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달기

 

                                                                                          구민정

야산에서 날아오른 까치 무리가 비상을 시작한다. 베란다 건너편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지만, 오늘 따라 그 날갯짓이 심상치 않다. 순식간에 바람이 인다.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아버지와 내 시선이 덩달아 그것들을 쫓는다. 까치의 수가 수십 마리를 훨씬 넘는 것 같다.

예로부터 까치는 길조로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요즈음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 아파트 주변에서만 봐도 먹이를 찾느라 쓰레기통 주위를 서성거리고, 대문 앞까지 날아들어 그 배설물로 골칫거리다.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볼 심사로, 까치 무리를 봤으니 좋은 일이 있을 거라 했다. 그런 내 말에도 아버지의 씁쓸한 표정은 여전했다. 그리고 기어이 본가(本家)에 가겠다고 집을 나서신다.

지하철역에서 괜찮다는 아버지를 부축하고 계단을 오른다. 초입부터 연기가 자욱하다. 연기뿐만이 아니다. 3층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점퍼 차림의 사내들로 인산인해다. 그들은 초췌한 모습으로 삼삼오오 계단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러고 보니 2층 경륜장에 경기가 있는 날인 모양이다. 매번 이 앞을 지날 때면, 초점을 잃은 듯한 사람들의 칙칙한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아 도망치듯 빠져나가곤 했었다.

최근 들어 지하철역 부근에는 실내 경마장이 부쩍 늘고 있다. 상가가 밀집된 역 부근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인데, 경마나 경륜장이 들어서면서 사행심을 부추기고 있다. 그곳의 분위기도 사뭇 험해서 지나는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언젠가는 역사(驛舍)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상으로 통하는 길을 찾다가 경륜장을 들어선 적이 있다. 동관과 달리 후미진 서관 주차장은 이용하는 사람이 적어 가지 않는 편이었다. 그 날 따라 주차 공간이 없었던지라 구석진 곳에 주차를 하고 어렵게 찾아낸 통로가 그곳이었다.

어두운 조명 속에 사람바다를 이루고 있는 경륜장 실내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경기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지레 겁을 먹고 한걸음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러한 경험에서인지 경륜장을 지날 때면 나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동정을 흘낏흘낏 살피게 된다.

그러던 차 며칠 전에는 새로 생긴 건물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이번에는 호기심에 경마장 안으로 들어갔다. 쾌적한 실내에는 오십여 석의 최신 모니터가 놓여 있고, 빈 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경마장 앞면의 대형 화면에 출전마(出戰馬)와 기수가 소개되자,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500원짜리 코인이 쉴새없이 휴지조각이 되어 떨어진다. 그 소리뿐, 실내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당첨 확률이 높은 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숨막히는 순간이다. 행운의 정도를 넘어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의 갈망은 용돈 아껴 복권을 사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모니터에 고정된 사람들의 눈빛은 필시 먹이를 좇는 맹수와 다름없었다. 그 눈빛에 밀려 슬그머니 경마장을 나왔다.

 

지난 상념을 떨구고 아버지께서 탄 지하철 꽁무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떠나는 전동차의 속도가 더디다. 나는 아버지 고민의 일부분도 덜어드리지 못했다. 그 고민을 풀어줄 사람은 친정오빠일 것이다. 경마장을 찾는 이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듯, 친정오빠 역시 사업중독증에 걸려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어려워진 가정경제로 갈수록 실업자가 늘고 있다. 집안에 한 명씩은 실직자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업문제는 사회의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정년의 연령대가 오륙도(56세)에서 사오정(45세)으로 내려서더니, 요즘엔 삼팔선(38세)이란 새로운 마지노선이 그어지고 있다. 이젠 더 이상 정년 나이가 따로 없게 되었다. 아예 취직도 못하고 직장 문턱에서 서성이는 젊은 인력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이 불황의 시기에 친정오빠는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몇 번의 사업 실패는 오빠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힘들게 했다. 아버지의 만류로도 오빠의 결심을 접을 수 없었고, 이번에는 집을 팔아 사업자금으로 쓰겠다고 했다. 노심초사하시던 아버지는, 두 분 말년에 쓸 비상금마저 털어주었다. 그로 인해 며칠을 몸져누우셨던 아버지가 막내딸네 집에 오셔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셨나 보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아버지 모습이 소리 없이 멀어져 간다.

칠십 평생 남에게 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아버지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내게 기대는 것조차 불편해 하셨다. 그 가느다란 떨림이 내게는 전율로 다가온다. 용돈을 드리려다 보니, 아버지의 손엔 우황청심환이 들려 있었다. 그런 아버지 모습을 본 나 역시 돌아와 안정제를 먹어야 할 지경이었다.

어둠이 내리면서 까치들이 비상하던 그곳에 달빛이 살폿 고인다. 그 달빛을 덮고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숙면에 드는 시각. 곳곳이 벼랑인 세상을 날기 위해 수없이 뛰어내렸을 실업자들. 그리고 그 속에 서 있는 내 오빠.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날개라도 달아주고 싶다. 이제 그 길었던 고난의 날을 접고 멋진 비상을 기대해 본다.

 

<계간 수필>로 등단.계간 수필 동인회 회원. 군포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