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평>

 

노천명의

 

‘산나물’

 

 

일 `시`:``2004년 6월 19일

장` 소`:`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문우회 회원 17명

사` 회`:`고임순

정` 리`:`최순희

 

 

<본문>

 

산나물

 

먼지가 많은 큰 길을 피해 골목으로 든다는 것이 걷다 보니 부평동(富平洞) 장거리로 들어섰다.

유달리 끈기 있게 달려드는 여기 장사꾼(아주마시)들이 으레, 또 “콩나물 좀 사 보이소 예, 아주머니요, 깨소금 좀 팔아 주이소” 하고 잡아다닐 것이 뻔한지라 나는 장사꾼들을 피해 빨리빨리 달아나듯이 걷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은 역시 길가에 널려 있는 물건들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한 군데에 이르자 내 눈이 어떤 아주머니 보자기 위에 가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보자기에는 산나물이 쌓여 있었다. 순진한 시골 처녀 모양의 산나물이 콩나물이며 두부, 시금치 들 틈에서 수줍은 듯이 그러나 싱싱하게 쌓여 있는 것이었다.

얼른 엄방지고 먹음직스러운 접중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산나물들도 낯이 익다.

고향 사람을 만날 때처럼 반갑다. 원추리며 접중화는 산소의 언저리에 많이 나는 법이겠다. 봄이 되면 할미꽃이 제일 먼저 피는데 이것도 또한 웬일인지 무덤들 옆에서 많이 핀다.

바구니를 가지고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가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이다. 예쁜이, 섭섭이, 확실이, 넷째는 모두 다 내 나물 동무들이었다.

활나물, 고사리 같은 것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야만 꺾을 수가 있다. 뱀이 무섭다고 하는 나한테 섭섭이는 부지런히 칡순을 꺾어서 내 머리에다 갈아 꽂아주며, 이것을 꽂고 다니면 뱀이 못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산나물을 캐러 가서는 산나물만을 찾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산 저 산으로 뛰어다니며 뻐꾹채를 꺾고 싱아를 캐고 심지어는 칡뿌리도 캐는 것이었다. 칡뿌리를 캐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이란 또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꿩이 푸드덕 날면 깜짝들 놀라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산나물을 뜯던 그 그리운 고향엔 언제나 가게 될 것인지? 고향을 떠난 지 30년. 나는 늘 내 기억에 남은 고향이 그립고 오늘처럼 이런 산나물을 대하는 날은 고향 냄새가 물큰 내 마음을 찔러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는다.

산나물이 이렇게 날 양이면 봄은 벌써 제법 무르익었다. 냉이니 소루쟁이니 달래는 그리고 보면 한물 꺾인 때다.

산나물을 보는 순간 나는 그것을 사고 싶어 나물을 가진 아주머니 앞으로 와락 다가서다가 그만 또 슬며시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생각을 해 보니 산나물을 맛있는 고추장에다 참기름을 쳐 무쳐야만, 그래서 거기다 밥을 비벼서 먹어야만 맛이 있는 것인데 내 집에는 고추장이 없다. 그야 아는 친구 집에서 한 보시기쯤 얻어올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고추장을 얻어서 나물을 무쳐서야 그게 무슨 맛이 나랴. 나는 역시 싱겁게 물러서는 수밖엔 없었다.

진달래도 아직 꺾어보지 못한 채 봄은 완연히 왔는데 내 마음 속 골짜구니에는 아직도 얼음이 안 녹았다. 그래서 내 심경은 여태껏 춥고 방 안에서 밖엘 나가고 싶지가 않은 상태에서 모두가 을씨년스럽다.

시골 두메 촌에서 어머니를 따라 달구지를 타고 이삿짐을 실리고 서울로 올라오던 그때부터 나는 이미 에덴동산에서 내쫓긴 것이다. 그리고 칡순을 머리에다 안 꽂고 다닌 탓인가, 뱀은 내게 달려들어 숱한 나쁜 지혜를 넣어주었다.

