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의 선택

 

                                                                                        주연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는 늘 두 갈래의 길 앞에서 고민을 한다. 나는 이 여행을 단순히 즐기고 말 것인가? 아니면 좋은 글을 한 편 쓸 수 있도록 애쓸 것인가?

즐기는 차원이 되는 여행의 끝은 씁쓸하여 허무한 뒷맛이 남고, 한 편의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떠나기 전부터 관련 책자를 읽어 공부를 해야 하고, 여행 중에도 온 정신을 집중하여 안내자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정확한 일정과 지명을 적고, 또 떠오르는 상념을 놓치지 않도록 재빨리 메모를 해야 한다.

만약 내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면 글은 저절로 술술 풀려 고민할 이유가 없겠지마는, 불행히도 나는 그렇지가 못해 언제나 포획할 들짐승을 노리는 사냥꾼의 눈초리가 되어 호시탐탐 글감을 탐색하며 조바심을 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다녀온 그리스 여행에서도 그랬다. 아테네에서 짐을 풀고 난 다음 날,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두 가지의 길을 놓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여행을 일상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충만해 단세포적으로 즐기고 말 것인가. 아니면 몸과 마음으로 이 나라를 체험한 뒤 알찬 수필을 한 편 써 낼 것인가.

올림픽 개막을 보름 앞두어 부산해진 아테네의 거리를 지나는 그리스인들을 바라보며, 나는 '그리스인의 코'라고 하더니 정말 코가 크고 높구나, 올리브유로 만든 비누로 머리를 감으면 윤기가 난다던데 한번 감아 봐야지, 또는 독특한 박하향이 난다는 우조라는 민속주를 맛보다니 운이 좋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저 단순해지고 싶었다.

여행을 왔으니 좋은 글을 한 편 써야 하지 않는가라는 부담을 갖기도 싫었고 아무것에도 구속받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제우스를 비롯한 열두 주신들이 살았다는 올림포스 산정을 올려다보고 싶었고, 시의 뮤즈들이 살았다는 파르나소스 산등성이 밑을 걸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허나 또 다른 나의 반쪽은 생각이 달랐다. 그리스가 어떤 나라인가. 서양 문명의 두 원류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문화 중 그 찬란한 헬레니즘 문화의 발상지가 아닌가. 그리고 바로 문학의 뿌리가 되는 신화의 진원지가 아니던가. 그 빛나는 문화를 보고 느낀 뒤 어찌 빈손으로 돌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또 한편 좋은 수필을 쓰고 싶다는 다부진 의지로 충만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중심이라 믿고 '옴파로스, 대지의 배꼽'이라 이름지었던 델포이의 유적 앞에서, 지금은 무너져 기둥들만 남아 있으나 몇천 년 전 그 옛날엔 실로 장엄한 의식이 행해졌을 아폴론의 신전 앞에서, 어디선가 생각의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푸른 창공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힘껏 던져, 기다려도 오지 않는 상상의 한 마리 새를 잡기 위하여 온 가슴이 들끓기도 했다.

그러나 이 어찌 여행에서 뿐이랴. 우리는 살아가며 늘 두 갈래의 길에서 망설이게 된다.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가 '기쁨'과 '덕', 이 아름다운 두 여인을 만나 고민했듯이 '즐거움의 길이냐, 보다 높은 가치의 길이냐' 그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테베로 돌아가는 이 힘센 영웅 앞에 어느 날 '기쁨'이란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이 나타난다. 이 여인은 자기를 따라가면 인생이 쾌락으로 넘치게 되며, 인생이란 것은 즐거움을 모두 다 맛보기에도 너무 짧지 않느냐고 유혹한다. 이 여인을 따라가려는 찰나, 그의 앞에 다른 여인이 나타나 만류한다. '덕'이란 이름을 가진 그 여인은 인생에는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 훨씬 뜻있는 일들이 많으며, 자기는 편안한 삶을 약속할 순 없지만 아름다운 삶을 약속할 수는 있다. 아름다운 인생은 강한 의지와 불굴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주저하는 그에게 '덕'은 '기쁨'을 따라가면 남는 것은 결국 후회뿐, 진정한 기쁨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는 결국 '덕의 길'을 따라가 테베를 침입한 적들을 쳐부수게 된다.

이 같은 알레고리를 통하여 신화가 암시했듯이 앞으로의 삶의 길 곳곳에서 나는 헤라클레스의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여지게 될 게다. 정말 사소한 일에서부터 아주 중요한 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안락을 추구하려는 나의 감정과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려는 나의 이성은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내며 갈등을 할 게다. 그리고 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아무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일 뿐, 그야말로 완전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다. 결코 쾌락적인 인생관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금욕적인 가치관을 가지지도 않은 나는 다만 좋은 글을 씀으로써 성취감을 맛보고 싶고, 더 욕심을 낸다면 아울러 인정도 받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비록 빨갛게 피어오르는 열꽃이 터져 진물이 흐르고, 고열과 발진으로 온몸에 생채기가 난다 하더라도 삶의 열병을 한바탕 치르고 난 뒤에, 고요히 길 밖으로 사라져가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