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이하윤(異河潤)의

 

'메모광狂'

 

 

일시 : 2004년 10월 16일

장소 :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문우회 회원 16명

사회 : 변해명

정리 : 최순희

 

 

<본문>

 

메모狂

 

어느 때부터인지 나는 '메모'에 執着, 依賴하기 始作하여, 오늘에 와서는 잠시라도 이 '메모'를 버리고 살 수 없는 실로 한 '메모狂'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버릇이 차차 커짐에 따라, 내 기억력까지를 의심하리 만큼 뇌수의 일부分室을 '메모'뭉텅이로 가득 찬 포케트로 만든 듯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수첩도, 일정한 '메모'用紙도 잘 使用하지 않는다. 아무 종이이거나 ― 원고지도 좋고, 휴지도 가릴 바 아니다.― 닥치는 대로 '메모'가 되어, 안팎으로 上下 縱橫으로 쓰고 지워서, 일변 닳고 해지는 동안에 정리를 당하고 마는지라, 만일 수첩을 '메모'와 겸용한다면, 한 달이 못 가서 잉크투성이로 변하거나, 책장 찢어진 나머지의 실오리까지 끊어져 버리거나 할 것이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흔히 내 머리에 떠오르는 卽興的 詩文, 밝은 날에 실천하고 싶은 理想案의 가지가지, 나는 이런 것들을 망각의 세계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내 머리맡에는 원고지와 연필이 상비되어 있어, 간단한 것이면 어둠 속에서도 능히 적어 둘 수가 있다.

가령, 수건과 비누를 들고 목욕탕을 나선 道中에서 무슨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또 나는 이것을 잊을까 두려워하여, 오직 그 생각 하나에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나, 거기서 聯想의 가지가 돋치는 다른 생각 때문에, 기록할 때까지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 될 수효가 늘어, 점점 복잡하게 된다든가, 또는 큰길을 건너는 자동차를 피하다가, 혹은 친구를 만나 인사와 이야기하는 얼마 동안 깨끗이 그 생각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다. 생각났던 것을 생각하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내지 못할 때의 괴로움, 안타까움은 거의 사람을 미치기 않을 만한 정도에까지 誘導해 주고는 한다.

그러므로 목욕이나 이발의 시간같이, 명상의 시간을 주면서도 연필과 종이를 허락하지 않는 때처럼, '메모광'에게 있어서 부자유한 시간은 다시 없을 것이다.

꿈에서 현실로 넘어서는 동안, 고개 안팎에서 얻은 실로 좋고 아름다운 想을, 나는 곧 머리맡에 놓인 종이에 의뢰할 수조차 있는 일이건만`─`바쁜 行步中, 혹은 약간 醉中에 기록한 '메모'의 글자나 그 槪念이 不充分할 때,`─`그것을 摸索하는 苦痛은 여간한 것이 아니다. 마치 예의 있는 석상에서 상대편의 不快를 憂慮하여, 記者風의 怪癖을 발휘하지 못하는 고통과 比肩할 만도 하다. 그래, 그 분명하지 못한 자신의 필적을 凝視 熟慮해 보건만, 결국 신통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또한 적지 아니하다. 聯想의 杜絶로 因한 無意味한 字劃이 한동안 내 머릿속을 산란하게 해 주었을 따름이요, 그렇다고, 별반 큰 변동이 내 자신 위에 發生하는 것은 전연 아니다.

아침마다 나는 그 '메모'를 대략 살펴, 그 날의 행사를 拔萃抄綠해 들고 집을 나서건만, 물론 실행은 그 절반도 될 리가 없다. 기회 있는 대로 정리하고 하는 '메모'건만, 여기저기 기이한 잉크 흔적을 보여 주는 몇 장의 '메모'뭉텅이는 봉투 속에 집어넣고 간수함이 高價의 紙幣에 비길 바 아니니, 한 번도 紛失한 일이 없으리라는 것쯤 可히 斟酌할 수 있는 일이다.

