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로村老의 소일

 

                                                                                         金奎練

캄캄한 불면의 밤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삼경을 넘겨서야 겨우 잠에 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른 아침부터 까치 떼의 요란한 지저귐에 눈을 뜨다.

두어 시간 더 수면을 취하고 싶어 들숨 날숨을 서서히 셈하며 와선(臥禪) 흉내를 내어본다. 하지만 헛수고다. 잠은 붙잡아도 뿌리치고 돌아선 옛 정인처럼 멀리 가버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팔다리를 흔들어보다 세수를 한다. 습관처럼 해오던 아침 기도가 시작된다. 나의 기도는 여생이나마 업력(業力)에서 조금 비껴나 원력(願力)으로 살아봤으면 하고 흐트러진 마음을 한 점 속에 모아보는 치열한 발열 작업일지도 모른다. 조반 한 술을 뜨고 거실에 나와 앉아본다. 신문을 대충 훑어보고 휴지함에 버린다. 괜히 착잡한 상념만 머릿속에 뒤엉켜든다. 요즘 TV를 보면 속이 들여다보인다고 할까. 어린 시절 섬진강 한 귀퉁이에 어망을 쳐놓고 상류로 올라가 물고기 몰이를 하던 영상이 불쑥 떠오른다.

사시(巳時)가 되면 집에서 나와 아파트 뒷켠에 있는 자그마한 숲으로 간다. 성지 순례하는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리며 걸어 나온다. 이맘때는 직장으로, 학교로 나가야 할 사람들은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가고 단지 내가 텅 빈 듯하다. 살아보려고 골목길을 누비며 확성기로 소리지르던 행상들도 찾아들기엔 아직 이르다. 너무나 고요하고 쓸쓸해서 때론 이국의 먼 숲 속에 묻혀 있는 옛 성터를 혼자 찾아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곤 한다.

이 작은 숲이 지금 나에겐 로키 산맥의 한 기슭보다, 알프스의 한 모서리보다, 지상의 어느 명승지보다 아름답고 고귀하다 하리라.

숲에는 소나무, 사철나무, 히말라야시다… 등 갈잎나무 이십여 그루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여기엔 흙이 있다. 그늘도 있다. 산에서 옮겨온 바위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가 하면 불사초(不死草)가 흐드러지게 깔려 있다. 이들은 시방 꽃대에 비취 빛깔의 열매를 조롱조롱 달고 있다. 참새며 비둘기며 박새가 날아들기도 하고, 쥐와 들고양이가 들락거린다.

나무 잎새들은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지금 가을 그림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저마다 햇볕 속에, 대기 속에, 흙 속에 숨어 있는 색감을 찾아내어 채색하는 솜씨가 절묘하다. 이들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화백이 또 있을까.

억새풀, 구절초 꽃향기, 풀벌레 소리가 같은 의미로 느껴질 무렵 어김없이 찾아드는 난치병(難治病)의 재발로 나는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어쩌면 무심한 세월의 흐름과 덧없는 삶에 끄달려 비탄에 빠져들지도 모른다. 그것이 모두 어쩔 수 없는 자연일 뿐인데도. 노인답지 않게.

나는 마냥 숲 속을 돌고 있다. 흙을 밟으면 생명의 원형체로 돌아온 환희 같은 것이 온몸에 전류처럼 찡하게 번져온다. 돌멩이도 밟고, 잡초도 밟고, 교묘한 위선으로 얼룩졌을지도 모를 나의 덮개도 밟아본다. 영욕과 부침으로 울고 웃으며 살아온 지난날의 회억도 이젠 밟아버린다.

숲 속을 돌면서 눈길을 나의 깊숙한 내면세계로 돌려본다. 마음의 호수에는 상금도 온갖 부유물들이 어지러이 떠다니지 않는가. 나는 지난 해 가을 어느 날 모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하다 말고 졸도했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서야 가까스로 살아났다. 그 후 나는 덤으로 사는 인생에 감사드리며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니 스스로 가긍하다 하리라.

입으로는 자연 따라 이승에 와서 자연 따라 살고 자연 따라 가버리면 그만일 뿐 슬플 것도 기쁠 것도 없다고 말해 왔다. 그러면서 뜯어내고 지우고 버리지 못했던 것은 한 떨기 제비꽃보다 못한 명성과 늦가을의 들풀보다 못한 건강에의 집착이었나 보다.

어느덧 숲 속의 모든 외물들이 나의 감성의 영토 속에 들어와서 저마다 침묵을 깨고 움직이며 말을 건네온다. 오늘은 바위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을 해온다.

“우매한 이 촌로여,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지 말라. 몸이 강건하기를 바라지도 말라. 바라는 바가 간절하면 그게 곧 만병의 뿌리가 되느니라. 비움으로써 채워지고, 버림으로써 얻어지며, 없음으로써 있게 되는 도리를 왜 모르는가…….”

집에 돌아와 마음에 점을 찍고 한숨 낮잠을 즐긴다. 잠이 깨면 읽다 둔 책을 들고 용을 써보지만, 읽을 때뿐 머리에 남는 게 없다. 원고지를 앞에 놓고 끙끙거려 봐도 몇 줄 나가다 막혀버린다. 밤에 다시 시도하기로 하고 밀쳐둔다.

석양에 다시 숲을 찾아간다. 그러나 분위기는 영 딴판이다. 동네 개구쟁이들이 모두 나와 온갖 장난을 치며 떠들고 논다. 내 어린 시절의 친구들 모습이 문득 눈앞을 스친다.

갖고 나간 좁쌀과 과자 부스러기를 늘 뿌려주는 장소에 흩어놓는다. 어제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마리 새라도 허기진 뱃속에 기별이 갔으면 좋겠다. 불현듯 알량한 마음 씀씀이 스스로 부끄러워 얼른 생각을 지워버린다.

어느덧 꼬마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숲에는 또다시 적막이 깔려온다. 소슬바람은 연신 나무 잎새를 흔들고 있다. 나도 귀가하고 밤이 깊어지면 아파트 창문마다 등불이 꺼질 것이다. 심야에는 이 숲에도 달과 무량무수의 별들이 찾아와 밀어의 향연을 베풀고 갈 것이다.

내일은 현풍(玄風)으로 가서 가을색이 짙어가는 낙동강 변을 배회해 볼 것이다.

하늘에는 해와 달, 수많은 별들이, 땅 위엔 만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존재들이 말하는 바 없이 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득도한 사람은 듣는 바 없이 그 소리를 들을 것이다.

나는 우둔해서 천지에 가득 찬 그 묵언을 한 자락도 읽어낼 수가 없다. 하지만 온몸으로 부딪쳐나 볼까 싶다.

다행히 물소리가 맑고 깊으면 내 영혼을 잠겨 볼 것이요, 아무런 걸림이 없이 떠다니는 구름을 만나게 되면 풍진 세상의 거울로 우러러볼 것이다. 그것 또한 욕심이라면 그냥 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