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식구

 

                                                                                             韓季珠

하(夏)·은(殷) 유적지 탐방을 마치고 밤늦게 인천공항에 내렸더니 뜻밖에 큰아들 내외가 마중나와 있다. 무슨 비행기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금년에는 유난히 밖으로 나갈 기회가 많았다. 2월에는 8박 9일로 파키스탄을 다녀오고, 4월엔 무한·장가계를, 5월에 또 중국 갈 일이 있다. 너무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는 떠나기 전날에야 인터넷 홈 카페에 신고를 했다.

‘엄마 발에 바퀴가 달렸나봐, 멈출 줄을 모르네. 이번에는 하·은 유적지 문학 기행. 16일 출발해서 24일 귀국’ 하고는 여행사 전화번호를 남겨놓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튿날, 눈을 뜨자 습관처럼 홈 카페를 열었다. 이 ‘전화여행 카페’는 손녀딸이 ‘할머니 글 올리세요’ 하고 만들어놓은 것인데, 할미는 컴퓨터 배울 생각 않고, 빈 방에 아이들만 부지런히 들락날락해서 신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놓았다. 뒤늦게 뛰어든 할미가 ‘주인도 없는 방에 함부로…’ 하면서도, 우리 같이 차 한 잔, 할 만큼 분위기가 재미있고 활달하다.

카페에 들어서니 ‘어머님 도착, 인천공항에서’라는 며눌아이 글이 올라와 있다.

이번 어머님 여행은 왠지 모르게 길게 느껴졌습니다. 혹시 몸이 편찮으신 건 아닐까 걱정도 됐습니다.

여행사에 전화해서 비행기 편을 알아서 인터넷에 도착 시간 확인.

어머님한테는 마중나간다 소리를 안 했으니 어머님이 나오시고 나서 어쩌시나 가만히 보자. 살금살금 따라가서 놀래키자.

커피를 마시고 기다리면서 남편이 하는 말, “우리 엄마는 쪼그만데 여러 사람 속에 묻어나오면 보일까?”

나, “아니, 그래도 내 식구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띄더라.”

갑자기 복잡해지고, 유심히 보니 배낭 하나 걸머지고 가방 하나 끌고 어떤 할마시가 씩씩하게 걸어오더니 우리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막 걸어가는 게 보이더군요. 우리는 “엄마다!” 하면서 부지런히 쫓아갔지만 여차하면 놓칠 것 같아 뛰어갔습니다.

하이구, 노인네 참 기운도 좋다. 피곤하고 지친 모습은 하나도 없고, 우리가 나오는 것 모르시니 그저 버스 타는 데만 열심히 가시는 구나.

……….

한참 감탄사를 늘어놓은 끝에 그 아이는, “참 다행입니다. 어머님 건강하게 잘 다녀오셔서 감사합니다. 여행 다녀오신 여독 잘 푸시고 다음 여행 기약하세요”하고 말을 맺고 있다.

나는 며눌아이가 “어머니, 그러다 병나시면 어떡해요” 하지 않고 다음 여행 기약하라는 말에 감격한다. 옆에 있으면 “너 멋있다” 하고 어깨를 두들겨줄 것이다. 더구나 ‘내 식구는 멀리서 봐도 눈에 띄더라’에 가서는 진한 일체감을 느낀다. ‘내 식구’라는 당연하고도 당연한 말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한식구’라는 개념으로 시댁 식구와 벽을 헐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일까.

생후 9개월에 걷기 시작한 큰아이는 총알같이 재빠르고 장난이 심해서 잠시도 가만 있질 못했다. 내 집이라면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데, 네 가구, 다섯 가구가 한 울타리 안에 사는 단칸 셋방살이에서 이 녀석은 시간제로 물을 받는 물통에 오줌을 갈기지를 않나, 남의 고추장, 된장독에 물을 붓지를 않나, 대문은 항상 열려 있고, 문 밖은 기차가 다니는 철길이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고, 종일 녀석을 뒤쫓다보면 밤에는 입을 열기도 싫어진다. 오죽하면 아이가 아니고 금덩어리였다면 그것 안하고 편히 살란다 했을까.

그러던 아이가 이제 한 여인의 지아비가 되고, 두 아이의 아비가 되었다. 부모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식 마음이 어찌 부모 마음 같을 수가 있는가.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 또한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그 자식들에게 되돌려주기 급급하다.

일찍이 박재식 선생은 ‘정리여수(情理如水)’라는 글에서 말하고 있다.

‘핏줄의 정이 물처럼 아래로 흐르는 것은 어쩌면 인류의 면면한 존속을 위해서 조물주가 의도한 구조적인 마련인지도 모른다.’

그 말 속에는 달관에 이르기까지의 부모 마음이 진하게 베어 있다. 선생을 본받아 나도 아이들을 내 마음에서 순순히 놓아 보내기로 했다. ‘오냐, 잘들 살아라. 너희들 잘 살면 고맙고, 부모 형제 잊지 않으면 복받는 일이다’ 하고. 그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나니 한결 편안하다.

지금 이 시간, 큰아들네 식구는 그 아들을 만나려 하늘을 날고 있다. 홈 카페에 ‘뉴질랜드 연락처’라는 글을 남기고.

‘제가 서울에 있어도 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없는 동안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어머님 하루 하루를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피곤하다 싶으면 만사 제치고 무조건 쉬세요. 이젠 어머님 몸이 어머님 혼자 몸이 아니라는 거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도련님, 윤지엄마, 어머님 잘 부탁할게요.

’이렇듯 식구들을 챙기는 며눌아이를 보며, 나는 내 짐이 그 아이에게로 넘어간 것을 느낀다. 고맙기도 하고 조금은 마음이 아리다.그래, 잘 다녀오너라.나는 구름 없는 하늘에 조용히 눈길을 보낸다.

 

<수필공원>으로 등단(92년). 현대수필문학상 수상(99년). 수필집 『전화여행』, 『아들네 집에 자 주러 갔다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