'메모'뿐이 아니요, 평소에 별로 소유물을 잃어버려 본 일이 없는지라, 성냥 한 갑이라도 이유 없이 어디다 놓고 온 때는, 불쾌한 마음이 한동안 계속되는 괴벽임에도 不拘하고, 一大事件`─`내게 있어서는 實로 重大한 事件`─`이 發生한 일이 있다.

十三 四年 前의 일로 記憶한다. 東京 學窓에 있을 時節 하루는 自炊하는 親舊들의 招待를 받아, 저녁을 먹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책상 위에서 '메모'를 整理하려고 포케트를 뒤졌으나, 내 노력은 헛것이었다. 이날 밤, 자기 전의 일과는 常軌를 벗어나, 내 마음을 鎭定시킬 길이 없었다. 찾고 또 찾고, 생각다 못해 省線으로 두 정거장이나 가서도 십 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친구의 집을 그 길로 다시 되짚어 찾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리를 펴고 누웠으나, 쓰레기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변소를 가는 마루에서 내 귀중한 '메모' 봉투를 發見했을 때의 즐거움이란! 아직도 어렸을 적이라, 歡呼雀躍하여 人事도 하는 둥 마는 둥, 자고 가라는 권유도 한 귀로 흘리고, 단걸음에 숙소로 돌아왔다. 그 날 밤은 물론 평소에 드문 편안한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의 '메모광'적인 習癖은 나의 좋지 못한 整理癖에 도움이 많았다. 서적이며, 서신이며, 사진이며, 신문, 서류 등의 整理癖은 놀라울 만큼 病的이다. 그래서 나는 가령 한 가지 原稿를 끝내지 못하고서는, 다른 한 가지의 着手에 좀처럼 옮겨가지를 못한다. 독서에 있어서도 또한 多分히 그런 弊端이 있는 까닭에, 책상 위에 四, 五種 以上의 서적을 벌여 놓는 일이 별로 없이 책장 속에 安置되어 있으며, 책의 페이지를 펼쳐 놓은 채 外出하는 일도 全혀 없다.

여기 따르는 蒐集癖도 약간 있어, 내 원고를 발표한 신문, 잡지들의 스크랩은 물론 하나도 빠짐없고, 소용에 닿을 만한 다른 신문 잡지도 상당히 가위와 송곳을 要한 後, 벽장 속에 蓄積되는 것이다.

要컨대, 내 '메모'는 내 物心兩面의 前進하는 발자취이며, 消滅해 가는 全 生涯의 設計圖이다.

여기엔 記錄되지 않는 語句의 종류가 없다 해도 過言이 아닐 만큼 廣範圍에 亘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내 '메모'는 나를 爲主로 한 보잘것 없는 人生生活의 縮圖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衰退해 가는 記憶力을 補佐하기 爲하여 드디어 나는 뇌수의 分室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58 년 대학교수 수필집 『書齋餘滴』(耕文社)에 수록.

당시 53세. 서울사대교수(영문학). 시인.

 

 

 

메모狂(異本)

 

어느 때부터인지 나는 '메모'에 執着, 依賴하기 始作하여, 오늘에 와서는 잠시라도 이 '메모'를 버리고 살 수 없는, 실로 한 '메모狂'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버릇이 차차 커짐에 따라, 내 기억력까지를 의심하리 만큼 뇌수의 ①일부分室을 '메모' 뭉텅이로 가득 찬 포케트로 만든 듯한 ②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수첩도, 일정한 '메모' 用紙도 잘 使用하지 않는다. 아무 종이이거나 ― 원고지도 좋고, ③휴지도 가릴 바 아니다.― 닥치는 대로 '메모'가 되어, 안팎으로, 上下 縱橫으로 쓰고 지워서, 일변 닳고 해지는 동안에 정리를 당하고 마는지라, 만일 수첩을 '메모'와 겸용한다면, 한 달이 못 가서 잉크투성이로 (변하거나, 책장 찢어진 나머지의 실오리까지 끊어져 버리거나 할 것이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흔히 내 머리에 떠오르는 卽興的 詩文, 밝은 날에 실천하고 싶은 理想案의 가지가지, 나는 이런 것들을 망각의 세계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내 머리맡에는 원고지와 연필이 상비되어 있어, 간단한 것이면 어둠 속에서도 능히 적어 둘 수가 있다.

