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박순정

공항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따스한 햇빛, 맑은 공기에 기분이 상쾌하다. 길가에 늘어선 동백나무도 은빛 햇살을 받아 유난히 푸른 빛을 더하고 있다.

해태 동산에서 가로수를 따라 걸어가는데 왁자지껄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귀를 울린다.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여인네들이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잔디밭에서 풀을 베는 아줌마들, 그들의 즐거운 모습을 바라보는데 유독 하얀 쌀밥이 눈에 들어온다.

어려운 시절 그렇게도 먹고 싶어하던 하얀 쌀밥, 우리 고장에선 명절이나 제사 때만 먹어보는 쌀밥 도시락이다.

나는 불현듯 중학생 시절 보리밥 도시락 때문에 고민하던 우스운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일제 말기 긴박감이 감돌았던 전시 하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겨울방학이 끝나 개학을 하면 첫 시간만 하고 보리밟기를 나갔다. 내의도 제대로 못 입은 학생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하나, 둘 외치며 보리 순을 밟기 시작한다.

언제나 포근한 웃음을 주는 담임은 중년의 일본 여인이었다. 추위에 떠는 어린 학생들이 안쓰러워 치마폭을 감싸주며 눈물을 보이곤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학교로 돌아가면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진다. 교실에 들어가기 바쁘게 도시락을 들고 모여 앉는다. 허기진 배를 눈 깜짝할 사이에 채워주는 꿀맛 같은 보리밥 도시락이었다.

그나마도 도시락을 못 싸오는 친구들과 한 숟갈씩 나눠먹던 인정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들.

그때는 보리를 왜 밟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밟았다. 오직 보리는 밟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겨울 동안 들뜬 표토와 뿌리의 착생을 튼튼히 하기 위해 보리의 그루터기를 밟아주어야 한다는 것도 먼 훗날에야 알게 되었다.

‘이층밥 도시락’, 서울에서 중학교 다닐 때 나의 별명이었다. 나는 항상 도시락 때문에 고민을 해야 했다. 보리에 약간 쌀을 섞었지만, 온통 보리밥으로 보였다. 친구들은 점심시간만 되면 몰려와 서로 먹어보겠다고 다퉜다.

나는 손으로 도시락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여 잽싸게 먹어치워야 했으며, 시골에서 태어난 게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어느 날 숙모님은 나의 고민을 알아차려 꾀를 부리는 것이었다. 도시락 바닥에는 보리밥을 깔고 숙부님이 드시는 쌀밥을 위에만 살짝 덮어 씌웠다.

친구들은 또 놀려댔다. ‘이층밥 도시락’이라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별명은 ‘촌뜨기’에서 ‘이층밥 도시락’으로 바뀌었다.

지난 여름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여름휴가를 왔다기에 몇십 년 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잊지도 않고 ‘이층밥 도시락’ 얘기를 하며 놀려대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나는 보리밥 예찬론자임을 역설했다. 구수한 보리밥은 고향이며 향수에 젖게 한다. 따뜻하고 모나지 않은 포근함이 있어 더욱 좋은 보리밥.

옛날 우리 할머니는 ‘보리알로 잉어 낚는다’고 절약하라는 말씀을 항상 하셨다. 그러나 요즘은 절약보다는 건강식으로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보리밥을 선호한다. 보리에는 쌀에 부족한 비타민 B1이 많이 들어 있어 탄수화물 대사에 도움을 주고, 칼슘, 철분, 인 등 무기질 함량이 높아 소화작용도 활발하고, 체내에 축적된 유독 성분을 제거해 주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살기가 편해지니 오직 건강에만 신경을 쓰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나는 예나 이제나 보리밥을 먹고 있다. 그러나 손자녀석들은 싫어하는 눈치다. 밥에 있는 콩도 골라내고 팥도 골라낸다.

거북스런 표정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아무렴, 옛날 나의 괴로움에 비할까 보냐고.

쌀밥은 싱거워서 맛이 없다. 쌀밥은 반찬도 제 맛이 안 난다. 한여름 푹 삶은 보리밥에 시원한 오이냉국, 아니면 미나리 곁들인 자리물회라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공항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화여대 영문과 중퇴. 제주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수료.<수필문학>으로 등단(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