10여 년 전 같으면 고사포(高射砲)를 들이댔을 미운 사람을 보고도 이제는 곧잘 웃고 흔연스럽게 대해 줄 때가 있어, 내가 그 순간을 지내놓고는 아찔해지거니와 풍우난설(風雨亂雪)의 세월과 함께 내게도 꽤 때가 앉았다.

심산(深山) 속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자연의 품에서 퍼질 대로 퍼지다 자랄 대로 자란 싱싱하고 향기로운 이 산나물 같은 맛이 사람에게도 있는 법이건만 좀체 순수한 이 산나물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요즈음 세상엔 힘드는 노릇 같다. 산나물 같은 사람은 어디 없을까? 모두가 억세고 꾸부러지고 벌레가 먹고 어떤 자는 가시까지 돋혀 있다. 어디 산나물 같은 사람은 없을까?    ─ 1953.3.25. 부산 피난지에서

 

 

사회`:`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37호, 2004년 가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처음으로 하는 여성작가의 수필로, 노천명 시인의 ‘산나물’(1953.3)입니다. 처녀시집 『산호림』(1938)으로 절제된 언어 속의 고독과 청순성으로 높이 평가받은 바 있는 노천명은 두 권의 수필집 『산딸기』(1948)와 『나의 생활백서』(1954)로 1950년대 수필계를 불 밝힌 여성입니다. 평생을 깊은 상처에 신음하면서도 눈 맑은 사슴 같은 수필을 시보다도 더 많이 썼는데, 오늘은 그 중 이야기가 있는 수필로 ‘산나물’을 골라 보았습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여성문학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남성중심주의 시각을 통한 전통적인 독서 행위에서 이루어져, 여성문학에 내재한 본질을 드러내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좀더 능동적인 여성중심 시각의 독서를 통해 노천명의 수필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의미와 특성을 드러내 보고자 합니다.

노천명(1912~1957) 시인은 황해도 장연 출생으로, 본명은 노기선입니다. 진명여고와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고, 조선·중앙일보 기자를 시작으로 <시원> 동인, <여성>지 편집,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했으며, 시는 물론 수필·소설·평론 등 다방면의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시인은 6·25 전쟁 중에 문학가동맹 활동과 관련, 부역혐의로 6개월간 투옥되었다가 1951년 출감하지요. 서라벌 예대 등에 출강하고, 이대출판부에 근무하면서 『이화 70년사』의 집필을 마치고 쓰러져 1957년 6월, 극심한 생활고와 빈혈로 46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노천명의 일생은 7세 때 부친을 잃고, 19세 때는 모친마저 사망하는 등 고독의 연속이었으나, 글쓰기를 통해 이를 승화시킨 생애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토론자로는 김병권, 김소경, 문혜영 선생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김병권`:`사회자께서 노천명 선생은 시인으로 뿐만 아니라 수필로도 대가라는 소개 말씀이 있었지만, 나는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보았습니다.

장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발견한 산나물을 통해 불현듯 고향을 떠올리게 된 작가는 고향에 대한 갖가지 추억에 잠깁니다. ‘고향을 떠난 지 30년… 고향 냄새가 물큰 내 마음을 찔러 어쩔 수 없이 만들어놓는다’라고 하여 향수 어린 심정으로 진한 시정을 풀어놓는 것 같지만, 정작 이 작가의 심저에선 산나물이 아니라 산나물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진달래도 아직 꺾어보지 못한 채… 모두가 을씨년스럽다’에서 여실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특히 ‘10년 전 같으면 고사포를 들이댔을… 내게도 꽤 때가 앉았다’라고 한 것을 보면, 이 작가에게 있어서의 산나물은 그저 나물이라기보다는 싱싱하고 향기로운 인간 그 자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주제는 유년기의 회고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산나물과 같은 순수한 인간애에의 갈망이라고 봅니다.

