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도 행복을 느낄까

 

                                                                                         임혜기

유리는 열세 살 된 우리 집 요크셔테리어다. 최근 귀가 어두워졌는데 나이 탓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들리는지 가늠이 안 된다. 문이 꽝 닫힐 때 반응이 있지만 소리쳐 불러도 듣지 못한다. 집안에서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데 잠시 안 보이면 기웃기웃 찾는 걸 볼 수 있다. 불러도 듣지 못하고, 이리저리 나를 찾는다. 내가 보일 때 손짓을 해야 부리나케 달려온다. 동작과 수화로 의사를 전달하는 셈이다.

듣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가엾기만 하다. 말소리의 높낮이만 듣고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는데 이젠 말을 해도 표정 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내가 말을 걸어주면 행복한 눈빛이었는데 이젠 그 기쁨을 못 느끼고 사는 것 같다.

동물도 행복을 추구할까? 그런 것 같다. 유리가 수시로 말 걸고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보여주는 애정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 개의 모든 행복과 불행은 내 손에 달려 있고, 내가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음식을 원하는 것과 달리 사랑을 탐하는 것은 동물에게도 진정 행복의 이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간은 행복을 삶의 지상적 목적으로 삼고 그 완성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행복해 보려고 바쁘게 산다. 작은 행복이 따르면 그걸 능가하는 행복을 위해 그것이 완료되면 더 크게 행복하려고 한계를 늘여가며 수고한다. 한계를 극으로 밀어가며 사는 건 행복의 완성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고, 만족의 종지부를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는 인간의 과정은 행복 추구라는 의지와 복선이 남모르게 깔려 있다. 평생 공부하는 승려라 해도 수도의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고, 해탈의 행복을 찾기 위한 고행이라고 보고 싶다. 사람들이 갖는 행복은 철저히 스스로가 만든다. 얼마 전 일본 황태자는 황태자비가 우울증에 빠지고 불행하다는 발표를 했다. 행복이 주위 사람에 의해 빼앗긴 특별한 경우일 것이다.

이렇듯 사람에게 중요한 행복이 동물에게도 해당이 될까?

듣지 못하는 개의 불행을 측은히 여기며 가져본 의문이다. 한데 동물의 행복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흰 암탉은 정말 행복한가? 이 젖소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가 따위의 해답을 찾아 동물의 웰빙(well-being)을 연구하는 그룹이다.

이 그룹은 비디오테이프로 닭이 노는 것과 우리(鬱)를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돼지가 혼자 코를 박고 음식을 먹거나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찍어 세밀한 행동 분석을 한다. 동물의 감정을 알아내기 위한 탐색이다. 돼지는 심적 고통을 느끼는가? 닭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 등을 연구한다. 동물의 감정 상태를 알아달라고 요청하는 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식용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켄터키 프라이 치킨,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 같은 기업이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기금을 연구기관에 대며 동물의 행복 여부를 알아보려 한다. 패스트 푸드 산업이 닭이나 돼지 등을 비인도적이고 가혹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도살하도록 부추긴다는 비난을 듣기 때문이다. 동물을 연구하는 대학의 기존 연구기관이 있지만, 이 기업들은 과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동물의 입장을 개선해 주겠다는 취지가 있다. 미국은 매년 80억의 동물들이 농장에서 사육되어 패스트 푸드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간다.

가축들은 거의 새장 같은 칸막이 속에 갇혀 살다 도살된다. 성장촉진제가 든 음식을 먹어가며 빈틈없는 공간에 갇혀 사는 환경은 처음 유럽에서 비판이 일기 시작하여 미국으로 확산됐다. 때문에 업자들은 동물들이 좋은 보살핌 속에 행복하게 살았다는 레벨을 붙여서 소비자를 안심시키고 싶어한다.

'당신이 먹는 햄버거 고기는 행복하게 살던 소의 행복한 고깃덩이로 만들었습니다'라든가, '우리가 사용하는 소는 대체로 행복한 축생을 살았음을 보장합니다' 또는 '이 맥너겟은 동료들과 뛰어 놀며 심적 부담감 없이 평생을 보낸 만족한 닭의 살코기로 만들었습니다' 식의 광고를 만들고 싶다. 그걸 먹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하나 이 연구가 동물들의 행복 여부를 확인해 주기에는 아직 요원한 듯하다. 표현이 정확한 인간의 심사도 알아내기 어려운데 말 없는 가축의 심정을 추측해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나 행복지수는 차치하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것이 가장 괄목할 행복책(幸福策)이라고 한다. 괴로운 감정을 가질 만한 경험이나 요인을 없애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다. 동물의 고통과 역경과 욕구불만과 좌절을 제거해서 평안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이다.

물론 행복을 결정하는 건 동물들 마음에 달려 있다. 편하게 짧게 사는 것보다 불편해도 오래 사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젖소의 경우 5년에서 7년 젖을 짰으나 이젠 태어나 2~3년 후에는 햄버거가 된다. 닭은 알에서 깨어나 평균 46일을 살면 맥너겟이 된다.

따라서 이들이 장수 요청을 해도 들어줄 수가 없다. 보태줄 수 있는 선심은 짧은 축생(畜生)이나마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의 행복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가축에게 짧고 굵은 삶을 베풀어주려고 연구를 거듭한다.

 

임혜기

뉴욕 거주 소설가. 미 동부 문인협회 회장. <소설과 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사랑에게 묻는다』, 수필집 『사람들은 자꾸 그곳을 바라본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