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창우의 눈물

 

                                                                                         김인숙

아버님은 '쇠죽 끓이기'가 유일한 소일거리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님은 몸이 몹시 병약하다. 그러나 쇠죽을 끓이는 무쇠 솥 뚜껑 여는 소리는 늘 같은 시간에 난다. 쇠죽이 끓는 냄새는 구수해서 냄새만으로는 음식인지 쇠죽인지 구별이 안 간다.

소 여맥이를 보면 쌀뜨물에 연한 짚, 쪼가리 콩, 비지, 호박, 배추, 무, 사과, 시래기를 푹 끓이다가 마지막에 당가루(쌀겨)를 한 바가지 섞어서 여물통에 퍼 옮긴다. 뜨거운 쇠죽을 소는 콧김을 불어가며 머리를 주억거리며 맛있게 먹는다. 소가 먹다 남은 짚을 보면 푹 물러서 시래기 삶아놓은 것처럼 연하다.

섣달의 추위에 짚이 얼어 곧추 서 있고, 여물이 조금밖에 줄지 않은 날은 어머님이 끓인 쇠죽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소는 어머님이 끓인 여물은 먹지 않는다. 입으로 뒤적이며 시큰둥해서 마구에 길게 엎드려 되새김질만 한다. 눈으로 보아도 먹음직스럽지 않고 입천장이 찔릴 것처럼 보인다.

아버님은 소를 자식처럼 사랑한다. 신선하고 연한 풀을 베려고 뙤약볕에서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뜨거운 여름에는 소를 냇가 나뭇가지에 매어놓고 목욕을 시키고, 그늘에 있게 하며, 등을 쇠빗으로 빗겨주며 사람에게 말하듯 "덥지?" 하고 말한다. 소가 몸을 내맡긴 채 크고 순한 눈을 끔벅이는 모습은 어린아이 같다.

춥거나 덥거나 느낌을 나타내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 눈을 내려 깔고 되새김질하는 소를 보면 때론 무슨 깨달음을 얻으러 참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는 소를 '벽창우'라고 했다. 벽창우가 벽창호가 되었다고 한다. 우직스러울 만치 힘세고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소가 미련해 보여서 그렇게 붙여졌으리라.

아버님은 육남매를 두었지만 모두 곁을 떠나 산다. 그래서 떠날 줄 모르는 소에게 자식처럼 정이 가나 보다. 배가 고파도 마구 질척거려도 아버님의 손길만 바라는 소에게 의무감을 느끼나 보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 전날까지 쇠죽을 손수 끓여주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던 날이었다. 맏동서는 곡소리를 잘했다. 그러나 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옆에 있는 아우동서를 보니 그녀도 고개를 숙였지만 눈은 멀뚱거린다. 그때였다.

"엄마, 소가 울어요. 눈물이 막 흘러요."

아들의 말에 사랑방 앞에 있던 마구를 쳐다보니 소는 비스듬히 앉아 벽에다 머리를 대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의 눈물을 본 사람들은 "어유, 참 별일이야. 눈에 뭐가 들어간 거 아냐?" 했다.

그걸 본 어머님이 "그 소가 사람 말을 잘 알아들어. 얼마 전에 쇠죽 끓이기 힘들어서 잘 먹여 살찌워서 팔자고 했더니 여물도 안 먹더라"고 했다.

소는 눈물을 흘리며 여물을 먹지 않았다. 바위처럼 버티고 앉아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움직이지도, 물 한 모금도 먹지 않고 굶었다.

소는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동물로만 여겼더니… 축생과 인생이 희로애락의 표현에서 별반 다를 것이 없다니… 껍질만 다르다고 차별 대우를 받는 소가 처음으로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자네, 얼른 육회를 좀 무치게. 아까 한 것은 벌써 동이 났네."

맏동서의 말에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난 육회를 무칠 마음이 없어져버렸다. 슬픔을 느끼는 동물의 살을 채 썰기가 오싹해, 슬그머니 다른 사람에게 밀어놓고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일어서고 말았다.

상여가 나갈 채비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드디어 상두꾼들이 상여를 일으키고 시누이는 상여를 부여잡고 늘어져 울음 운다. 그때까지 마구에서 벽에다 머리를 처박고 있던 소가 둔중하게 몸을 일으켜 따려가려는 듯 우사(소의 집)가 부서질 것처럼 버둥댄다. 코뚜레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길게 목을 빼고 엄마 찾는 송아지의 소리보다 높고 깊게 "머어~" 하고 길게 소리 내며 머리를 내밀고 상여 쪽을 바라본다.

눈물에 젖은 소의 눈망울이 상여를 따라간다.

 

 

수필가.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