가령, 수건과 비누를 들고 목욕탕을 ④나선 道中에서 무슨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또 나는 이것을 잊을까 두려워하여, 오직 그 생각 하나에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나, 거기서 聯想의 가지가 돋치는 다른 생각 때문에, 기록할 때까지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 될 수효가 늘어, 점점 복잡하게 된다든가, 또는 큰길을 건너는 자동차를 피하다가, 혹은 친구를 만나 인사와 이야기하는 얼마 동안 깨끗이 그 생각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다. 생각났던 것을 생각하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내지 못할 때의 괴로움, 안타까움은 거의 사람을 ⑤미치기 않을 만한 정도에까지 誘導해 주고는 한다.

그러므로, 목욕이나 이발의 시간같이, 명상의 시간을 주면서도 연필과 종이를 허락하지 않는 ⑥때처럼, ‘메모광’에게 있어서 부자유한 시간은 ⑦다시 없을 것이다.

꿈에서 현실로 넘어서는 동안, 고개 안팎에서 얻은 실로 좋고 아름다운 想을, 나는 곧 머리맡에 놓인 종이에 ⑧의뢰할 수조차 있는 일이건만―바쁜 行步中, 혹은 약간 醉中에 기록한 '메모'의 글자나 그 槪念이 不充分할 때,─그것을 摸索하는 苦痛은 여간한 것이 아니다. 마치 예의 있는 석상에서 상대편의 不快를 憂慮하여, 記者風의 怪癖을 발휘하지 못하는 고통과 比肩할 만도 하다. 그래, 그 분명하지 못한 자신의 필적을 凝視 熟慮해 보건만, 결국 신통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또한 적지 아니하다. 聯想의 杜絶로 因한 無意味한 字劃이 한동안 내 머릿속을 산란하게 해주었을 따름이요, 그렇다고, 별반 큰 변동이 내 자신 위에 發生하는 것은 전연 아니다.

아침마다 나는 그 '메모'를 대략 살펴, 그 날의 행사를 拔萃抄綠해 들고 집을 나서건만, 물론 실행은 그 절반도 ⑨될 리가 없다. 기회 있는 대로  정리하고 하는 '메모'(건만), 여기저기 기이한 잉크 흔적을 보여 주는 몇 장의 ⑩'메모' 뭉텅이는 봉투 속에 ⑪집어넣고 간수함이 高價의 紙幣에 비길 바 ⑫아니니, 한 번도 紛失한 일이 ⑬없으리라는 것쯤 可히 斟酌할 수 있는 일이다.

'메모'뿐이 아니요, 평소에 별로 소유물을 잃어버려 본 일이 없는지라, 성냥 한 갑이라도 이유 없이 어디다  놓고 온 때는, 불쾌한 마음이 한동안 계속되는 괴벽임에도 不拘하고, 一大事件―내게 있어서는 實로 重大한 事件―이 發生한 일이 있다.

⑭十三 四年 前의 일로 記憶한다. 東京 學窓에 있을 時節 하루는 自炊하는 親舊들의 招待를 받아, 저녁을 먹고 밤늦게 집에 돌아와, 책상 위에서 '메모'를 整理하려고 포케트를 뒤졌으나, 내 노력은 헛것이었다. 이 날 밤, 자기 전의 일과는 常軌를 벗어나, 내 마음을 鎭定시킬 길이 없었다. 찾고 또 찾고, 생각다 못해 ⑮省線으로 두 정거장이나 가서도 십 분 이상을 걸어야 하는 친구의 집을 그 길로 다시 되짚어 찾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리를 펴고 누웠으나, 쓰레기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변소를 가는 마루에서 내 귀중한 '메모' 봉투를 發見했을 때의 즐거움이란! 아직도 어렸을 적이라, 歡呼雀躍하여 人事도 하는 둥 마는 둥, 자고 가라는 권유도 한 귀로 흘리고, 단걸음에 숙소로 돌아왔다. 그 날 밤은 물론 평소에 드문 편안한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의 '메모광'적인 16習癖은 나의 좋지 못한 整理癖에 도움이 많았다.  서적이며, 서신이며, 사진이며, 신문, 서류 등의 整理癖은 놀라울 만큼 病的이다. 그래서 나는 가령 한 가지 原稿를 끝내지 못하고서는, 다른 17한 가지의 着手에 좀처럼 옮겨가지를 못한다. 독서에 있어서도 또한 多分히 그런 弊端이 있는 까닭에, 책상 위에 四 五種  以上의 서적을 벌여 놓는 일이 별로 없이 18책장 속에 安置되어 있으며, 책의 페이지를 펼쳐 놓은 채 外出하는 일도 全혀 없다.

