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짧은 글 연습

 

─ 김(金) 선생의 근황은 이렇습니다 ─

 

                                                                                       정진권

이것이 좀 섭섭하다

김 선생은 지금 마나님을 모시고(그는 엄처시하다) 큰아드님네와 함께 산다. 거기 초등학교 꼬마 두 녀석이 있어서 모두 여섯 식구다. 식구가 많다 보니(김 선생은 결코 많다고 생각질 않는데…) 쓰레기가 적지 않다.

김 선생 댁 부엌에는 쓰레기통이 셋 있다. 하나는 라면찌꺼기나 과일껍질 같은 음식 쓰레기, 하나는 찢어진 비닐봉지, 꼬마들의 과자껍질 등등의 생활 쓰레기, 또 하나는 소주병, 참치 캔 같은 재활용품(이것을 쓰레기라고 하면 이놈들이 자존심 상한다고 할까?)을 담는 통이다. 김 선생은 바로 이 쓰레기 담당인데 참 부지런하다.

김 선생이 자진해서 쓰레기 담당이 된 것은 가난한 교사의 아내로 힘들게 살아온 마나님, 싫은 내색 없이 시집살이하는 며느님이 고마워서 그러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김 선생이 쓰레기를 치우려고 부엌엘 가면 마나님과 며느님이 말렸다.

"내버려두세요. 내가 이따 치울게."

"그냥 두세요, 아버님. 제가 곧 치울게요."

김 선생은 이런 말들이 듣기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둘 다 말이 없다. 그저 치우나 보다 하는 그런 표정들이다. 김 선생은 이것이 좀 섭섭하다.

팬티는 비누질을 해서

김 선생의 둘째 따님 내외는 둘 다 수학과(數學科) 교수다(근무하는 학교는 서로 다르다). 그러다 보니 학회(學會)에 함께 참석하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그런데 이 젊은 내외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딸내미가 하나 있다(천하에 없는 외동이다). 그래 먼 지방에서 열리는 학회에는 잘 가지 못하고, 가더라도 꼭 그 날로 돌아온다. 혹 늦어질 일이 생기면 김 선생 마나님이 가서 함께 지낸다. 이 아이는 어려서 김 선생 마나님이 길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프랑스에서 학회가 열린다. 그것도 장장 보름이나 된다.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거길 가면 누가 보나? 하는 수 없이 딸, 사위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해(뿌리치긴…) 김 선생 마나님이 따라갔다.

떠나기 전날 밤 자리에 누워서 마나님이 말했다.

"티셔츠나 러닝셔츠, 양말, 수건 같은 것은 빨래바구니에 넣어서 마루에다 내놓으세요. 그러면 어멈(함께 사는 며느님)이 가져다가 빨 거예요. 팬티는 당신 샤워할 때(1.5평짜리 그들 전용 세면실이 안방에 붙어 있다) 비누질을 해서 깨끗하게 헹궈가지고 세면대 옆 빨래걸이에 널어놓으세요. 빨래바구니에 넣지 마세요."

마나님이 떠난 지 오늘로 겨우 이틀째, 김 선생은 팬티를 헹궈 널면서 마나님의 두 번째 전화를 기다렸다.

 

누워서 받고 앉아서 받고 서서 받고

김 선생은 매달 연금(年金)을 받는다. 이 밖에 강사료라는 것이 몇 푼 있지만 그것은 오다가다 친구 만나 삼겹살에 소주 몇 번 하면 다 없어진다. 그러니 마나님에게 가욋돈 한 푼 못 준다. 김 선생이 학교에 있을 때는 그래도 무슨 특강이다 심사다 해서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는 것, 다 지나간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출판사와 책을 하나 내기로 해서 오늘 계약금 50만 원이 입금되었다. 김 선생은 빳빳한 만 원짜리 새 돈으로 50만 원을 다 찾아다가 하얀 봉투에 묵직하게 넣어서 마나님 앞에 슬그머니 내밀었다.

“아니, 이게 뭐예요? 돈?"

순간 마나님의 얼굴이 쨍하고 빛났다.

"돈이 그렇게 좋아?"

"그럼, 안 좋아요? 더구나 남편이 주는 돈인데. 아, 얼마만이야, 이게?"

"남편이 주는 돈은 세종대왕이 둘이래?"

"그럼요. 남편이 주는 돈은 누워서 받고 아들이 주는 돈은 앉아서 받고 딸이 주는 돈은 서서 받는대요."

"불손하기는……."

"그럼 엎드려서 받을까?"

마나님은 천하를 다 얻은 얼굴로 돈을 세었다. 김 선생은 모처럼 목에 힘이 갔다. 아, 얼마만이야,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