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종소리

 

                                                                                               李富林

이르면 7시, 늦으면 8시. 종소리를 들으려고 저녁이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집에서 가까운 K대 중앙도서관의 시계탑에서 정시마다 울리는 시계 종소리. 땡~땡~땡~ 하고 일정하게 치는 종소리가 아니고 기계음을 통해 나오는 멜로디가 있는 차임벨(chimebell)이다. 차임벨은 5~12개가 한 벌인 조율(調律)된 종인데, K대 종은 영국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종소리라고 한다.

K대 캠퍼스는 보폭이 큰 빠른걸음으로도 구불구불 도는데 한 시간 넘어 걸린다. 길들이 거의 숲 속에 있는데 언덕길도 서너 곳이나 있어 걷는 코스로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아침 저녁이면 동네 주민들 차지가 된다. 이곳에서 차임벨은 하루에 스물네 번 울리겠지만, 나는 거의 한 번만 듣게 된다. 처음 이 종소리를 들었을 때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걸음을 멈추고 멍하게 서 있었다. 40년도 넘는 대학 캠퍼스로 돌아간 것이다. 그 시절 모교에서도 이 종소리가 시간을 알려주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교무실 밖에 매달아 놓은 종을 손으로 치던 땡~땡~ 소리는 이제 아련하기만 하다. 고등학교에서는 각 교실마다 칠판 옆에 스피커 장치를 해놓고 졸던 학생이 벌떡 일어설 만큼 높고 굵은 소리, 띠~이~이~ 하고 신경에 거슬리는 금속성의 파열음으로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었다.

대학 신입생이 되어 본관 꼭대기에 붙어 있는 커다란 시계 종소리를 들으면서 과연 여자대학이라 멋진 종소리를 들려주는구나 싶었다. 사원의 종소리이기 때문인지 낮고 느린 은은한 울림은 마음을 가라앉혀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들게 했다. 이 때문일까, 대학생활을 신비롭고 기대에 차게 해주었으며, 재학 기간 내내 이 멜로디를 좋아했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시계 종소리를 뜻밖에 동네 대학에서 듣다니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 여름 미국에 갔을 때였다. 텍사스 주립대학교(U.T.)의 캠퍼스를 구경하던 중 K대에서 듣던 시계 종소리가 울렸다.(오스틴 시에서 제일 높은 U.T. 타워 시계탑은 소도시 오스틴의 명물이라고 한다.) 한낮 정오였다. 먼 나라에 와서 똑같은 시계 종소리를 듣다니! 금방 몸이 서울로 가고 마음은 모교와 동네 대학에 있었다. 시공을 초월한 경이로운 여행이었다. 시간과 거리가 한순간에 모아지고 내가 그 가운데 있었다. 오랜 세월을 마디지어 이어온 차임벨 소리가 단숨에 바다를 건너고, 이 종소리가 시간마다 울어주지 않았으면 세월도 흐르지 않고 멈추었을 것만 같았다.

런던에 있는 중세 사원으로 저명인사들이 묻힌 묘역이 있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지금도 이 종소리가 울리고 있겠지. 사원에 사는 영혼들은 차임벨 소리에 맞추어 세상 나들이를 하는가. 사원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어떠한지 궁금하다. 사원을 바라보며 듣고 싶다. 세계의 대학 가운데 얼마나 많은 대학들이 이런 시계탑을 가지고 있을까. 일 분이 채 안 되는 느리고 단조로운, 가벼우면서도 장중하고 귀에 익은 멜로디를 흥얼거려 본다. ‘라-파-솔-도… 도-솔-라-라’의 단순 율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주로 대학의 차임벨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수많은 대학생들의 감성과 지성을 시시로 일깨워온 이 곡을 누가 만들었을까. 혹 어느 곡에서 따온 멜로디인가.

시간마다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에 울릴 시계 종소리가 한꺼번에 귓가를 맴돌다가 서서히 젖어들어 잔잔한 기쁨이 된다. 이 기쁨을 안고 도서관 한 자리에 앉아 공부하고 싶다. 주위의 학생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시간을 채우고 싶다.

차임벨을 듣지 못하고 돌아오는 날은 하루를 놓쳐버린 듯 아쉽기만 하다. 언젠가는 차임벨 소리를 듣고 가려고 도서관 주위를 서성이며 몇 바퀴나 돌았는데도 울지 않아 허전했는데, 다음에 보니 시계바늘이 멈춰 있었다.

해 넘어간 하늘이 잔광으로 어스름할 때 시계 종소리를 들으면 밀레의 그림 ‘만종’이 생각난다. 밀레 자신이 문학적인 것보다 음악적인 감정을 더 강조했다는 그림이어서일까. 해질녘 멀리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들에서 일하던 부부가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드린다. 하루 일을 마치고 귀가하게 됨을 감사하고 내일 또 즐거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이겠지.

수목 사이로 울려 퍼지는 차임벨 소리를 들으면 나도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생기발랄하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좋고, 그 동안 인연을 맺어온 모든 분들이 고맙고, 이 시간에 땀 흘리며 걸을 수 있는 건강을 감사하며 종소리와 함께 오래오래 걷게 해달라고.

종이 울린다. 정시는 한 시간의 끝이요, 한 시간의 시작이다. 끝과 시작은 두 점이 아니요, 한 점에서 이어진다. 영원한 세월에 미미한 존재인 우리. 생사(生死)가 삶의 시작과 끝이라면 사는 동안은 언제나 끝도 시작도 없이 흐르며 나아간다. 시계 종소리는 세월을 이으며 흐르고, 나는 종소리를 따라 걷고 있다. 발바닥이 화끈해지도록 걸어야 한다.

걸음을 멈추고 종소리를 듣는다. 차임벨의 멜로디처럼 천-천-히 깊-게 숨을 고르고 나서 다시 경쾌하게 걷는다.

 

<현대문학>으로 등단(94년).저서 『대문 안쪽』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