김소경`:`이 수필은 출감한 지 2년, 타계하기 4년 전에 쓴 작품으로, 산나물이라는 일상의 작은 소재를 통해 진실한 사람을 갈망한 글이라고 봅니다. 동무들과 놀던 시절은 칡, 뻐꾹새, 뱀, 꿩이 어우러져 에덴동산 같은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또 산나물을 보고도 고추장 한 보시기가 없어 물러서는 모습에서는 그의 외롭고 궁핍한 생활이 느껴지지요. 작가가 갈망한 산나물 같은 사람은, 수줍은 듯하면서 싱싱한 시골 처녀, 뱀이 못 달려들게 동무의 머리에 칡순을 갈아 꽂아주는 나물 동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시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혜영`:`오늘 합평 작품은 ‘산나물’ 한 편이지만, 토론자로서 노천명의 문학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그의 수필들을 다시 한 번 다 읽어보았습니다. 그가 글을 썼던 시대적 배경과 삶의 행적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어둡고 혼란스러웠던 암흑기에 문학을 한 지식인으로서, 친일과 부역이라는 멍에를 안고 깊은 고독과 상처 속에서 살다 간 사람이었지요. 이런 배경을 참작하면서 이 작품을 읽었습니다.

‘산나물’의 표면적인 주제는 앞서 두 분 선생님 말씀대로 고향에 대한 향수,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어린 날에 느꼈던 순수한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 다시 말해서 인간성 회복의 염원 같은 것을 주제로 느꼈습니다.

이 작품을 쓴 1953년은 노천명이 부역죄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2년 뒤가 됩니다. 당시 그의 심정은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스스로 벽을 쌓고 외로움이 더 깊어져 있을 때입니다. 전쟁과 이념의 분쟁 등 혼란의 와중 속에서 ‘모두 억세고 꼬부라지고 벌레가 먹고 어떤 자는 가시까지 돋쳐 있다’라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필자 자신도 인간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시선으로 평정된 마음을 잃고 있음이 글 속에 드러납니다.

 

사회`:`인간에 대한, 진실한 사람에 대한, 즉 산나물 같은 사람에 대한 갈망이 주제라는 것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되는 듯합니다. 아울러 여성으로서의 절망 속에서도 깨끗하게 살아온 작가의, 순수했던 시절의 인간성 회복을 갈망하는 마음을 주제로 보기도 했습니다.

김종완`:`저는 그것이 과연 주제일까, 미심쩍은 생각이 듭니다. 장거리에서 산나물을 보았고, 사려다가 못 샀고, 그런데 그 얘기를 소재로 글을 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어디 산나물 같은 사람은 없을까?’ 하며 끝맺게 된 것이 아닐까요? 만약 산나물 같은 사람을 찾는다는 것을 주제로 설정하고 썼다고 생각한다면 수필이 너무 공식화하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따라서 저는 이 결미에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유경환`:`6·25 전쟁이 터졌을 때 노천명은 미처 피난을 가지 못했습니다. 공산 치하가 되자 이북 출신으로 남한에 내려와 활동한 것이 저들의 표적이 될 것이란 생각에 위협을 느껴서, 그는 본의가 아니면서도 제 발로 걸어가 점령하의 문학가동맹에 가담했습니다. 그로 인해 9·28 수복 후에는 부역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20년이란 장기 언도를 받았다가 김광섭 등의 연서와 탄원으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풀려나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더듬어볼 때, 나약한 심성이 자초한 그의 인생행로에 저는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저는 이 글 속에는 바람에 불려 다니는 사막의 모래와도 같은 노천명의 삭막한 내면이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부역 혐의를 벗을 수도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갈구하는 인간 구원의 문제 및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산나물이란 소재에 기대어 물씬 풍기는 글이라고 보는 거지요. 이분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저는 동향의 이북 사투리와 형용사·부사 등을 통해 더 한층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됩니다. 잘못된 처신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망쳐놓았는지를 써놓은 수필도 있으므로, 그것을 읽어보면 이 글과도 그대로 일치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소경`:`친일과 부역을 했으나, 1957년 작고 전에 쓴 ‘새해의 포부’라는 수필에서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뉘우치면서 붓 한 자루, 즉 문학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을 다짐하기도 했어요.

