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水鐘

 

                                                                                            鄭木日

수종사에 가서 물의 종(鐘)을 바라본다.

종을 보면서 들리지 않는 종소리를 들어보려 한다. 귓가에 종소리가 맴도는 듯도 하다. ‘소리를 본다’는 ‘관음(觀音)’이란 말이 있다. 그 경지에 아주 못 미치지만, 환청 같은 종소리를 바라본 게 아닐까도 싶다.

수종사는 팔당 호수를 내려다보는 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절로서 1460년(세조 6년)에 창건되었다. 세조가 금강산을 다녀오는 뱃길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에서 야경을 즐기던 중 난데없이 종소리가 들려왔다. 세조는 기이하게 생각하여 주민들을 불러 물어보았다. “근처에 종은 없고, 종소리가 날 만한 곳은 운길산 중에 오래 된 절터가 한 곳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즉시 탐사케 하였는데 뜻밖에도 절터의 암굴 속에 18 나한상이 열좌列坐해 있고, 바위 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왕은 여기에다 사찰을 짓게 하고 수종사(水鐘寺)라 명명命名하였다.

절 아래로 팔당댐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요, 두물머리의 장관이 펼쳐진다. 멀리 사방으로 산수화 병풍을 둘러친 듯 산 능선들이 첩첩으로 에워싸고, 그 능선들은 은은히 울리는 종소리의 선(線)일 듯싶다. 바라볼수록 마음이 포근하고 편안해진다.

절 마당에서 오래도록 종각을 바라본다.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 위에 세워진 종각은 대웅전과 옆에 있는 요사채 아래에 있다. 기와지붕의 누각은 단청으로 단장했으며, 한가운데에 종이 걸려 있다. 그 자태가 자못 엄숙하고 깊은 침묵 속에 빠져 있다. 나는 호수를 배경으로 고적 속에 있는 종각을 본다.

그곳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의 공간일 듯싶다. 종을 안치하기 위한 소리의 성역(聖域)이 아닐까. 아무도 듣지 못한 성음聖音을 품고 있는 곳일 듯하다. 예전엔 미처 몰랐으나 깨달음의 소리꽃을 간직하고 있는 성소(聖所)가 분명하다.

종은 종각의 한가운데, 명상의 한복판에 걸려 있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소리 내는 풍경(風磬)과는 달리 장좌불와(長坐不臥) 묵언정진(默言精進)의 자세로 달려 있다. 종은 소리를 내기 전에 얼마나 오랫동안 마음을 갈고 닦아 득음(得音)한 것일까.

 

물이 떨어져 울리는 소리를 어떻게 종소리로 재생해 낼 것인가. 생명의 근원인 물의 영혼이 내는 소리는 신이 아니고서는 낼 수 없는 신비음(神秘音)일 것이다. 물이 내는 종소리는 욕심과 거짓과 죄업을 씻어주는 소리요, 영원으로 흐르는 순리의 소리이며, 뭇 생명에게 목마름을 해갈시켜 생기를 불어넣는 소생의 소리가 아닐까. 한 번 울려서 모든 근심을 씻어낸 듯 맑음과 광명을 주는 깨달음의 소리를 어떻게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종각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눈부셔 넋을 놓고 있는 나에게 일행 중 한 분이 차를 마시자고 한다. 곁에 시(詩), 선(禪), 차(茶)가 하나 되는 ‘삼정헌(三鼎軒)’이 있다. 다성(茶聖) 초의선사, 다산(茶山) 정약용, 추사(秋史) 김정희가 즐겨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던 곳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만나 무엇을 애기하며 나누었을까. 산 위에 앉은 듯, 물 위에 앉은 듯, 만년 명상 위에 앉은 듯한 삼정헌에서 차를 마시면서 수종 소리를 들었을까. 나도 수종 소릴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본다.

마음의 귀가 열리지 않아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수종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두물머리 물들은 한 번 만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하며 쉼 없이 낮은 데로 흘러서 마침내 얼싸안고 있는 것인가. 분명히 무슨 소리를 내고 있을 법하지만 들을 수가 없다. 깨달음의 소리를 들으려면 마음 속에 종각을 만들어 종을 매달아 두어야 한다. 마침내 자신이 깨달음의 종소리가 돼야 하리라.

수종사에 가서 물의 종을 본다. 가만히 하늘에 귀를 대본다. 어디서 신비음이 들릴 듯 말 듯 귓가에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