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짜기 옵써예

 

                                                                                         전윤미

여성들이 옷을 갈아입었다. 푸짐한 어깨, 굵은 팔뚝은 얇은 끈으로 커버하고 타이트한 댄스복을 비집고 나오는 허릿살은 자신감의 표현이라, 그대로 내놓았다. 그들은 여고 동창생들로 얼마 전, 압구정동에 있는 레스토랑을 빌려서 무대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 아래 재즈댄스를 추며 잔치를 벌였는데, 이름하여 완경(完經) 파티라 한다. 나는 그 파티에 동참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소개한 지면을 통해 마치 하나가 된 듯 온몸이 들썩여졌다.

완경, 생소하기도 하지만 완경은 폐경과 같은 의미다. 초경을 치르는 꽃 같은 처녀에서 완경을 맞이하는 중년의 여성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한 달에 한 번 마술에 걸린다. 그러나 그 마술은 갈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 내 친구는 시험 기간과 월경이 겹치면 시험을 망쳤다. 평소에 성실했던 친구였지만, 진통제를 몇 알씩 먹고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은 시험 보는 시간마저 그를 놔주질 않았다. 당혹과 불쾌, 그리고 통증으로 이어지는 마술은 여성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도 말썽을 부린다. 월경 양의 변화로 발목을 잡거나 쳐다보기도 싫은 산부인과 베드에 눕게 하다가 결국엔 자궁마저 드러내게 한다. 존재하는 모든 남녀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이 붉은 핏방울로부터 생명을 얻건만, 남편들조차 이런 일에는 팔짱 낀 방관자가 되고 마는 것 같다.

여성들에게 있어 월경은 남성들의 군대 얘기만큼이나 만리장성을 쌓을 것이니 말해 뭐하랴. 다만 양지와 음지의 차이가 있다면 있으리라.

그런데 말이다. 그 마술 대상이 뒤바꿔진다면! 한 달에 한 번 남성도 마술에 걸린다면, 그렇다면 어떨까? 한 달에 한 번 마술로 끙끙거릴 때면 나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곤 했는데, 나같이 엉뚱한 이가 지구 저편에도 있는 모양이다. <미즈>라는 잡지를 창간한 페미니스트의 대모인 미국 여성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책을 냈는데, 그 제목이 기막히다. 『남성이 월경을 하면 어떨까』 책을 읽다 보니 완경 파티의 기사를 봤을 때처럼 신이 났다.

'남성이 월경을 한다면 그것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남성들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그 양은 얼마나 많은지 떠들어 댈 것이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 월경의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할 것이고, 의회에서는 국립월경불순연구소를 세울 것이다.'

심지어 월경은 남성만의 우월감의 증거라 으스댈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듯 글로리아는 월경을 통해 남성 위주의 사회를 꼬집었다.

이 기발한 상상의 구절들을 접하며 나는 호쾌하게 박장대소했다. 싫다는 남편의 귀에 대고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차별 아닌 '차이'가 있을 뿐인 양성 존중의 시대에 이론 논란을 해서 무엇할까. 어차피 조물주의 손에서 빚어진 운명이거늘, 가상(假想)은 그저 가상이기에 즐거울 뿐이다.

그런데 월경도 안 해 본 남성에게도 폐경이 있다는 학설이 활발하니 이 웬일인가? 나이 들면서 남성들 역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 저하로 육체뿐 아니라 정신, 사회적으로 노쇠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여성은 '걱정'하지만 남성은 '두려워'한다니, 양성 평등의 시대에 오히려 중년의 남성들이 더욱 측은해진다. 어려서부터 떠받들여지다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온 남성들. 거지 왕자일망정 왕자병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남성분들이 겪는 폐경의 허무라니. 남의 얘기만 같지 않아 나도 모르게 혀끝을 찬다.

초경이 빨랐던 나도 곧 마술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오라비처럼 품어주던 중년의 남편도 슬그머니 그 테두리가 좁아지고 있다.

완경 파티라 이름을 걸어놓고 자축했던 여고 동창들. 음지의 수군거림이 양지로 드러나기까지 그들의 몸앓이는 얼마나 컷을 것인가. 아니 몸앓이보다 심연(深淵)의 마음앓이, 그것은 또 얼마나 깊었을까.

끝났다는 부정의 의미인 폐경이란 단어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 성숙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의 '완경'이란 언어로 파티를 열었던 그들처럼, 나도 잔치를 하고 싶다. 허릿살이 좀 삐져나오면 어떠랴. 나도 한 번쯤은 화려한 댄스복을 입고 춤추고 싶다. 필시 쑥스러워할 남편에게도 연미복을 입혀놓고 진정한 휴머니스트의 스텝을 밟으리라. 살짜기 살짜기…….

 

 

<계간 수필>로 등단(2003년). 계수회원.

저서 『월요일 그 낯선 외출』과 공저 『빈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