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사람, 귀한 사람

 

                                                                                        서지문

아주 오래 된 일이지만, 한해 여름방학에 영국에서 열린 학회에 동행해서 갔다 온 어느 선배가 "나는 서 선생이 아주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날 그런 깍쟁이인 줄 알았다"고 나에게 거듭거듭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마 깍쟁이인 줄 알았는데 깍쟁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기에 그렇게 실토를 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선배는 또 가끔씩 자신이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자랑을 한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그럼 나를 깍쟁이로 본 것이 제대로 본 것이었다는 말일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보자마자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 거라고 속으로 단정을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는 우리의 판단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 사람을 잘못 보아서 낭패를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또 사람을 보자마자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면서 첫인상에 의지해서 자신의 손익이나 운명, 또는 상대편의 손익이나 운명이 걸린 결정을 내린다.

우리는 보통 우리 생의 성공과 실패를 우리가 번 돈과 획득한 지위를 갖고 가늠한다. 그러나 우리 생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어떤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살았는가가 결정해 주는 것이다. 아무리 출세를 하고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이라도 가족들과의 관계가 지극히 나쁘거나 남들이 한결같이 그를 싫어하고 기피한다면 결국 그는 임종의 순간에 자신의 삶을 '실패'로 판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두 우리 가족, 친지, 타인들에게 기대를 걸며 살고 있다. 사람에 대해 기대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인간 혐오증에 걸리지 않았고, 인생에 대해 희망과 낙관적인 기대를 갖고 있다는 매우 건강한 신호이다. 인생에서 멋있고 인간미 있고 박식 있고 유능한 사람을 만났을 때만큼 살맛나는 때가 있겠는가? 게다가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 것같이 느껴질 때면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도 그 순간만은 생이 축복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정말이지 우리 생의 최고 순간은 매력 있는 사람, 덕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호감, 지나친 기대는 상대방에게 결례가 되고 피해를 주는 수도 있고, 나의 불행의 원인이 되는 때도 많다.

나는 "내가 사람을 볼 줄 안다"고 큰소리하는 사람을 대체로 불신하는 편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분명 하나의 '능력'이다. 살다 보면 정말 사람을 볼 줄 몰라서 거듭 낭패를 보고 '패가망신'의 지경에 이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비교적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이 웅변적으로 경고해 주듯이, 사람 속은 정말 알기 어렵다. 결혼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20년, 30년이 지난 다음에도 남편이나 아내에게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면을 발견하고 치를 떨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 물론 알지 못했던 미덕을 발견하고 감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내가 50여 년을 살아 보고 내린 결론은 사람에 대해서는 최종적인 판단은 언제나 유보해야 된다는 것이다. 내가 기대하고 존경했던 사람에게 실망한 일도 많지만 또 정말 볼 것 없는 타락한 인간으로 간주했던 사람에게서도 놀라운 재주나 이색적인 취미, 또는 남 몰래 한 선행을 발견하고 놀라는 때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기대를 갖기도 하고 과분한 애정이나 억울한 편견을 갖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갖지 못한 자질들을 남에게 투영해서, 남을 통해서 대리충족을 얻으려 한다. '영웅숭배'는 대개 유아적인 사람이 자기의 왜소함을 위로받으려는 심리적인 보상기제의 발동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타인 의존성이 강한 사람은 그 대상이 특별히 의리 없거나 부당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자기의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자기의 사랑과 존경에 고마워하고 보답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는 그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기대가 원망으로 변한다. 이런 경우에는 정말 그 대상이 된 사람은 죄 없이 미움을 받고 심하면 모략이나 상해를 당하는 일도 있다.

타인에게 심리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은 자기혐오가 강하고 자아가 매우 불안정한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 방수 처리된 자아를 지니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그럴 수 있다한들 그것이 바람직하겠는가?

사람의 일생은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와 환상을 가졌다가 실망과 환멸을 안는 것의 되풀이인지도 모른다. 호감을 가졌던 사람에게 실망과 환멸을 느끼는 것은, 특히 손익관계와는 무관한 경우라 해도 살맛 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아예 사람에게 기대를 걸지 않고 인간을 모두 버러지같이 보는 인간 혐오가는 가장 불행한 사람이고, 그에게는 인생 자체가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학문을 하는 것, 기술을 습득하는 것, 취미를 연마하는 것, 그리고 홀로 사색하는 것까지도 모두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닌가?

우리의 인생에 유쾌한 자극과 윤활유가 될 만큼 우리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기대도 가지면서,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도 나와 같이 행복을 추구하며 제반 인간적인 욕망과 충동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시련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해서, 그들을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들이 우리의 입맛에 맞춰 살기를 요구하지는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