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생활

 

                                                                                              金素耕

컴퓨터를 배우라는 말을 주변에서 들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지금까지 시작을 못하고 있는 것은 기계 앞에서는 벌 서는 아이처럼 주눅이 드는데다, 아들이 반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돋보기가 필요한 내 경우에는 가급적 컴퓨터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아들은 내가 전자렌즈에 물 한 컵을 데울 때도 되도록 멀리 서 있으라고 한다. 그런 아들이 컴퓨터의 장단점을 열거하면서, 다소 불편한 생활이 오히려 좋은 삶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알면서도 선뜻 동의하지 않는 내 기색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 중에 ID가 없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한다. 아들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 가끔 어깨 너머로 사이버 공간을 들어가 보면 참으로 별나라 같은 세상 속이다. 누군가의 생일상이 차려진 것을 보았는데, 수저 없이도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한순간 이러다 나만 우주 공간에서 미아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소외감이 들었다.

몇 번 망설이다 어느 날 동네 PC방에서 사람을 불렀다. 한 번 시도를 해보고 좋은 쪽으로 결정을 할 요량이었다. 드디어 먼 나라의 문이 열리고, 마우스가 붕어 헤엄치듯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자, 어쩐지 처음과 달리 흥미가 이어지지 않았다. 온갖 별의별 기능을 다 보유하고 있다는 사이버 공간`─`그 바다 속으로는 꼭 필요한 사람만 들어가면 될 것 같았다.

내 일이 컴퓨터가 필수라면 흥미를 따지기 전에 그 공간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아도 내 일상이 별로 불편하지 않다.

원고 청탁이 오면 만년필로 솔솔 써서 가족 중 누구에게 부탁을 한다. 어느 때는 PC방에도 가는데 한결같이 친절하다. 원고지 분량이 많은 장르가 아닌 것도 다행이고, 청탁이 밀릴 정도의 반열에 있지 않은 것도 다행이라 할까. 한가하게 여러 번 퇴고를 할 수 있는 내 자리가 좋은 것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모든 연락사항이 내게는 우편과 전화로 오는 것이다. 내 쪽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 수고에 좀 미안하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 조금은 심심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족 중에 두 아들은 컴퓨터와 열애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연인들이 그렇게 이마를 마주하고, 눈을 맞추면서 장시간 밀어를 나눌 것인가. 그들은 자기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밤낮 없이 정보의 바다를 누비고 다닌다. 다정도 병일까 싶은 그 관계는 십여 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가끔 격려와 당부의 편지를 보낸다.

편지를 받고 안부전화를 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린다. 한여름 등나무 아래서 잠시 쉬고 있는 듯하다 할까. 그 음성에 감동과 여유가 실려온다. 더 멀리 외국에 있는 아들은 편지를 받는 마음이 더없이 반갑다고 한다. 첨단 통신으로 몇 초에 전달될 수 있는 사연이 산 넘고 바다를 건너 우편함에서 아들의 손에 전해진다. 편지를 우편함에 넣고 돌아설 때면 나도 모르게 다시 돌아보기도 한다.

얼마 전 어떤 이의 글에, ‘e-mail 주소가 없는 사람이 불쌍해 보인다’는 내용이 있었다. 온갖 정보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산다는 것이다. 잠시 나를 돌아보았지만 그의 말대로 내가 놓치고 사는 정보가 많아 불편한 것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의 정보가 필요하지 않은 생활이기를 바란다 할까. 산해진미가 아닌 조촐한 밥상 같은 하루를 살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첨단 문명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 많은 일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 있음은 다 아는 일이다. 다만 어떤 것이든 양면성은 있는 것이고, 편리한 만큼 그로 인한 불편도 따르기 마련이다. 내 경우에는 컴퓨터가 없는 세상보다 전화나 FAX가 없는 세상이 더 불편한 것이다.

아들이 내 건강을 위해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컴퓨터 하는 것을 말리지만, 그 말을 따르는 이유가 또 있다. 컴퓨터가 무정한 친구라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컴퓨터가 전공인 조카가 한순간 클릭을 잘못해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소중한 자료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의 상황에서 컴퓨터는 묵묵부답이었다. 서양 사람들이 이마를 짚으면서 신의 이름을 부를 그런 순간이었다. 그 날 조카아이를 보면서, 나는 컴퓨터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첨단 기계 앞에서 지레 겁을 먹는 내가, 이 시대에 가마를 타겠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더라도 이런저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내 생활을 사랑하면서, 십 년 후에는 또 어떤 세상일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