를 용하게 비집었던, 그런 지난날을 사뭇 잊지 않고 있어서다. 창설주 가의 자리면 어떤가. 눈감고 꿈을 타면 더욱 좋지. 그리하여 나는 비몽사몽간의 그런 감밀(甘蜜)을 즐기는 편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자리가 불편스럽게 느껴졌다. 이게 회원에 대한 대접인가? 회원은 봉사 차원에서 궂은 자리를 먼저 채우게 되어 있는 건가? 예약할 때 아예 좋은 자리를 요구할까? 아니야, 날마다 타는 것도 아닌데. 더구나 우대까지 받고 있는 처지에. 그래, 그건 분명 어떤 호의일 거야. 아무래도 그렇겠어.

느닷없이 특정 시대의 특정 상황이 떠올려졌다. 밀림 같은 그 입석 시절, 세상 탓인지 기막힌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허위허위 달리는 괴물 같은 열차에 번개같이 돌탄(石彈)을 발사하는 악동들이 있었다. 삽시간에 차창이 박살나고 열차 안은 피투성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축소판 전쟁 상황이 어찌하여 새삼 되살아났는지 나도 알 수 없다. 그때 그 자리가 바로 창설주 옆자리였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패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 그런 희한한 사실을 되새겨 안전을 챙겨주었구먼……. 그것이야말로 갸륵한 역사의식의 발로가 아닌가.

나의 열차 타기는 그래서 그렁저렁 늘 편안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는 열차의 경우와 좀 다르다. 나는 확 트인 앞자리를 최고로 친다. 그래서 버스를 타면 기사와 함께 앞을 쫓을 수 있는, 대각선상의 3번 좌석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 자리는 일차적으로 VIP를 기다리는 자리인지, 때맞추어 표를 얻기가 쉽지 않다. 차선의 좌석이 창가 자리다. 창 턱에 팔꿈치를 괴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받치면 들도 산도 다투어 안겨온다. 그 파노라마야!

그런데 나의 경우, 버스표를 사고 보면 기이하게도 열차에서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마침 승객도 많지 않고 시간도 좀 여유가 있어서 그런 사정을 얘기하고 표를 바꿔보려 했던 것인데, 기이하게도 정말 기이한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울컥 하는 심정에 저절로 눈이 감겼지만 이윽고 열차에서처럼 비몽사몽의 경지에 빠져버렸다. 그게 그거구먼. 같은 맥이야. 보호에 무슨 민영, 국영이 따로 있을까. 가만히 있을 걸…….

노경에 들면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들으면서 그냥 조용히 보내는 것이 순리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나는 황망히 돋보기나 돋듣기(보청기)를 챙겨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이를 부질없는 의욕이라 하랴, 객기라 하랴.

 

도착을 알리는 방송에 이어 신호 때문인지, 정체 때문인지 몇 번인가 멈칫거리던 버스가 마침내 터미널에 당도했다. 가만히 눈을 떴다. 차창엔 사양 놀이 화사한 유화를 그리고 있다. 나는 그 빛살을 얼굴에 가득 받으며 천천히 안전띠를 풀고, 물길처럼 빠져나가는 통로의 흐름에 소리 없이 끼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내리면서 기사에게 공손히 예를 표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