19여기 따르는 蒐集癖도 약간 있어, 내 원고를 발표한 신문, 20잡지들의 스크랩은 물론 하나도 21빠짐없고, 소용에 닿을 만한 다른 신문 잡지도 22상당히 가위와 송곳을 要한 後, 벽장 속에 23蓄積되는 것이다.

要컨대, 내 '메모'는 내 物心兩面의 前進하는 발자취이며, 消滅해 가는 全生涯의 設計圖이다.

여기엔 記錄되지 않는 語句의 종류가 없다 해도 過言이 아닐 만큼 24廣範圍에 亘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내 '메모'는 나를 爲主로 한 보잘것 없는 人生生活의 縮圖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衰退해 가는 記憶力을 補佐하기 爲하여 드디어 나는 뇌수의 分室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958 년 대학교수 수필집 『書齋餘滴』(耕文社)에 수록.

당시 53세. 서울사대교수(영문학). 시인.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38호, 2004년 겨울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작품은 시인이며 영문학자였던 연포蓮圃 이하윤(1902~1974) 선생의 수필 '메모광狂'입니다. 선생은 강원도 이천 출생으로, 1926년 호세이 대학 재학 중 시대일보에 시 '잃어버린 무덤'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와 <해외문학>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입니다. 1929년 귀국하여 이듬해 <시문학>을 중심으로 한 순수시 운동에 참여하였고, 그 뒤 동아일보 기자·중앙방송국원 등을 거쳐 광복 후에는 중앙문화협회를 창설, 프로문학에 대항하였습니다. 1949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대 사대와 법대에 재직하면서 영미 시 번역에도 기여를 한 분이지요. '메모광'은 1958년에 발간된 서울대학교 교수 수필집 『서재여적書齋餘滴』(경문사)에 수록된 수필입니다. 한자어도 많고 문장이 구투스러운 곳도 있긴 합니다만, 교과서에 수록되어 그의 이름을 독자들의 기억에 시보다도 더 깊이 새겨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토론자로는 정진권·유혜자·주연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먼저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에서 이하윤 선생에게 직접 배운 정진권 선생께 작가론을 부탁드립니다.

정진권 : 저는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했습니다. 오늘 사회자께서 저를 이 자리에 앉힌 것은 그 시절의 문학 외적인 이야기를 좀 해보라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은 학교 밖의 일이 참 많은 분이셨습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유네스코·펜클럽·한국문인협회·비교문학회 등 단체에 관여하시고, 국제적인 문화행사에 한국을 대표해서 참석하는 일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90분짜리 강의에 30분 늦게 오시거나 30분 먼저 가시는 일도 잦았고, 휴강도 잦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하시다가 빙긋 웃으시는 모습은 도무지 급할 게 없는 분 같으셨습니다. 저는 1958년에 졸업을 했는데, 그 뒤로는 바깥일을 줄이고 늘 학교에 계셨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비교문학을 최초로 강의하신 분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문학 관련 학과가 있지만, 이 강좌가 개설된 것은 서울대 사대 국어교육과가 처음입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방띠겜(P. van Tieghem)이니 귀아르(M.F. Guard)니 하는 비교문학자들의 이름을 들었고, 송신자·수신자·미디어 같은 비교문학의 기본 개념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1991 년에 우리 허세욱 회장의 도움을 받아가며 저는 '윤오영에게 끼친 장대張岱의 영향'(국어교육 제75·76, 한국국어교육연구회)이라는 논문을 쓴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윤오영 선생의 '달밤'과 그분이 칭찬한 명대의 소품작가 장대의 '호심정간설湖心亭看雪'을 비교한 것인데, 그때 선생님의 그 강의실과 저의 학창 시절이 새삼 그리웠습니다. 1957년 서울대 사대부고에서 교생실습을 할 때 학생들에게 이 '메모광'을 가르쳤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읽으니 '기자풍의 괴벽', '환호작약' 이런 말들이 참 신기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머잖아 50년, 그리움 속에 세월을 느낍니다.

