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부기’의 힘

 

                                                                                        한혜경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아파트 어디선가 희미하게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어릴 때 좋아하던 노래라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 본다.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지금 불러봐도 마음을 파고드는 가사다.

나는 오빠도 없고 서울에 살았으니까 서울 간 누군가를 기다려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사다 준다는 비단 구두를 그리며 오빠를 기다리는 시골 어린 여자아이의 영상이 선하여, 노래 속 소녀와 동일시되는 느낌이 일어나곤 했다.

그 아이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오빠가 돈 벌러 서울에 간 것일 테지.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겼을까, 소식 한 통 없으니. 혹시 오빠가 환하게 웃으며 돌아올까, 편지라도 오지 않을까, 가녀린 목을 빼고 동구 밖을 바라보는 소녀. 그 아이는 어쩌면 평생 오빠를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오빠는 대도시 구석진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동생을 생각하며 눈물짓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슬픔이 바닷물처럼 쏴 하고 밀려와 가슴 속 한 귀퉁이에 자리잡는다.

거기에 비단 구두라니. 비단이란 말은 단순히 귀한 물건이라는 이미지만이 아니라 매끄러운 촉감을 지닌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신을 연상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아름다움이라는 점에서 더욱 내 마음을 끌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한참 잊고 지내던 기억의 창고를 슬며시 여니 좋아하던 노래들이 하나씩 둘씩 떠오른다. ‘섬집아기’, ‘따오기’, ‘고향 생각’, ‘고향의 봄’, ‘나뭇잎 배’ 그리고 ‘도라지꽃’이던가……. 엄마는 굴 따러 가고 혼자 남아 잠이 든 아기,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는 아이에게 들리는 따오기의 처량한 소리, 멀기만 한 고향땅,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

그러고 보니 모두 가슴 아픈 내용을 담고 있다. 혼자이거나 무언가를 잃고 그리워하고 있고, 소중한 것들에서 멀리 떨어진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다. 난 왜 이런 노래들을 좋아했을까. 어린아이가 자주 부르기에는 처연해 보일 수도 있는데. 게다가 가끔씩은 가족과 헤어져 혼자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훌쩍거리곤 했으니 일부러라도 슬픈 감정을 만들어내는 게 취미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심리를 되짚어 보니 특별히 비관적 성향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느린 템포로 노래를 부르다 보면 서서히 스며드는 애련한 느낌을 즐겼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슬픔이 잔잔하게 파문을 그리면서 퍼져나가고 그 잔상을 오래 음미하고 있다 보면 내가 말갛게 닦여진 것 같고,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질 때의 멜랑콜리한 감미로움, 눈물을 씻고 나서 거울을 보면 뭔가 달라 보이고 어른스러워진 듯한 다소 낯선 내 얼굴, 뭐 이런 것들 때문에 슬픈 노래와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눈물로 어룽거리는 시선 앞에서는 평소 밉살맞은 것들이 예뻐 보이는 변화가 생기기도 했으니까.

그러니까 슬픔은 사람을 선하고 맑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이다.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고통이라면 그것을 감상하고 할 여유가 없겠지만, 노래 속의 슬픔은 실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아픔 없이 감정이 정화되는 효과를 주는 것이리라.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보면 ‘뜸부기’ 노래를 부르면서 가슴 아파하기에는 너무 바쁜 게 아닌가 싶다. 자신만의 고요한 시간이 있어야 여러 감정의 결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어릴 때부터 온갖 것들을 배우러 다니고, 일찌감치 경쟁에 노출되어 있으니 한참 거리가 먼 얘기다.

더욱이 동요보다는 어른들의 가요를 즐겨 부르니 연인의 사랑이나 이별 같은 일부 정서에만 익숙해진다. 그러다 보니 슬픔이나 외로움, 기쁨 같은 여러 가지 느낌이 제대로 자리잡을 틈도 없이 극단적이고 왜곡된 감정에 잠식당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TV ‘가요무대’에서 어른 노래를 어른 뺨치게 불러대는 초등학교 아이를 보면 씁쓸해지는 건 그래서이다.

왕따니 폭력 서클이니,  점점 이기적이고 폭력적 성향이 강해지는 아이들 얘기를 들을 때면 이들이 슬픔을 느껴보지 못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슬픔에 이어지는 고즈넉함, 눈물을 흘리고 났을 때 따라오는 순수해진 기분 같은 것을 알기 전에 먼저 분노와 경쟁심, 이기심을 배우기 때문이 아닐지.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어지러움마저 느끼는 세상에서 잠시 그 움직임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만의 오롯한 슬픔의 향연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계간수필>로 등단(98년). 현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 소설 평론집 『상상의 지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