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의 새

 

                                                                                      박항률

십여 년 전 어느 해 겨울, 늘 가까이 지내오던 후배 몇 명과 유럽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따뜻했던지라 인터라켄에서 올려다 보이는 융프라우(Jungfrau)의 전망대가 3천 미터 이상의 고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섭씨 영하 10도 내외였을 정도였다. 누구나 배낭여행을 다녀보면 경험하는 일이지만 여관비를 아낄 겸 야간열차에 몸을 싣기 마련이다. 우리 일행도 그곳 스위스에서 단숨에 달려 베네치아로 향했는데, 새벽에 도착한 베네치아는 짙은 바다 안개에 잠겨 있었다. 고풍스런 사원들의 돔(dome)은 그 실루엣을 물 위에 드리우고 다만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 유람선이 물 위에 잔잔한 파도를 남길 뿐이었다.

여관에 짐을 풀고 서둘러 나서서 산마르코 성당으로 난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다가 마침내 성당 앞 광장에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는 환상적인 성당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었고, 그 무렵 내 눈에 비친 또 하나의 환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떼 지어 날아드는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던지고 있을 때 우리 일행 중 한 후배의 머리 위에 한 마리가 날아와 앉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 그것은 항상 목마르게 찾던 명상적인 인간의 모습의 소재였던 것이고, 즉시 수첩을 꺼내 그 이미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구체화되기까지는 몇 년의 잠복기가 필요한 듯하다. 나에게 있어서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버린 '머리 위의 새'는 몇 번의 여행을 거치는 동안 의미에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몽고의 북쪽 바이칼 호수 옆에 자리한 시베리아의 작은 도시 이르쿠츠크(Irkutsk)에 자리한 박물관에는 부리야트(Buryat) 몽골족의 유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철검 손잡이 부분에 음각되어 있는 '머리 위의 새'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연곡사 뒷켠에 동부도, 서부도가 있는데 거기에는 부도 꼭대기에 가릉빈가가 허공을 날아오르려는 자세를 하고 조각되어 있었다.

‘머리 위의 새'는 인사동 골동가게 K씨가 들려준 발해 지방의 씨족수 이야기와 만주 에웬키족의 갓난아기를 위한 작은 영혼 상자에 들어 있는 목각 새 이야기를 거쳐 고구려 벽화 속에서 찾아낸 인면조의 이미지에 이르러 그냥 자연 속의 새에서 인간 영혼의 상징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었다.

새가 자유롭게 허공을 날아 나의 머리 속으로 날아들 때 이미 상상의 여러 가지 씨앗을 뿌려주고 그 씨앗들이 발아할 때는 신선한 새로운 형태들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 위의 새'는 잠자리로 변신하고 나비, 비어(飛魚), 인면조(人面鳥), 정자, 꽃, 나룻배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이와 같이 베네치아의 바다 안개를 헤치고 날아온 비둘기는 나의 머리 위에 화려한 영혼의 향기를 뿌려주었고,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던 것이다. 또한 여행은 분명 나에게 꿈의 무대였고, 그 꿈은 너울너울 나의 그림 속으로 작은 참새가 되어 날아와 앉는 것이다.

 

 

현 세종대 회화과 교수. 개인전 22회(서울, 후쿠오카, 뉴욕, 볼티모어).

제19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제8회 인도 트리엔날, NICAF '99 손끝으로 보는 조각전.

시집 『비공간의 삶』, 『그리울 때 너를 그린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