 

사회 : 50년 세월이 지났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지요. 글 쓰는 사람들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메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는 주제가 분명하게 담겨 있어서 발표될 당시 상당한 호응을 일으킨 이유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주제를 어떻게 표현해 냈는지를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주연아 : 이 글의 주제는 복잡한 현실을 살아내는 데 있어서 메모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작가 자신의 습벽을 예로 들어가면서 쓴 글입니다. 저도 공감을 하면서 읽었고, 상당히 보편성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수필을 쓸 때의 중요한 두 가지, 즉 내용면에서 소재의 의미화와 표현 면에서 주제의 형상화가 잘 되어 있다고 봅니다. 작가는 메모라는 가시적이고 1차원적인 소재에서, 메모의 중요한 가치라는 비가시적이며 3차원적인 의미를 잘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또 '물심양면의 전진하는 발자취', '전 생애의 설계도', '생활의 축도', '뇌수의 분실分室' 같은 은유법을 통해서, 메모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를 언어의 그림처럼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소화되지 않은 체험이 아니라, 작가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숙성 발효되어 기억으로 존재하는 체험을 글로 재창조해 냈다고 생각합니다.

유혜자 : 이하윤 선생의 이력을 보면 교육계뿐만 아니라 중외일보 학예부 기자를 비롯하여 경성방송,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 언론계에도 계셨기 때문에 직업적인 특성상 메모를 잘하는 습관이 생기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신변 얘기로 출발은 하지만 메모를 안 해 뒀다가 낭패한 일화 등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고 신변잡기가 될 만한 요소를 벗어나 경硬수필화 한 것이 이 수필의 품격을 높였다고 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 자리에서 바로 바로 기록하는 것이라든지, 시상이 떠오르면 망각의 세계로 놓치고 싶지 않아 항상 써둔다는 대목, 그리고 목욕이나 이발하러 가서 연필과 종이가 허락되지 않을 때처럼 메모광에겐 부자유한 시간도 없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창작인의 자세, 곧 품격 있게 쓴 체험적 창작론의 일부로도 여겨집니다. 또 '여기엔 기록되지 않는 어구語句의 종류가 없다 해도… 보잘것 없는 인생생활의 축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고 요약한 결미 부분에서는 꼼꼼하게 정리하고 계획하며 좀더 내실 있게 살려는 생활태도가 느껴집니다. 메모의 중요성과 가치가 주제라고 한마디로만 말하기보다는, 작가의 경력이나 성향으로 볼 때 작가의 인생론과 창작자세가 다 함께 담겨 있는 글로 읽혔습니다.

정진권 : 50년 전의 독후감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교생실습 나가서 학생들과 읽을 때는 상당히 유려하게 여겨졌었는데, 오늘 다시 읽어 보니 거칠다는 느낌이 조금 듭 니다. 저는 메모의 중요성보다는 메모에 집착하는 자신의 성벽을 재미있게 표현한 글이라고 봅니다.

 

사회 : 작가의 과거의 내면적인 체험을 메모에 실어 얘기했다는 말씀과 메모에는 작가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는 말씀, 또 메모라는 소재에 집착하는 자신의 성벽을 주제화했다는 말씀들이 나왔습니다. 이 밖에 또 다른 의견은 없으십니까?