 

사회`:`1962년에 발굴된 유고 시 ‘흰 오후’는 ‘아무도 나와 같이 / 해주지 않을 때 // 말 없이 곁에서 / 부축해 주는 이 // 인자하신 어머니 / 성모 마리아여…’라고 읊고 있습니다. 극심한 생활고와 재생불능 빈혈증으로 쓰러져서도, 입원비 마련을 위해 병실 벽에 원고지를 대고 억지로 몸을 가누면서 글을 쓰는 차마 눈물겨운 기록도 있습니다. 시인의 이런 처절하고 고독한 생애를 배경으로 이 글을 읽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써내려가다가 그냥 ‘산나물 같은 사람…’ 하고 불쑥 끼워넣은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지요.(웃음)

김진식`:`김종완 선생 얘기는 6·25의 경험과 노천명 시인이 당시 당한 일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때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될 겁니다. 부산 피난 시절 판잣집에 틀어박혀 병든 몸으로 쉼 없이 원고를 쓰는데, 과거에 친했던 친구들이 전혀 상대를 해주지 않았고 아무도 원고를 사주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왕따를 당한 거지요.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서 피해의식에 짓눌리는 이런 상황에서 세상의 가치와 인연에 대한 회의,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이런 글을 낳지 않았나 합니다.

문혜영`:`다른 사람들도 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있었지만 시인 자신도 대인 기피적인 성향이 다분했던 것 같아요. 인간성의 회복을 원하면서도 자기 밖으로 나가지는 못한 채 유년에 대한 향수와 고독과 애수를 토로한 글이 많았습니다.

허세욱`:`작가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은 이쯤하고 작품 자체에 대한 정면 분석에 좀더 치중했으면 합니다. 아까 세 분 토론자들의 견해가 제가 듣기엔 초점이 서로 상당히 달랐는데 사회자께선 같다고 하시니까 조금 혼동이 됩니다. 김병권 선생께선 대체로 고향에 대한 향수다, 그러나 구성과 실마리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게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병권`:`이 글은 산나물을 통한 연상 작용 이야기입니다. 산나물 자체에 대한 향수를 물론 바탕에 깔고 있지만, 망설이다가 그냥 발걸음을 돌리는 과정을 읽으면서 우리는 산나물에 대한 향수도 향수지만 그보다 더 심층적인 산나물 같은 인간애를 갈구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지요. 이 작품을 공부하면서 저는 일본의 개화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작가 나쓰메 쇼세키를 떠올렸습니다. 물론 시대적인 상황이 암울하고 어려웠다곤 해도, 노천명의 행적에서 쇼세키처럼 그래도 뭔가 내 민족, 내 조국의 주체를 살리는 일을 할 수는 없었겠는가 하는 아쉬움을 느끼는 거지요.

