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카데미 제2회 강좌 요지>

 

 묘사(描寫)와 서사(敍事)

 

                                                                                  

                                                                                             정진권

1. 머리말

수필은 산문이다. 산문의 진술방식(陳述方式)은 설명(exposition), 논증(argument), 묘사(description) 그리고 서사(narration)의 넷으로 나뉜다.이 가운데 오늘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묘사와 서사다. 묘사는 모양이나 빛깔, 소리, 맛, 냄새, 촉감 같은 것을 그려 보이는 진술, 서사는 사건(또는 변화)을 이야기해 들려주는 진술을 말한다.

 

2. 묘사묘사에 관해서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퍽 많지만 여기서는 그 갈래와 관점만을 말해 보기로 한다.

 

(1) 묘사의 갈래묘사는 필자의 의도에 따라 주관적 묘사와 객관적 묘사의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그 대상에 대한 필자의 인상이나 정서(이 두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르지만 실제로는 잘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다), 후자는 필자가 파악한 사실을 전달하려고 한다.

 

갑작스런 나들이라서 그런 것일까? 소나기는 걸음부터 허둥거린다. 호박 잎사귀 몇 번 툭툭 튀겨보고 나서는 이내 떼거리로 우르르 몰려든다. 장대를 꽂듯 급한 걸음이 댓돌 위로 성큼 올라선다. 그냥 두면 안방까지 들어설 것처럼 저돌적이다.                     

                                                                                          ─` 안인찬의 ‘소나기’

 

*소나기 지나가는 모양 ─ 성급하고 저돌적이라는 인상.

 

10시 3분. 용인(龍仁)에서 양지(陽智)로 달리다. 추수가 끝난 들의 가을볕, 지붕까지 해 인 볏짚가리, 볕 좋은 마른 잔디 위에선 황소 한 마리가 심심했다.

10시 7분. 오천午川을 지나다. 문득 바라보니, 양쪽으로 늙은 포플러를 거느린 옛 신작로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새로운 것에 밀려나면서도 앙탈할 줄 모르는 그 순박한 곡선 위로 향수 같은 것이 어리었다.                                                                                    ─ 정진권의 ‘영동기(嶺東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향수라는 정서.

 

이 탑塔은 다른 탑들같이 으레 있어야 할 기단基壇이 없이 지대석(址臺石) 위에 그냥 탑신(塔身)을 올렸고 별 다른 조각(彫刻)은 보이지 않는다. 중앙부(中央部)에는 네모난 문이 각 면(面)에 하나씩 있다.                                                                                            ─`최신해의 ‘따뜻한 석탑(石塔)

 

’*어느 석탑의 모양`─`사실 그대로. 주관적인 인상이나 정서가 개입되면 독자가 사실에 접근할 수 없다. 객관적인 묘사는 사실을 전달하는(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므로 설명적 묘사라고도 한다.

 

(2) 묘사의 관점

묘사의 관점은 필자의 위치에 따라 고정된 관념과 이동하는 관점의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그 대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우, 후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관찰의 위치를 이동하는 경우다. 안인찬의 ‘소나기’는 필자가 한 자리에 고정되어 관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진술에는 ‘밖에서 안으로’라는 순서가 있다. 한두 마디로 묘사하기 어려운 대상은 위에서 아래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까이서 멀리로 같은 적당한 순서에 따라 묘사하는 것이 좋다. 고정된 관념의 이런 묘사는 보통의 수필에서 흔히 본다. 정진권의 ‘영동기’는 필자가 이동하며 관찰한 것이다. 이동하지 않으면 두 장면을 묘사할 수가 없다. 이 글은 여정(가는 길)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이동하는 관점의 이런 묘사는 기행문에서 흔히 본다.

 

3. 서사

서사에 관해서도 우리가 나눌 이야기는 많지만, 여기서는 그 갈래와 구성요소에 한하기로 한다.

 

(1) 서사의 갈래

서사도 필자의 의도에 따라 주관적 서사와 객관적 서사의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그 사건에 대한 필자의 해석이나 정서, 후자는 필자가 파악한 사실이 중심을 이룬다.

 

서쪽 담 너머에는 세영이네가 살고 있다. 처음 세영이네가 이사를 왔을 때는 한동안 서먹하게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세영이 엄마가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달걀 세 개만 꾸어 주시겠어요?”

나는 달걀 세 개를 담 너머로 넘겨주었다. 잠시 후 칼국수 한 그릇이 담을 넘어왔다.

                                                                                             `─`김국자의 ‘귀여운 이웃’

 

*작은 달걀 몇 개가 서먹한 사이를 뚫는다는 필자의 해석(의미). 물론 정다움(인정)의 정서도 적잖이 드러나 있다.

 

첫번째(수십 년 전)`:`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두 번째(그 십여 년 후)`:`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세 번째(또 십여 년 후)`:`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피천득의 ‘인연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정서.  전체적인 해석은 다음 서사의 3요소 참조.

 

고구려 영양왕은 대신(大臣) 을지문덕(乙支文德)으로 하여금 수군(隋軍)의 병영을 찾아가 거짓으로 항복하고 그 허실(虛實)을 엿보게 하였다. (중략) 그때 수장(隋將) 우중문(于仲文)은 곧 을지문덕을 잡으려 하였으나 위무사(慰撫使) 유사룡(劉士龍)이 만류하여 그 뜻을 따랐다. 을지문덕이 돌아가자 우중문이 이를 뉘우치고 급히 사람을 보내 속여 말하기를 “의논할 일이 있으니 다시 와 주기 바란다” 하였다. 그러나 을지문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왔다.

                                                                                                ─` 『동국병감(東國兵鑑)』

 

*사실 그대로. 대신을 사실과 달리 미화하거나 애국심을 반영하거나 하면 독자는 사실에 접근할 수 없다. 객관적 서사는 사실을 전달하는(이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므로 설명적 서사라고도 한다.

 

(2) 서사의 3요소서사는 움직임, 시간, 의미의 세 요소로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 움직임은 주로 인물의 행동, 시간은 그 움직임의 배경(시간에는 흐르는 대로의 시간과 현재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또는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이 있다), 의미는 그 사건이 드러내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김국자의 ‘귀여운 이웃’을 보자.

 

*움직임`:`세영이 엄마와 나의 행동`─`달걀 세 개와 칼국수 한 그릇을 주고받는다.

*시간`:`‘처음’에서 ‘어느 날’로 흐르는 시간.

*의미`:`작은 달걀 몇 개가 서먹한 사이를 뚫는다는 것.

 

다음은 피천득의 ‘인연’

 

*움직임`:`아사코와 나의 행동`─`뺨에 입을 맞춤`→`가벼운 악수`→`악수도 없는 절. 이것은 멀어지는 구조.

*시간`:`‘수십 년 전`→`그 십여 년 후`→`또 십여 년 후’로 흐르는 시간(이 글 전체는 현재`→`과거`→`현재).

*의미`:`두 인물은 결합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

 

4. 맺음말

묘사와 서사는 수필쓰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진술방식이다. 그런데 묘사든 서사든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진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을 이해시키려는 경우가 아닌 한 거의 무의미한 것이다.

수필은 사실을 이해시키려는 메마른 글(설명문)이 아니다. 좀 좁게 말하면 정서적인 만족을 수여하려는 글이다. 따라서 대상(사건)에 대한 수필가 자신의 인상, 정서, 해석 같은 주관적인 요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