허세욱 : 나는 정진권 선생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작가는 메모에 끌려다니는 나머지 자아상실 지경까지 이릅니다. 그는 로봇이 되었지요. 처음엔 효용성 때문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습관화가 되어 메모를 못하면 견디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아상실을 풍자·자조하면서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김병권 : 50년 전에 읽을 때는 유려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게 여겨진다는 정진권 선생의 말씀에 저도 공감합니다. 지금엔 문장이 멋지다기보다는 오히려 다소 진부하게 여겨지고, 또 요즘에는 메모를 많이 하니까 이런 경험이 보편화되어 있는 시대지요. 특히 글을 쓰는 작가에겐 신선도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아쉬운데, 그만큼 세월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글이라는 얘기가 되겠지요. 만일 이런 글을 요즘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면 오히려 반발을 사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해보게 됩니다. 메모의 중요성·효용가치가 주제라는 견해와 자신의 성벽을 얘기한 글이라는 견해에는 둘 다 수긍합니다. 어쨌든 지금 시점에서는 명수필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사회 : 작가 내면의 체험과 인생관이 들어 있다, 자아를 상실할 지경까지 메모에 집착하고 끌려다니는 습벽을 그렸다 등, 단순히 메모의 중요성과 가치보다 좀더 광의적으로 주제를 넓혀보는 견해도 나왔습니다. 소재와 제재는 너무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므로 생략하고, 이제 문체를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글은 시인이 쓴 글치고는 상당히 논리가 정연하고 표현방법도 그리 감성적인 편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진부하게 여겨진다는 말씀도 나왔으나 50년 전의 글이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세련된 문장으로 보입니다. '메모광'의 문체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정진권 : '기자풍의 괴벽'이란 표현은 그때나 지금이나 실감나고, '환호작약'이란 말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참새가 팔짝팔짝 뛰는 듯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던 것을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껄껄 웃는 대신 빙긋이 웃음 짓는 분이었는데, 이 글 속에는 그런 그분의 은근한 유머나 위트 같은 것이 많이 엿보입니다.

유혜자 : '뇌수의 일부분실을 메모 뭉텅이로 가득 찬 포케트로 만든 듯한 감이 없지 않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서양문학을 하신 분이라 그런지 서구적인 독특한 재치가 있는 분 같아요. 문체는 그 시대에 많이 썼던 긴 만연체 문장을 썼습니다. '가령, 수건과 비누를 들고…'로 시작되는 네 번째 문단은 만연체의 극치로 여겨질 정도지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문장은 부드럽고 우아한 우유체로 보입니다. 한자 투의 단어가 현대 독자들이 읽기엔 걸리지만, 이분이 글을 쓰던 당시에는 그 정도는 보통이었겠지요. 과장되지 않은 정서와 뛰어난 표현력으로 정연한 이론을 딱딱하지 않게 펼쳐서 설득력을 높였다고 봅니다.

주연아 : 이 글을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면 경수필이 아닌 중수필, 주정적이 아닌 주지적인 수필이 되겠지요. 이 글은 주지적 수필이 갖추어야 할 사변성·비판성·지능적인 유머와 위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영문학자라 그런지 날카로운 위트와 함께 유머도 가슴을 건드리는 정적이고 동양적인 유머가 아니라 머리를 건드리는 지적이고 서양적인 유머를 구사했습니다. 서두의 '메모 뭉텅이로 가득 찬 포케트…'라고 한 부분도 읽기에 따라 상당한 유머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지요. 또 '기자풍의 괴벽'이라든지, 결미의 '뇌수의 분실' 같은 표현도 상당히 지능적인 유머가 느껴지는 구절입니다. 군데군데 '상하종횡', '응시숙려', '환호작약' 같은 한자어가 많은 만연체 문장으로 길게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글 전체에서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을 느낄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서양적인 해학과 경쾌하고 경구적인 결미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 : 은근한 유머와 위트가 있다, 만연체 문장에 표현력이 뛰어나다, 주지적인 중수필이다, 현대적 감각에 의한 서양적인 해학이 담겨 있다는 말씀들이 나왔습니다. 그 외에 객석에서도 문체에 대해 말씀하실 분은 해주십시오.