당시 많은 지도적 문인들이 친일을 하긴 했습니다만 일제의 탄압이 여성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고 보는데, 노천명은 극렬한 친일을 했습니다. 해방 후엔 또 여성지도자로서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애국을 하다가 6·25 전쟁을 맞았습니다. 이때 그는 또 자진하여 북괴를 찬양하는 적극적인 부역을 하고, 출옥 후엔 또 국군 만세를 부르며 작가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와 같이 엄청나게 극단적인 변신을 했으면서도 어떤 참회의 글도 남기지는 않았어요. 앞서 사회자께선 여성으로서의 처절한 삶을 작품을 통해 토로했다고 했으나, 그 정도의 문단 위상을 가진 작가라면 자신의 여러 변신과 행적에 대한 고백을 우리가 납득할 수 있도록 좀더 리얼하게 남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금은 ‘글은 곧 그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수필을 합평하는 자리인 만큼, 작가의 글과 행적에서 노정된 상반성에 대해서도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허세욱`:`아, 이 작품이 아니라 그의 행적에 대한 아쉬움 말씀이로군요. 잘 알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작품 자체는 구성도 매우 치밀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산나물과 고향은 등가물이지요. 다만 그 고향은 내가 자랐고, 불우했고, 지금은 갈 수 없는 고향, 또한 내가 거기서 살 당시에는 붉은 물이 들지도 않았고, 선악과 시비도 없는 순수한 고향이었어요. 월남한 후 온갖 험한 경험을 겪은 작가에겐 갈 수도 없이 그리워만 해야 하는 ‘피안’으로서의 고향인 거지요. ‘산나물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그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로 전이해도 무방한, 상당히 구성이 치밀하게 짜여진 작품입니다. 물론 작품을 쓰면서 주제를 미리 설정하는 건 아니지요. 그러나 작품을 토론하면서 분석적 시도를 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문혜영`:`방금 말씀 중에 ‘불우했던’ 고향이라고 하셨는데, 노천명의 연보나 글 속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의 생애를 통틀어 고향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야말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과 장소를 이미 떠나왔고, 나이 들었고, 지금은 돌아갈 수 없으니까 불행한 것이지요. 수필 속에서 보듯이 노천명은 향토적인, 향수 어린 글을 쓰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사회`:`그렇습니다. 노천명은 고향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어도 고향의식이 치열한, 상당히 여성적이고 모성애적인 작가였습니다.

김종완`:`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시장통을 걷다가 ‘고향 사람을 만날 때처럼 반갑다. 원추리며 접중화는…’에서부터 열댓 줄 밑의 ‘…냉이니 소루쟁이니 달래는 그리고 보면 한물 꺾인 때다’까지는 전체 분량의 약 ⅓을 차지합니다. 작가는 걸어가다가 산나물을 보자 ‘고향 사람처럼 반갑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하고는, 나물을 사고는 싶지만 고추장이 없어서 안 사고 이내 지나간단 말이지요. 한번 잠깐 멈칫 했다가 가던 걸음걸이 그대로 계속 가는데, 이 순간이 시간상으로는 몇 초나 될까요. 그런데 전체 글의 ⅓이 여기에 할애되어 있다는 것은 심각한 불균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글을 바로 이어갔다가, 그 장소를 벗어나서 그 부분에 떠오른 생각들은 나중에 덧붙여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거지요. 요컨대, 사건 진행상의 길이와 작품 중의 원고 길이와의 사이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회`:`걸어가다가 산나물을 보고 멈추어 서서 사려다가, 고추장이 없다는 생각도 해가면서 다시 걸어가며 뒤돌아보기도 하는 등, 나는 시간적으로 상당히 여유로운 흐름이라고 여겨지는데요.

김종완`:`사건의 진행을 얘기하는 산문가라면 저는 짧은 시간은 짧게,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일은 길게 쓰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한 가지, 어휘를 보면 심사숙고해서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듭니다. 뒷부분에 ‘고추장을 얻어다 나물을 무쳐서야… 나는 역시 싱겁게 물러서는 수밖엔 없었다’에서 왜 ‘역시’가 나오는지 납득이 안 갑니다. ‘역시’ 물러서기 위해선 앞에서 한 차례 물러선 적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 말이 나올 그 무엇이 앞에 없다는 얘깁니다.

