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구

 

                                                                                    한원준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구멍가게처럼 작은 한복집 쇼윈도에 전시된 옷을 보았습니다. 자주색 공단치마.

문득 얼마 전에 입원했던 병원에서 만난 작은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예뻐서 차라리 보석 같았던 계집아이. 여섯, 일곱 살쯤 됐을까?

무덥고 나른한 오후, 화장실에 갔다가 침대 위로 다시 올라가기가 너무 지겨워 복도 벤치에 잠깐 앉았습니다. 얼마나 활동적이었는지, 한 손에 바늘이 절대로 빠지지 않도록 두텁게 붕대를 감고 긴 링거 줄을 연결한 아이가 다가오다가 내 앞에 멈췄습니다. 그리고 잘 닦은 오닉스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난 예쁜 아이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습니다.

"이름이 뭐야?"  "진예."

"진혜?"  "진예예요, 아저씨."

그리고 아이는 부끄러운지 링거를 올려놓은 막대 뒤로 숨었습니다. 선과 같이 가는 막대가 아이의 몸을 가려줄 수는 없지만, 그러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내가 웃자 아이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재미있다는 듯 따라 웃었습니다. 무더운 날에도 아이는 자주색 공단 드레스를 입고 흰 스타킹을 신었습니다.

"아저씨 얼굴이 왜 그래?"

아이가 링거 막대 뒤에서 나오며 물었습니다.

"응, 아토피성 피부거든. 아주 좋지 않아. 며칠 전에 수술을 했는데 스트레스를 받았나봐, 그래서 더 엉망이 됐다."

알아듣지는 못했을 테지만, 아이는 이해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는 아직 예쁜 것과 흉한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아이의 영혼이 순결했습니다.

잠들었다가 깬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복도 건너편 병실의 아저씨와 친구 사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는, 아니 진예는 태어나면서부터 공주였습니다. 부모도 아이를 공주로 길렀습니다. 그래서 진예는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환자복은 절대로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워도 자기가 젤로 좋아하는 옷을 벗을 수 없었습니다. 눈물과 싸움으로 쟁취한 아이의 권리였습니다.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가며 진예를 불렀습니다. 아이는 내게 고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따라 들어갔습니다.

"어디가 아파요?"

나의 물음에 진예 엄마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부터 고였습니다.

"백혈병이에요."

엄마의 목이 메어서 간신히 쉰 소리로 그 말이 새어나왔습니다.

'혈액암. 그죠? 그런 거죠. 그런데, 그러니까…….'

"아이가 쾌활하니까 금방 건강해질 거예요."

난 내게도 믿기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 "그럴 거예요."

엄마는 다짐처럼, 믿음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슬쩍 눈물을 닦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엄마는 아이처럼 고운 미소를 남기고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의사는 나에게 신장암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콩팥 하나를 잘라냈습니다. 운 좋게도 아무 곳에도 전이되지 않았고, 콩팥은 두 개라 하나를 잘라내도 아무 일이 없을 거랍니다. 압니다. 지금은 장사가 안 되어 폐업을 했지만, 동네 쌀가게 아저씨도 콩팥 하나를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라톤 코스도 완주했고, 무거운 쌀자루도 척척 날랐습니다.

난 그렇게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예는 아닙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이대로 병세가 계속 되면 아이는 소아암 병동으로 옮겨가고, 방사선 치료도 병행해야 합니다. 네 번의 검진도 아이의 엄마를 기쁘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참 예뻤습니다. 감히 언젠가 내가 아이를 갖는다면 저렇게 예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예뻤습니다. 10년, 15년 뒤에 아이는 세상 어떤 여자보다 더 아름다워질 겁니다. 이효리보다 이영애보다 손예진보다 전지현보다 더 예뻐질 겁니다.

난 염세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에게만은 염세주의적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진예 엄마의 눈물 때문입니다. 너무 예뻐서 환한 웃음만으로 이 세상 모든 병마를 날려 보낼 것 같은 아이의 모습 때문입니다.

저 위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은 참 특이한 유머감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진예가 얼마나 예쁜지 그분도 아십니다. 아이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즐거운지, 얼마나 행복해질지 그분도 아십니다. 그 아이를 세상에 남겨두는 것보다 당신의 곁에 두는 게 얼마나 좋은지 잘 아십니다. 난 반감이 들었습니다. 그럴 바에 왜 세상에 주었는가? 왜 세상을 더 밝고 아름답게 하려던 것처럼 사기를 치는가?

한 자세를 계속 유지할 수 없어 이리 뒤척이고 저리 자세를 바꾸고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던 내 침대로 고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저씨." 진예가 수줍어하며 웃었습니다. 분위기가 어색한지 곁에 선 내 간병인 아줌마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나를 향해 웃어주는 아이의 미소에 갑자기 미안해졌습니다. 내 배에는 잘라낸 콩팥 자리에서 나오는 액체를 받아내기 위한 플라스틱 용기가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병실에 올 때마다 그 플라스틱 용기에 고인 액체를 짜냈습니다. 간호사들은 그것을 주머니라 불렀습니다. 아이는 작은 손을 들어 침대 위에 놓인 내 주머니를 만져보았습니다. 처음에 자주색 핏물이더니 며칠 새 예쁜 주황빛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저씨, 많이 아파?"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디 너만큼 아프겠니?' 나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너무 예뻐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난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아이도 나를 따라 미소를 만들어 보였습니다. 콧등에 세로로 두 개 주름이 졌습니다.

'너 꼭 나야 해. 금방 건강해져야 해.'

난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이대로 나빠지면 방사선 치료를 합니다. 그러면 고운 아이의 머리칼이 다 빠지고, 반짝이는 눈도 고통으로 흐려질 것입니다. 예쁘게 살이 오른 볼도 꺼지고 꺼칠해질 것입니다. 아이의 쾌활함도 웃음도 무너지듯 사라질 것입니다. 어쩜 진예가 울지도 모릅니다. 아파서 그리고 절망해서. 그러면 세상은 또 그만큼 어두워질 겁니다.

진예와 같은 병실에서 진예 또래의 환자복을 입은 계집아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열린 병실 문으로 진예를 발견하고, 문 뒤에 숨어서 고개만 내밀어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아직은 수줍은 아이가 조심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내 눈을 따라 친구를 본 진예가 나를 향해 봄날의 배꽃처럼 하얀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또 오께, 아저씨."

진예는 링거 고정대를 밀고 나가다가 돌아서 손을 흔들었습니다.

난 다음날 퇴원을 했고, 일주일 뒤에 진료를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진예를 찾아보았습니다. 병실에 아이가 보이지 않아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병실을 옮겼는데요."

간호사의 말이 너무 야속해 어디로 옮겼느냐 묻지 못했습니다. 아니 물을 수 없었고, 그 아이가 정말 소아암 병동에 있는지 찾아가 볼 수도 없었습니다. 수술 자리 실밥을 풀었지만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터덜터덜 병원 언덕을 내려오는데, 하늘은 울 듯 흐렸고, 세상은 미칠 듯 무더웠습니다.

 

 

<계간 수필>로 등단. 현재 민중서림에 근무.

저서 『감골에서 온 편지』, 『불임의 땅』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