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빛

 

                                                                                          김형진

등불

고속버스가 강남 터미널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줄을 지어 내리기 시작하다. 가방을 챙겨 들고 사람들의 뒤를 따르다. 버스에서 내려 한동안 사방을 두리번거리기만 하다. 동서남북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서다.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데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도무지 감감하다. 서울은 멀쩡하던 사람을 금세 눈뜬장님을 만드는 괴력을 가졌나 보다. 두리번두리번 공중전화를 찾다. 이 깜깜한 어둠 속에선 우선 길을 밝혀줄 등불을 찾아야 하니까.

막내의 안내를 듣고도 몇 번이나 헛걸음을 하고 나서 지하도에 들어가기는 갔는데 밀려오고 밀려가는 인파에 휩쓸리고 만다. 한참이나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지하철 매표소를 찾다. 표를 사 안내 표지를 동공에 각인한 뒤 군중 속에 합류하여 어찌어찌 열차를 타다. 열차 안은 콩나물시루 속이다. 옆사람과 어깨를 엇갈리고 뒷사람과 등을 비비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등을 밟히면서 죽은 듯이 서 있다. 그러면서도 가슴은 아직도 두근두근하다. 도착역을 알려주는 방송을 하기는 하는 모양인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소음에 밀려선지, 귀까지 고장이 나서인지 귓바퀴에서 맴돌 뿐이다.

사람들 얼굴 사이 비좁은 공간을 더듬어 차창 밖에 시선을 고정시키다. 당도한 역과 다음 역을 확인하는 작업이 난해한 책을 읽기보다 고되다. 우선 갈아탈 역을 지나치면 큰일이니까. 출입문 위쪽에 붙어 있는 지도는 멀어 보이지 않다. 옆사람에게 물어보면 수월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입이 열리지 않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어둠과 밝음의 교차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하다.

갈아 타는 역을 놓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차에서 내린 곳은 지상이다. 시야에 펼쳐진 빌딩 숲이 어스름을 뒤집어쓰고 있다. 우중충한 그 풍경이 황량하다. 안내 화살표를 따라 다시 인파에 휩쓸리다. 화살이 거꾸로 선 곳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무심히 사람들 뒤를 따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타는 곳이다. 어쩐지 수월하다 싶어 벽에 붙은 표지판을 확인해 보니 타야 할 반대편이다. 가슴이 콩알만 해지다. 그러면서 온몸이 적막에 휩싸이다. 들어왔던 길을 허든허든 되짚어 나오다.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마중나온다는 막내에게 전철 타면 된다면서 마중은 무슨 마중이냐고 큰 소리를 치기까지 했는데. 그러나 하는 수 없지. 다시 막내에게 전화를 하다.

막내의 자세한 안내를 듣고도 조마조마 에스컬레이터를 탔다가 미로를 걷고 또 계단을 걸어 내려 겨우 제 구멍을 찾다. 갈아 탄 열차는 자리를 골라 앉을 정도로 한가하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도 눈에 띄다. 푹신한 자리에 몸을 부리니 피로가 몰려온다. 안내방송이 또렷이 들려 신경이 덜 쓰이다. 그렇다고 마음놓고 졸 수 없다. 내릴 역을 지나치면 낭패니까. 내려앉는 눈두덩을 버틴겨 뜨고 연방 하품을 하며 졸음과 한창 싸우는 중에 내릴 역에 닿다.

차표를 넣어 차단기를 열고 나오다. 하차한 사람이 몇 안 되어 나가는 길이 커다란 동굴 같다. 허위허위 3번 출구를 향하다. 출구 밑에서 올려다보니 아스라이 솟아오른 시멘트 층계가 시야를 압도하다. 팍팍한 다리에 힘을 주어가며 터덕터덕 계단을 오르다.

지하에서 벗어나니 현란한 불빛에 어수선하다. 출구에서 곧장 큰 길을 따라 한 블록 간 다음 왼쪽으로 꺾어들어 조금 가면 오른쪽 골목 입구에 약국과 식용품가게가 양쪽으로 갈라 서 있고, 그 골목에 접어들어 다섯 번째 작은 기와이엉이 막내네 집이다. 왼쪽으로 꺾어들다. 그런데 조금 가도 약국도 식용품가게도 없다. 대신 근처를 다 뭉개고 들어선 고층 건물이 휘황한 빛을 뿜어내다.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또 방향을 잃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다. 그러나 종잡을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또 공중전화를 찾다.

마중나온 막내의 뒤를 따라가며 쓴웃음을 짓다. 이 거대한 문명 속에서 나를 안내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작은 등불뿐이라니.

 

호롱불

꿈인지 생신지 몽롱한 가운데서 자지러지는 어린애 울음소리를 듣는다. 계속되는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다. 어느 때쯤일까. 방 안은 아직 깜깜하다. 상경길이 고되어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쉬 일어날 수가 없다. 울음소리가 더 또렷해지면서 안방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퍼뜩 정신이 든다. 사위와 막내가 주고받는 다급한 말소리에 이어 주방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냉동실에 얼음 없어? 사위의 물음에, 여름도 아닌데 얼음은… 막내의 대꾸, 수건에 물을 적셔 짜는 소리, 종종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이어 문 닫는 소리가 들린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전등을 켜고 머리맡에 둔 시계를 본다. 오전 세 시 이십오 분. 손녀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고는 있지만 모른 체하고 있을 수가 없다. 주섬주섬 바지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와 슬며시 안방 문을 연다.

은이가 아프냐? 이따금 이래요. 아이의 이마에 물수건을 대고 손바닥으로 짚고 뒤돌아보는 막내의 음성이 무겁다. 더 주무시지 않고요. 긴 두 다리로 어린 딸을 감싸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사위의 눈빛이 흐릿하다. 은이는 이마 말고도 양 겨드랑이에 물수건을 낀 채 반듯이 누워 있다. 어제 저녁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던 그 모습이 아니다. 은이야, 왜 아파, 아프지 말아야지. 내 말에 손녀의 눈이 조용히 열린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생각보다 평온하다.

은이야, 이제 안 아프지.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는 사위의 음성은 기원에 가깝다. 아이는 보일락 말락 고개를 끄덕인다. 아빤 들어가 주무세요. 막내의 음성이 한결 가볍다. 나는 한참 동안 눈앞의 광경에서 눈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는다.

윗방으로 건너와 불을 끄고 누워 눈을 감는다. 그런데도 정신은 갈수록 새록새록 밝아져 창문에 새벽빛이 어릴 때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한밤중에 막내네 안방을 밝혀주던 그 따뜻한 불빛은 하얀 형광등 빛이 아니라 노란 호롱불 빛이었다는 착각을 떨치지 못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