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세월

 

                                                                                              송미심

“올해 몇 살인가요?”

“……….”

“아들딸이 몇인가요?”

“……….”어머니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일부러 대답을 피하는지 궁금해 바짝 다가가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내가 누군가요?”

어머니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한 조각 기억을 붙잡은 모양이었다. 가족은 알아볼 것이라는 내 혼자만의 기대일 수도 있었다. 켜켜로 쌓여온 어머니의 지난 삶이 곤곤하여 서럽고 허망할 텐데 어머니는 오직 침묵뿐이었다.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어깨가 훨씬 조붓해지고 허리가 더욱 굽었다. 굽은 허리 때문에 키는 작아지고 깡마른 몸은 가벼워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는 숫자를 더해 가고 있는데, 몸무게는 줄어들고 말씀이 없어졌으니 어머니의 세월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어머니를 보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는 용두석을 떠올렸다. 뗏목 배들이 드나들었던 홍교에는 용두석이 있었다. 디딤돌 크기의 반듯한 석재들을 양쪽에서 무지개 모양으로 쌓아가면 아치형 돌다리가 되었다. 그 아치 한가운데에 다듬잇돌 크기만 한 장방체석을 끼우고 그 끝에 용머리를 새겼다. 그래서 용두석이라 불리는 이것은 거꾸로 매달려 다리 위의 무게를 받쳐주고 있었다. 강가에 피고 지는 갈대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빼고는 용두석이 볼 수 있는 것은 사시사철 흐르는 물뿐이었다.

어머니의 세월이 거꾸로 가기 시작한 것은 침상을 지키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였다. 어머니가 사모님 호칭을 들으며 호강을 받으려는 때에 아버님의 와병은 시작되었다.

예닐곱 해를 넘게 햇볕 바른 곳에 놓인 아버지 침대 위로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 내왔다. 날로 초췌해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건강한 몸으로 마음껏 나들이를 하는 또래의 부부를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함께 지쳐가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며 종종 눈물짓던 고통스런 시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실존은 어머니를 종종걸음 치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자식들의 보살핌만으로는 어머니 가슴 속에 드리운 아버지의 빈 자리를 채워드리지 못했다.

외동딸로 자라 열여덟 나이로 시집을 왔다. 시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남편을 따라 살던 때는 늘 수줍고 유약한 새댁이었다. 유똥 치마 입고 큰아들 입학식에 나들이가던 때만 해도 귓불이 붉고 입술이 고운 여인이었다.

어지러웠던 질곡의 시절, 어머니는 폭치마를 잘라 몸뻬(田服)를 만들어 입었다. 열두 자 수심의 소용돌이를 다스리려 거꾸로 매달린 용처럼 어머니는 아이들을 당신의 품으로 지켜내려 했다. 일곱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고 논으로 밭으로 휘달렸다. 직장 때문에 객지에서 생활하는 아버지를 주말에나 만나야 했지만 날마다 달라져가는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분단장하는 시간도 아꼈다. 늘어나는 전답을 불리면서 어머니의 손마디는 굵어갔다. 객지로 유학을 떠나는 자식들이 많아질수록 어머니의 주름살도 늘어갔다. 검은 머리칼이 삘기 꽃처럼 하얗게 나풀거렸다. 세월의 풍화로 용두석이 닳아가듯 곱기만 했던 어머니는 힘없고 초라한 노인으로 그렇게 사위어가고 있었다.

종일 물살만 내려다본 용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낼까? 풍랑이 이는 날이나 미풍에도 물은 여전히 한 길로 흐르고, 세상은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했을 듯하다. 침묵하고 있는 용이지만 이제 애증의 집착을 벗어나 무욕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서 놓여나 정체된 시간의 단절 속에서 무념무상으로 살고 있는 초연한 어머니도 그러하지 않을까?

어머니의 걸음걸이가 위태위태하게 흔들렸다. 아직은 이승의 발에 힘이 있다 하더라도 현세와 피안의 간극이 어느 순간 한 점으로 일치할 것이다. 조마조마 했다.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모든 존재는 무상하게 변해가는 것을.

살아 있는 일이 즐거움이나 축복도 아닌 팔순 노인은 어린애처럼 먹고 자고 배설하는 원초적인 본능에 의지하며 지냈다. 지폐보다는 알사탕에 손이 가고, 따뜻한 말 한 마디보다는 새 옷 한 벌에 더욱 환하게 웃었다.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용두석이 빠지면 어찌 될까? 양쪽의 힘이 그곳에서 맞닿아 서로 단단히 버티는데 그 중심축을 빼면 다리가 한꺼번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용두석처럼 어머니 역시 자식들에게는 버팀목이다. 자식들의 정성이 어머니에게는 헛된 것일지라도 살아 계신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훈훈한 가슴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성성했던 갈대는 겨울의 칼바람을 이겨내느라 하얗게 바래고도 앙버티고 있었다. 새싹들이 드센 강바람에 젖혀 꺾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 스스로 내려앉아 거름이 될 것이다. 어머니는 행여 자식들이 세상 바람에 흔들릴까 염려하며 거꾸로일지라도 세월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가교문학, 무등수필문학회 회원. 광주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