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이후

 

                                                                                         백임현

몇 해 전, 육십오 세의 남편이 퇴직을 하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일주일에 두어 번 산에 오르는 일과 고향 마을에 가서 텃밭 가꾸는 일로 소일하며 살게 되었다. 마침 산이 가까이 있고 고향에 텃밭이 조금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등산객이 많이 찾는 유명한 두 개의 산이 있다. 동두천 가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왼편은 수려한 도봉산, 오른편은 계곡이 아름다운 수락산이다. 두 곳 모두 전철로 서너 정거장이면 쉽게 갈 수 있어서 시간이 날 때면 산에 가는 남편을 따라 나선다. 간단한 등산복 차림에 튼튼한 등산화를 신고 산길에 들어서면 당장 높은 암벽이라도 탈 것처럼 차림새가 그럴 듯하지만 실은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어보는 것일 뿐, 우리의 등산은 차라리 산책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가다가 힘이 들면 시원한 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아 땀을 식히고 편안한 자세로 아픈 다리를 쉰다. 언제 와도 산 속의 공기는 청량하고 철 따라 제 소리를 내며 우짖는 새 소리 또한 맑아서 잠시만 머물러도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봄에는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이 눈부시고, 늦가을에는 어지럽게 떨어지는 낙엽이 계절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언제나 계절이 먼저 오는 산, 우리는 산에서 계절을 읽고 바뀌는 절기를 먼저 느낀다. 허약한 몸에 산길 오르기가 쉽지는 않지만 다녀오면 그 날은 기분이 좋고, 다리에 힘이 생겨 걸음이 가볍다. 등산이 건강에 조금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자꾸만 산에 가게 된다.

산에 가지 않는 날은 밭에 가는 것이 또한 일이다. 의정부에서 서쪽으로 대략 이십 킬로쯤 가면 가래비라는 작은 농촌 마을에 이른다. 이곳은 우리 시댁 마을이며, 남편이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이다. 집에서 승용차로 쉬지 않고 달리면 한 시간이 채 못 걸리는 거리여서 농사일로 오르내리는데 크게 불편은 없다. 그곳 참나무 숲 옆에 오백 평 남짓한 우리 채마밭이 있다. 남편은 퇴직 후를 염두에 두고 십여 년 전에 박봉을 쪼개어 그 땅을 장만하였고, 거기에 여러 가지 유실수와 꽃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 지금 남편의 꿈은 그곳에 아담한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여생을 보내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현이 안 되고 있어 남편에게 늘 미안하다.

어릴 때는 남편의 꿈이 도시생활이었다. 번화한 도로와 상가, 유리가 번쩍이는 큰 건물과 세련된 도시 사람들, 추녀를 맞대고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골목길 등… 이런 도회지의 풍경은 어린 그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고 가끔 이야기한다. 도시에 대한 이런 동경은 그 또래의 시골 소년이라면 누구나 가져볼 수 있는 것이겠으나, 남편은 그 관심이 보다 적극적이고 절대적이었던 것 같다. 무더운 장마철, 비를 맞으며 소 먹이인 꼴망태를 지고 시골길을 달릴 때, 또는 한여름 오뉴월 불볕더위에도 들일에 매달려 땀을 쏟아야 하는 어른들을 볼 때, 그러면서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농촌 환경을 보면서 그는 지긋지긋한 시골을 벗어나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하였다.

그렇게 등지고 떠나온 고향을 반세기 넘어 이제 다시 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유년에는 시골, 청년기는 도회 그리고 노년에는 다시 시골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이상적인 생활이라고 한다. 그는 그것을 실현이라도 하려는 듯 열심히 밭일을 한다. 시골에 가는 날이면 먼동이 트기 전에 집을 나서 온종일 일을 한다. 혼자서 거두기엔 벅찬 채마를 화초처럼 예쁘게 가꾸어놓고 아주 만족스러워 한다. 『귀거래사』를 쓴 도연명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퇴직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흙을 만지는 남편의 모습은 그지없이 여유롭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아직은 농사가 서툴러 비교적 사람의 손이 덜 가는 작물을 골라 심는다. 콩은 심을 때 밑거름만 잘하면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라고, 들깨도 잎 자체의 짙은 향이 벌레를 쫓아 진딧물이 끼이거나 잡벌레가 덤비지 않아 소독을 않고도 싱싱하게 잘 된다. 우리는 벌써 수 년째 가을이면 무공해 깻잎으로 반찬을 만들어 친지들과 나누어 먹으며 시골의 별미를 즐긴다. 농사라고 해봐야 소일거리로 하고 있어서 해마다 수확은 보잘것 없고 오르내리는 기름값과 밭에 들어간 비용도 나오지 않지만, 콩 심은 데 콩 나는 땅의 정직성이 믿음직스럽고, 가꾼 만큼 자라주는 채소들이 자식처럼 정들어 농사일이 점점 재미있어진다고 한다.

밭 가장자리에 심은 유실수가 십여 년 자라니 이제 제법 열매가 달려 올해는 매화, 앵두, 살구, 복숭아 등 봄 과일을 한 바가지씩 따오기도 하였다. 가을에는 밤, 대추를 조금 따게 될 것이다. 심기만 하면 자라는 나무, 남편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라고 대견해 한다. 그러나 창조의 힘이 어찌 나무 열매뿐이겠는가. 조금이라도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면 땅이 곧 창조의 원천임을 터득하게 된다. 맨 땅에 씨를 뿌리면 싹이 트고 잎이 자라 생명으로 산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대지, 명주실 같이 가느단 풀 한 포기도 버려두지 않고 키우는 그 자비로움과 위대한 능력에 경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을 오르고 텃밭을 가꾸는 일은 확실히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 같다. 남편은 퇴직 후에 오히려 건강해졌다는 인사를 많이 받는다. 보리 이삭 잘된 것과 노인의 건강은 믿을 것이 못된다는 옛말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 건강한 것을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남편은 젊었을 때 몸이 약했었다. 삼십대에는 오십까지 살면 원이 없겠다고 하였고, 사십이 되었을 때는 육십까지만 살아도 한이 없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무슨 축복인가. 남편이 정년을 채우고 칠십을 넘어선 것이다. 그가 칠십이 되던 해, 나는 남편에게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진심으로 고마워하였다.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랴. 다만 감사할 뿐이다.

평생 동안 너무도 숨가쁘게 사느라고 세상살이에 감사할 겨를도 없었다. 노경에 이르러 세상을 돌아보니 고마운 일이 많다. 험한 세상에 무고했던 것, 단군 이래의 풍요시대를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 칠십 가까운 나이에 비로소 가져보는 이 작은 안정과 평화,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오는 것인가. 이울어가는 노년의 하루 하루가 금쪽같이 소중하다. 더 이상 가져볼 욕심도 없고, 버려야 할 욕심도 없으니 빈 가슴은 늘 여유롭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르고, 밭이 있어 흙을 만진다. 그러면서 자연의 생성과 소멸, 그 질서 속에 동화되는 연습을 한다. 노인이 된 것을 예찬까지 할 것은 없어도 노년이란 그런대로 괜찮은 삶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