유경환`:`여기서 ‘역시’는 자신이 부닥친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었거나 또는 그러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는 ‘역시’ 쉽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글과 작가의 내면을 연결해서 읽어야지 문장만 읽는다면 당연히 그런 얘기가 나오게 되지요.김진식`:`저는 김종완 선생과는 견해가 다릅니다. 우선 사건의 진행과 글의 길이 사이의 산술적 등분이 그리 중요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론 소재의 상징성과 주제의 이면을 고려하지 않고 표면에 드러난 것만 갖고 작품을 논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천명의 다른 수필들에 비하면 이 글은 감상과 서정성이 상당 부분 탈색되어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그의 글 중 가장 성공작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홍혜랑`:`노천명 시인의 생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의 느낌만 갖고 얘기하자면, ‘역시’란 말은 고추장에 나물을 무쳐 먹을까 말까 하다가 ‘역시 그냥 말자’라고 하는 정도로 읽었습니다.

 

사회`:`그 부분은 각자의 해석에 맡기고, 이제 문체와 언어 상의 특색을 논하도록 하지요.

유경환`:`산나물 같은 사람을 갈구하나, 그런 순수하고 소박하고 풋풋한 자기 구원의 대상은 없는 거지요. 따라서 ‘…어디 없을까?’란 결국 자기 부정이에요.

홍혜랑`:`글의 전반부는 그림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흐르다가, 후반부에선 너무 압축되어 있어 일반 독자들에게 잘 이해가 안 갈 것 같습니다. 작가의 생애의 곡절이나 이 글의 배경을 모르는 독자에겐 불친절하다는 느낌입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장황한 설명 없이도 독자에게 오해나 의문을 남기지 않는 자연스러운 글이 될까 하는 것이 항상 제 고민이기도 한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사회`:`수필은 원래 구체적인 것이긴 하지만, 자신의 부역행위나 그로 인해 겪은 고통 등등을 다 나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읽는 이가 ‘아, 이 사람이 고통을 많이 당했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하도록 맡겨버렸을 겁니다. ‘뱀은 내게… 나쁜 지혜를 넣어주었다’라든지, ‘내게도 꽤 때가 앉았다’ 같은 대목을 보면 자기반성을 하는 작가라고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유경환`:`앞서 홍 선생님 말씀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 자신도 소상히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 때문에, 불친절한 글인 줄 알면서도 그냥 지나간 점이 있을 겁니다. 6·25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노천명이라는 특수한 인물의 얘기임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겠지요.

신현복`:`작품을 먼저 읽고 작가에 대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작가를 먼저 알고 작품을 읽게 되는 경우도 있을 터인데, 인간성 회복이니 해가며 너무 거창하게 확대 해석하는 독법 대신 소박하게 실향민으로서의 향수를 토로한 글이라고 액면 그대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진식`:`수긍이 가는 얘깁니다. 그러나 수필작품도 시대적 상황의 소산이고 보면, 작품의 주변적 상황을 고려한 독법도 분석적인 작품 읽기의 한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시헌`:`앞에서는 구체적으로 산나물을 얘기해 놓고 뒤에 가서는 인간으로 확대해 나갔지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귀납적인 의미화인 셈이지요.

고봉진`:`‘고사포’는 항공기 공격용이지 대인용 무기가 아닌데 잘못 쓰인 말입니다.

 

사회`:`시간 관계상 여기서 서둘러 합평회를 매듭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명예회장님께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김태길`:`20여 년 전에 노천명의 수필집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다소 지루했고, ⅓쯤 줄였으면 더욱 농도 짙은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회`:`노천명의 ‘산나물’은 일상의 작은 소재를 통해 진실한 인간에 대한 갈망 내지는 인간성의 회복이란 주제를 말한 수작이라는 평가와 그리고 친일과 부역이라는 과오를 멍에로 짊어진 채 극심한 고통 속에 여성적 삶과 여성으로서의 글쓰기에 짧은 생을 소진하고 간 인간 노천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시인의 수필쓰기란 측면도 함께 짚어보고 싶었으나, 작품의 주제와 작가론에 조명이 쏠리다 보니 원래 의도대로 다 아우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진지한 토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