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짝의 다람쥐

 

                                                                                             허창옥

간밤엔 비가 많이 내렸다. 국지적 호우라고 한다. 비는 산골 농가의 처마를 드세게 두드렸다. 소란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떠나와 산골에서 맞은, 게다가 장대비가 내리는 밤은 묘한 두근거림 속에 깊어갔다. 창을 내다보니 숲은 완벽한 어둠에 덮여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들을 후려치는 바람 소리만이 숲이 거기에 있음을 느끼게 하였다. 태곳적 적요와 두려움 그리고 설렘이 있는 밤이었다.

그 밤을 밀어낸 아침은 아주 해맑다. 투명한 금빛이다. 숲 속 어딘가에서 밤을 보냈을 새들이 경쾌한 날갯짓으로 이 가지에서 날아오르고 저 가지로 내려앉는다. 호젓한 길을 혼자 걷는다. 벚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천지다. 나뭇잎에서 이따금 물방울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머리에, 얼굴에 와 닿는 물방울의 감촉이 좋다. 구절초 꽃은 아직 피지 않았고, 칡덩굴은 여름 끝 무렵의 시퍼런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싱싱하다. 산딸기가 언뜻 보여서 쪼그리고 앉는데 뭔가 휙 지나가는 낌새다. 다람쥐다.

다람쥐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다 어느 순간 동작을 멈춘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무 둥치에 네 발을 찰싹 붙이고 납작 엎드려서 죽은 듯이 있다.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나를 경계하는 것일까. 나는 저에게 티끌만한 적의도 없는데. 5분 혹은 10분쯤 지났을까. 다람쥐는 쪼르륵 수직상승을 하더니 이내 휙 옆의 가지로 수평 이동을 한다. 순간 동작이다. 자유자재, 거침없이 움직인다. 내 시선도 수직 수평으로 민첩해진다. 한참을 주저앉아 있으니 다리가 저리다. 나는 인기척을 내지 않을 요량이다. 다람쥐와 함께 하는 고요를 깨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맑은 아침, 삽상한 바람, 새 소리, 나뭇잎들의 나부낌만이 있는 여기는 비어 있으며 동시에 꽉 찬 공간이다. 세계로부터 유리된 별개의 한 세상이다. 지금은 다람쥐와 나 둘만의 시간이다. 여기는 우리 둘이 공유한 공간이며 또한 무한과 닿아 있는 열린 세계이다. 경계도 없고 걸림도 없다.

상수리나무의 거무죽죽한 줄기에 이번에는 황갈색의 작은 몸이 도립倒立을 한다. 그는 지금 세상을 거꾸로 보고 있다. 거꾸로 서서 여유 있게 등에 난 검은 줄무늬와 긴 꼬리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는 자유롭다. 그는 한가롭다. 그런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거기, 당신은 왜 갈 길을 버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가. 나에게서 무얼 보려는 겐가. 나에게서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면 당신은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어릴 적에 불렀던 동요 '산골짝의 다람쥐'의 그 다람쥐에 불과하니까. 내 동작이 자유자재라고? 자유롭다고? 당신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당신은 늘 자신이 부자유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먹이를 벌기 위해 제한된 공간에 있는 육신과 사회적 가치와 종교적 신념에 반하지 않는 한계 속에 존재하는 영혼이 바로 당신이니까.

말하면 그런 점에서는 당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당신처럼 먹이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지는 않는다. 물론 때에 따라선 먹이를 저장하기 위해 둥우리를 만들고 갖다 나르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하나 지나치게 먹이를 탐하지는 않는다. 또 헛된 이름을 구하지도 않는다.

한 마리의 다람쥐 그 이상이 되기를 결코 바란 적이 없다. 나는 여기 풀꽃처럼 햇빛에 피었다가 바람에 스러지는 하나의 자연물일 뿐이다. 그러기에 많은 시간을 나무타기를 하며 보낸다. 이것이 나의 생활이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 숲은 다 나의 공간이며 또 우리 무리의 삶터이다. 내 것과 네 것이 따로 있지 않고 너와 나의 경계가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자유롭고 풍요하며 질곡이 거의 없는 삶을 사는 탁월한 존재이다.

나는 당신의 그 시선의 의미를 안다. 내가 가진 무한의 자유,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누리는 나의 삶을 당신은 지금 탐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무엇보다 이 숲, 이 대자연의 품속에 사는 나를 거의 질투에 가까운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고 있다고 당신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나라고 별 수 있겠나. 내가 사는 숲도 크게 보면 쳇바퀴 속이나 다름없다. 거대한 쳇바퀴, 그 나무가 그 나무인 숲에서 죽을 때까지 도토리나 찾는 게 나의 일상이다. 하지만 자유란 시간이나 공간의 문제는 아닌 게다. 나는 자유롭다. 당신처럼 온갖 것을 다 붙잡고 아등바등하지는 않으니까. 이를테면 나는 그 자유라는 걸 누릴 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당신과 나의 차이라고나 할까.

 

순간 동작, 다람쥐는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숨긴다. 그와 나의 짧지 않은 소통이 끝난다. 양 손으로 무릎을 짚고 일어서니 다리가 휘청거린다. 고개를 들어 죽죽 뻗은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우거질 대로 우거진 나무들이 팔을 섞어서 하늘을 가리고 함께 서 있다. 숲은 아름답다. 숲에는 다람쥐 한 마리 그리고 수많은 다람쥐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숲은 더 아름답다.

다시 숲길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나는 산골짝의 다람쥐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