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 아틀리에

 

                                                                                       권남희

목동에는 7년 전 모 건설회사에서 짓다가 방치해 둔 20층 규모의 예술인 총연합회 건물이 있다. 혜화동에 있는 5층 규모의 예술인 건물이 비좁아 옮길 예정으로 건축을 시작했다가 시공사와 얽힌 문제로 공중에 떠 있는 채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새 건물에서 또 다른 문예부흥 시대를 꿈꾸다가 백일몽이 된 채 안타까운 마음도 잠깐, 어느 날부터 관심에서 멀어진 일이었다.

이 건물을 화가들이 중심이 된 5백여 명 정도가 예술적 점거행위를 위해 분양 신청을 하였다고 한다. 비가 내리는 7월 중순 미술가들이 예총회관을 점거하는 행위예술이 일간지에 소개되었다. 몸으로 체험하는 창작활동을 보여주는 그들을 보며, 어쨌든 신나는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서 빨리 그 건물이 예술인들을 위해 제대로 활용되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아쉬웠던 점은 작업실을 점유하는 분야에서 미술가가 80%이고, 다른 장르라고 소개된 기타가 20%라는 일이다. ‘다른 장르’가 또 많은 분과로 나누어진다면 작가는 얼마나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작가는 글로써 모든 예술적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화가들은 ‘다빈치 콤플렉스’가 있다지만, 작가들 대부분은 ‘문학성’과 ‘대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무언가 색다른 일이 없을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신선한 글쓰기를 욕망하며 폭넓은 경험을 위해 노력한다. 언제나 시시한 것 투성이인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근사한 해변 어느 별장을 얻어 글이나 실컷 썼으면… 하는 생각은 늘 태산처럼 높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의 창작활동은 보편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를 답답해하면서 소극적 태도로 일관할 뿐이다. 늘 새로운 문화 계층으로 주목받고, 볼거리를 제공하며, 지배적인 사고로 예술을 생산하는 화가들의 세계를 엿보며 나는 작가들과의 함수관계를 생각한다.

아틀리에는 미술가들에게만 필요한 것처럼 알려졌다. 물론 창작활동을 위한 접근 방식이나 표현 방법이 역동적인 미술가들은 작업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이제 작가에게도 아틀리에는 있어야 한다. 펜과 종이와 시간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겠지만, 사이버 세상에 글 쓰는 작업도 변화해야 한다. 컴퓨터에 자료 파일에 스캐너, 디지털 카메라, 오디오 재생기 등 영상 도구는 기본이다. 스티븐 킹이 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처럼 싱싱한 글쓰기를 하려면 몇 가지 연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저리』와 『쇼생크 탈출』로 유명한 스티븐 킹의 상상력은 점거 아틀리에의 적극적 정신을 넘어서고 있다고 봐야 한다. 비어 있는 건물을 점거하여 예술활동을 펼치는 ‘점거 아틀리에’는 ‘스코앗(squat)’의 역사에서 유래하고 있다.

1835년 오스트리아 목동이 기름진 남의 초지에 들어가 양에게 풀을 뜯기던 관습이 산업혁명 이후에는 도심으로 이주한 노동자가 귀족 소유의 빈 집을 차지해 사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는 점거 아틀리에로 유명한 ‘로베르네 집’이 있는데 정부에서 아예 사들여 예술가들에게 임대를 해주는 아량을 베풀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계적인 명소로 변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선비정신이 남아 있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점거 아틀리에’를 상상해 본다. 머지않아 수도를 옮긴다 하니 수십 층짜리 빈 건물이 생겨나지 말란 법도 없고, 작가들을 불러모아 브레멘의 악대처럼 정부 건물을 점거하게 만드는 일이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 세계 작가들이 언제고 방문하여 쉬어가기도 하며 교류를 나눈다면 이보다 더한 지적 자산 창출은 없지 않을까.

 

<월간 문학> 수필 신인상 수상(87년). 제22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작품집 『미시족』, 『어머니의 남자』, 『시간의 방 혼자 남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