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당과 변여사

 

                                                                                           민명자

여행은 늘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대부분 미지의 여행지에 관한 것들이지만, 패키지 여행의 경우에는 동행하게 될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도 한 몫 차지한다. 동행객들의 성향에 따라 여행 중의 기분이 좌우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나마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 여유를 즐겨보려고 나서는 여행이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가 어렵다. 이번 동유럽 여행 중에도 유난히 우리의 시선을 끈 두 사람이 있었다. 남편과 나 사이에서 그들은 ‘꽃무당’과 ‘변여사’로 통했다.

‘꽃무당’은 우선 차림새부터가 독특했다. 그녀는 헐렁한 고무줄 바지에 무릎을 덮는 붉은색 외투를 즐겨 입었다. 그리고 근 2주 가량의 여행 기간 동안 매일 다른 모자를 썼는데, 그 모양이 모두 고깔처럼 생긴 모자였다. 파란색과 흰색의 물방울 무늬가 섞인 털모자를 썼을 때는 피에로 같기도 했지만, 그녀는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일상적인 삶에서 누리기 어려운 대담한 차림으로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아 보였다. 원색적인 옷차림과 화장은 유치한 듯하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루며, 영매(靈媒)와 같은 신기(神氣)마저 느끼게 했다. ‘꽃무당’이란 별칭을 붙인 건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조용한 편으로 동행객들과는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변여사’는 그런 ‘꽃무당’ 부부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화려한 장신구에 해외 유명 상품의 의상을 자랑하며, 일행들이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변여사는 그들 부부의 독특함을 그저 개성으로 보아 넘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꽃무당이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면서 생활 체험을 이야기하거나 관광 중에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곱게 보질 않았다. 더구나 비슷한 연배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제일 큰 듯하다. 그래서인지 꽃무당 부부가 자리라도 비울라치면 일행들과 이야기하는 척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들어보란 듯이 “저 사람들 불륜 아냐?”, “고상한 척하기는” 하면서 입을 삐죽거렸다.

그런 변덕스런 표정 때문에 ‘변여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외에도 여행 내내 불만이 많았다. 여행 안내인이 카프카가 집필활동을 하던 장소로 이동하면서 『변신(變身)』과 같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엔 자기는 무식해서 그런 거 모른다고 하거나, 모차르트의 생가로 가는 버스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려줄 때는 골치 아픈데 트로트나 틀어주면 좋겠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변여사와 꽃무당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 건 여행 삼 일째 되던 날이었다. 변여사가 밤늦은 시간에 호텔방에서 일행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큰 소리로 떠들었고, 그래서 누군가가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고 민원성의 전화를 하는 바람에 호텔 측으로부터 주의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 호텔에는 외국인도 많이 투숙을 하고 있었는데 유독 그 혐의는 꽃무당 부부에게 돌아갔다. 그들 부부가 묵은 방이 바로 자신이 배정받은 옆방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변여사는 아침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여러 사람들에게 자기가 좀 떠들었기로서니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그럴 수가 있느냐고 화를 내다가, 잠시 후 꽃무당 부부가 버스에 올라 자기 옆줄의 의자에 앉으니까 보란 듯이 벌떡 일어나 맨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 부부가 뒤에 앉으면 앞으로, 앞에 앉으면 뒤로, 숨바꼭질을 하듯 변여사의 자리바꿈은 계속 되었다.

동유럽의 호텔들이 거의 모두 방음장치가 부실한 걸 생각하면 정말 그들이 신고를 한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실상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그 이후 변여사는 소위 고상파를 나누는 편 가르기를 시작했으며, 이에 대해 일부는 변여사에 동조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꽃무당 부부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일에 냉담하리만치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우리 부부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던 변여사가 우리마저도 고상파로 치부하게 된 건 오스트리아에서부터였다. 요한 스트라우스 홀에서의 왈츠 음악회는 선택 사항이었는데, 우리가 그 음악회에 참석한 게 원인이었다. 꽃무당 부부와 우리를 포함해 음악회에 갔다 온 몇몇 팀은 다음 날 아침부터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때가 여행의 중반이었고, 남은 일정 동안에도 변여사의 편 가르기는 계속 되었다.

귀국을 하루 앞둔 날, 마침 독일에서는 라인 카니발의 하이라이트인 ‘장미의 월요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분장을 하거나 가면을 쓴 사람들이 독특한 복장을 하고 무리지어 다니고 있었다. 그 중의 어떤 이들은 이방인들이 탄 버스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버스에서 내려 뮌헨 시청사에 도착하니 광장의 바닥은 온통 맥주로 질펀했다. 광장을 메운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한데 어우러져 술과 노래와 춤으로 축제의 흥에 빠져 있었다. 길의 한 모퉁이에 구급차와 경찰차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우려할 만한 불상사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축제는 화해의 장인 것처럼 보였다. 체면과 가식을 모두 던져버리고 우리도 저들처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다만 이방인으로서의 구경꾼일 수밖에 없었고,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화해나 불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 여행이었다. 나와 다른 너를 무조건 적대시하는 일은 일상사에서도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다. 살아간다는 건 그 자체가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고, 그 관계는 유형, 무형의 교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물론이고, 이른 새벽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서로 다른 의미로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 속의 활자들, 클릭을 기다리는 인터넷의 메일들…, 하루의 시간 중에 만나는 모든 세계가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메시지를 보내며 화답을 기다린다. 그렇게 일상은 끊임없이 발신과 수신으로 이루어지고, 하루 하루는 쌓여 삶의 긴 여정이 된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과 화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화와 고독을 느끼게 된다.

귀국길의 비행기에서 보여주었던 변여사의 모습은 지금 안쓰러움으로 남는다. 우련히 내 옆자리에 앉게 된 변여사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자신이 얼마 전 갑자기 남편과 사별했으며, 아들에게 모든 걸 물려주고 시름을 잊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이라며, 이런저런 외로움을 토로했다. 강한 겉모습과는 달리 한없이 나약한 속내를 드러내는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의 편 가르기가 고독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거나,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꽃무당을 닮고 싶은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긍정적인 방법으로 생각을 표현했더라면 좋았으련만, 결국 ‘from 변여사’의 발신은 ‘to 꽃무당’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만 편지가 되고 만 셈이다.

삶의 궁극적인 수신자인 대지에로 이르는 여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수취인 부재의 편지를 남기며 살아갈까. 우리는 서로를 고독하다고 말하면서도 서로에게 부재중일 때가 더 많다.

 

<계간 수필>로 등단(2002년).충남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