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 자리의 끝

 

                                                                                            홍애자

스위스에 있는 사위가 큰 수술을 했다는 통보를 받고도 선뜻 나서지 못한 채 며칠을 보냈다. 이제는 연세 높은 아버지도 계시지 않아 훌훌 털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오랜 동안의 습관 때문인지 짐 싸들고 어디든 떠난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어제 둘째 딸아이와 통화를 한 후 한동안 마음이 쓰여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애잔한 마음으로 안절부절 못하다가 남편에게 티켓 예약을 부탁했다. 다만 며칠이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아서다. 남편은 쉽게 결정을 해버리는 나에게 미심쩍어하며 계속 다져 묻는다. 스위스엘 다녀와서 며칠 후에는 일본을 가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버텨낼까 싶은 모양이다.

딸애가 곧 연주 준비를 해야 하는데, 두 시간씩 운전을 해 사위가 입원해 있는 병원엘 꼬맹이와 함께 가야 한다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홀로 얼마나 난감했을까. 작은 도움이나마 기다렸을 아이를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외국생활이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지를 느끼지만 딸애가 겪는 분량에 비할 수 있을까.

작은 가방을 챙겨 들고 딸에게 날아갔다. 아이의 얼굴엔 안도의 빛이 역력했고, 어린 손녀마저도 손뼉을 치면서 나를 반긴다. 아직도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기쁘다. 사위는 생각 외로 어려운 수술을 한 것 같다. 우리네 같으면 간병인이 24시간 도와주어야 할 상황이나, 몇 시간 딸애의 방문을 고마워하는 사위가 대견하다.

하루 5~6시간의 연습시간을 제외한 왕복 네 시간을 병원으로 향하는 딸애가 측은해 보인다. 스위스에 사는데 병원이 독일 프라이버그에 있으니 그 애씀이 가상하다. 오전 내내 연습을 끝내자마자 바로 사위의 병원으로 떠나는 딸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라도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마치 가을 하늘인 양 높이 떠 있는 뭉게구름을 따라 손녀의 작은 손을 잡고 걷는다. 놀이터로 가는 길목에 짙고 넓은 아가위나무 그늘이 좋다. 놀이터 주변에는 질경이가 자라서 노란 꽃을 피웠다. 꽃을 꺾어 손녀 머리에 꽂아준다. 그네를 타면서 웃는 모습이 질경이 노란 꽃을 닮았다. 네잎 클로버 꽃과 이름 모를 들꽃들이 여기저기 무더기 지어 웃는다. 문득 어렸을 때 피난처인 천안 들녘에서 클로버 꽃을 한 아름 따 반지, 목걸이, 팔찌를 만들어 친구와 깔깔대던 시절을 떠올린다. 천진스럽던 친구들, 그때 친구들도 지금은 할미가 되어 손자 손을 잡고 노닐겠지.

내 또래의 많은 어미들이 생각하고 있는 자식을 향한 짝사랑은 성년이 되어 출가시킨 후에도 계속해서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요한 시기에 어미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뿐만 아니라 맹목적인 배려 때문에 온갖 일을 도맡아 한다. 곤충이나 새들과 동물의 세계에도 어미가 쏟는 새끼에 대한 사랑은 거의 헌신에 가깝다. 그러나 새끼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여지없이 품에서 떼어놓는다.

자식에게 집착하는 우리네와 다른 점이다. 아이들은 급속히 성장하여 어디론가 제 갈 길을 모색하고 제 짝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부모는 아이의 이런 빠른 변화에 적응하고 체념하기까지 고통과 외로운 시기를 보낸다.

육아는 원대한 사업이다. 인간 사업처럼 소중하고 예민한 것은 없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젊고 힘이 있는 자신들이 해야 함에도, 늙은 부모에게 의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나 능력 면에서도 불합리하다. 어느 모임에서든 늘 나의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어디 이 다음에 보자. 손주 안 길러주나…” 하는 말로 비아냥거린다.

이제 여섯 아이들에게 그때마다 반드시 필요할 때를 택해서 작은 도움을 주려고 한다. 어미의 손길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절실한 일에 직면했을 때, 아이들은 나를 필요로 하고 그 일에 해결사로 달려간다. 이번 스위스 행도 채 열흘이 안 되는 기간이지만 딸애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나 보다. 사위와 사돈 내외의 치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긴긴 날의 도움을 주기보다는 어미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내가 그 자리에 서 줄 때 그 손길은 가치가 있다.

하룻밤만 지내면 집으로 돌아간다. 단 일주일 동안이지만 딸애에게 기쁜 시간이 되었다면 어미로서는 더할 나위가 없이 보람을 가지고 떠날 수 있다. 예람이는 퍼즐놀이를 하고, 딸애는 네 번째 음반 준비를 하느라 피아노를 치고 있다. 오늘부터는 그 애가 힘들어 하는 부분을 하나씩 찾아서 해놓기로 한다. 손녀와 사위가 좋아하는 불고기 양념을 하는데 콧날이 시큰거린다. 이중 삼중의 일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딸애에게 연민을 가져보지만, 그 일들이 있기에 아이는 아름다운 음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때때로 부모의 지나친 배려로 발생되는 여러 가지 후유증을 지켜보며 지혜로운 부모가 설 자리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 본다.

 

<수필공원(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93년).수필집 『쟤들이 내 딸이에요』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