고봉진 : 젊은 날에는 전범적인 수필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읽었으나, 지금 보니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결함이 눈에 띕니다. 우선 첫 문단의 '뇌수의 일부분실分室을… 만든 듯한 감이 없지 않다', 이 부분부터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맨 끝의 '쇠퇴해가는 기억력… 뇌수의 分室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에서 마침내 아, 메모 뭉텅이를 말하는구나, 하고 짐작될 정도로 명료하지 않은 거지요. 언뜻 보기엔 상당히 명쾌한 듯이 여겨지지만 문장의 뜻이 불분명하고 전개가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글을 쓴 분들 중에는 금아 선생처럼 지금의 문장과 바로 통하는 글을 쓴 분도 많은데 이분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경은 : 정진권 선생님은 이 글에 은근한 위트와 유머가 있다고 하셨는데, 상당히 감각적이고 미려한 현대 문장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 저는 오히려 메모광에 대한 설명문처럼 건조하게 읽혀졌습니다. 또 유혜자 선생님께선 이 글을 우유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글이 무슨 우유체인가 하고 좀 의아하게 여겨집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을 실례로 든 부분에서도 비문까지는 아니지만 주술부가 맞지 않는 문장이 보입니다. 중간 이하 '메모를 정리하려고 포케트를 뒤졌으나, 내 노력은 헛것이었다'고 한 부분도 그냥 '허사였다'가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고, 그 밑에 '봉투를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이란!' 혹은 '평소에 드문 편안한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같은 부분도 그 당시엔 어땠는지 모르나 마찬가지로 구투스런 느낌이 듭니다. 김소운 선생님 같은 분의 글은 지금 읽어도 고답적인 느낌이 없는데, 웃음을 줄 수 있는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서술어의 구투스런 느낌 때문에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못하고 문체에서 오히려 글의 품격이 감해진 느낌입니다.

정진권 : 지적하신 '…헛것이었다', 이 문장은 단어의 선택 문제일 뿐 비문非文은 아닙니다. 유혜자 선생께서 말씀하신 우유체 부분을 대신 설명하자면, 문체를 나눌 때 우유체와 강건체 사이에 무수한 단계가 있겠는데, 그렇다면 이 글은 우유체에 상대적으로 가깝다고 보겠습니다. 또 유머와 위트의 문제는 이경은 선생과 나 사이의 받아들이는 시대적 감각의 차이일 것입니다. 김진섭 선생이 번역한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글이 있지요. 그 첫 구절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란 말이 나오는데, '첫가을의 햇볕'이란 말보다 그 말이 '아하!' 싶도록 내겐 가슴에 와 닿거든요. 그리고 '감각적'이란 말은 그 어휘들이 시각적 혹은 청각적인 심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의미일 텐데, 그렇다면 문장이 건조하게 여겨진다는 이경은 선생의 말도 얼마간 납득이 가긴 합니다.

김진식 : 이경은 선생의 견해에 공감합니다. 이분은 학자로서는 존경할 만한지 모르지만 시도 밋밋한 편입니다. 문장이 재미없고 무미건조한 편이고, 인생의 해석에 있어서도 너무 표피적인 표현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허세욱 : 1950년대 외국 서적을 졸속 번역 출판하던 시절의 번역 문투가 드러나 있어요. 한 예로 이중부가어가 많습니다. 끝부분의 '기록되지 않는 어구의 종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또 그 앞 20째 줄의 '거의 사람을 미치지 않을 만한 정도에까지 유도해 주고는 한다' 같은 난삽한 문장이 그렇지요. 그러나 주제를 표현하는 문장이란 면에서는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혜영 : 위트와 유머에 대해 부연하자면,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웃음이 나지는 않았으나 다 읽고 났을 때 웃음이 났습니다. 메모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의 광적인 습벽에 뒷맛으로 오는 유머도 유머가 아닌가 합니다.

 

사회 : 문체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중 가장 걸리는 것은 허세욱 선생님이 지적하신 이중부호 과다인데, 분명 독자가 거부감을 느낄 만한 요소이지요.

이에 마지막으로 문제를 하나 제기하고자 합니다. 텍스트에 밑줄로 표시한 구절이 약 스무 군데 되는데, 이 부분들은 요즘 독자들에게는 별첨한 표와 같이 이중부호 부분이 거의 삭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958년도에 쓴 글을 현대 독자들에게 읽히기 쉽게 한다는 명목으로 후대에서 원본을 고쳐 이본을 낳는다는 것이 작가의 입장에서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소소한 문제는 놔두고 몇 가지 중요 부분만 지적하자면, 20번째 줄의 '미치지 않을 만한 정도에까지 유도해 주고는 한다'는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가곤 한다'로, 중간 이하 부분의 '13, 4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동경 학창에 있을 시절 하루는…' 이 부분은 요즘 어떤 텍스트에 보면 '이미 오래 된 일이지만 나의 학창 시절에'로 임의로 고쳐져 있습니다. 이는 작가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연도와 지명에 대한 상당한 훼손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런가 하면 아예 삭제된 구절도 서너 군데나 있습니다. 만약 내 작품을 남들이 임의로 고쳤을 때 작가적 입장은 어떤 것이라야 할지 지정토론자들께 여쭙고 싶습니다.

정진권 : 고전 경우에는 틀림없는 오자라고 여겨져도 학자들이 주석을 달아서 원형을 보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수정 삭제는 물론, 쉼표 하나라도 고쳐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과서에 실릴 경우에는 국어교육이란 입장에서 심의하여 고치기도 하는데, 교과서란 영구한 것은 아니고 그 작품 자체는 따로 남으니까 예외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요. 앞서 '동경' 학창 시절이란 지명을 삭제하게 되면 그 밑의 '성선省線'이란 말도 고치거나 삭제하거나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공중에 뜬 글이 되어버리는 거지요.

유혜자 : 교과서라 해도 주석을 달고 밑줄을 친다면 모를까, 이 정도로 첨삭한다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봉진 : 전에 박목월 시인의 '가로등'을 합평할 때 보니 그 작품도 여러 이본이 있던데 '메모광'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이 문제는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는데, 그 하나는 교과서에 수록할 목적으로 출판사 편집부에서 손질한다든지 하는 경우로, 이는 드문 경우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작가 생존시에 스스로 고치는 경우로, 이것은 전혀 시빗거리가 아니지요. 한문을 괄호 속에 넣고 한글을 달아주는 정도라면 몰라도, 그 밖에 토씨 하나라도 출판사 편집자가 임의로 첨삭하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식 : 윤필이라는 것이 있지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집자가 원고를 다듬는 것인데, 이때도 필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그의 양해를 얻어 윤필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론 저자 스스로 다듬으면 가장 좋지요.

 

사회 : 오늘 '메모광'에 대해서는 주제·문체·이본異本의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이본 문제를 다룬 이유는 유명한 작품이라 실리는 책에 따라 이본이 많기 때문에 원본과 이본 상의 차이를 파악하고, 또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명예회장께 총정리를 부탁드립니다.

김태길 : 50년 전에는 명문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한 작품이라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교과서에서 이 글을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독후감에 차이를 느낄 것입니다. 이는 지난 50년 사이에 우리 수필이 많은 성장 발전을 했다는 반증입니다. 이하윤 선생은 김소운 선생과 비슷한 연배가 아닐까 싶은데, 그분의 글에 비하면 '메모광'은 옛날체이지요.

유머에 관해서는 이 작품의 유머는 메모를 잘한다는 것을 자랑한 게 아니라 메모의 노예가 된 것을 스스로 웃어준 점이 유머의 원형과 본질에 부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좋은 수필을 쓰려면 메모를 하라는 얘기를 자주 했으나 나 자신은 메모를 한 적이 없습니다.(웃음) 메모를 해서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있겠는데, 메모를 안 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좋은 글감이고, 그냥 잊혀져 버린 것은 별로 대단한 글감이나 착상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메모를 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그런데 예순이 지나면서 메모 버릇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자 수첩이 없으면 초조하고 불안하여 꼼짝도 못합니다. 메모를 하기 전에는 기억력이 좋았으나 지금은 나빠졌습니다. 이렇듯이 장단점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회 : 시간이 허락된다면 회원 여러분의 메모에 대한 습벽도 좀 들어보고 싶었으나 이쯤에서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지정토론자 여러분과 회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