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정원

 

                                                                                          김녹희

그건 참 기이한 경험이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극적 성격이라 해도 여행지의 새로운 풍물을 대하면 설렘에 싸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곳에선 여름 한낮의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볕도 열기를 잃을 만큼 음습한 한기를 느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과 단둘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하와이의 한 작은 섬으로 여행을 갔다. 파인애플을 재배했다던 섬 '라나이'는 주민들이 몇 되지 않는 아주 조용한 휴양지였다. 참빗으로 빗겨 내린 듯 가지런히 반짝이는 야자수 잎새, 바닷가 한 켠에 조성한 나지막한 호텔과 멋진 정원, 무성한 나무마다 가득 피어 있는 원색의 정열적인 꽃, 방안까지 호르르 날아드는 새들, 나무 그늘에서 얼굴을 내밀곤 하는 새끼손가락만한 도마뱀까지 그곳은 듣던 대로 파라다이스였다. 섬의 방문객들은 낙원 속에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골프장을 찾았지만, 우리는 골프도 수영도 할 줄 몰라 지프를 빌려 관광길에 나섰다.

섬 가운데 자리한 얼마 안 되는 인가를 벗어나니 꽃이 핀 나무도 숲도 전혀 볼 수 없는 불모지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 덩굴뿐 황야엔 오직 남편과 나뿐이었다. 오랜 가뭄에 시달린 듯 누렇게 마른 잡초 수풀 사이로 붉은 흙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차가 가야 하는 흙바닥에 무수한 검은 나비가 내려앉아 너풀거리는 게 아닌가. 놀라 자세히 살피니 그건 땅에 박아놓은 까만색의 비닐조각들이었다. 찾는 이가 길을 잃을까 염려해 표시해 놓았을, 수천 개의 비닐조각이 검은 나비 떼처럼 바닥 가득 너울대는 그 길은 마치 음침한 지하세계로 인도할 것만 같아 오싹 무섬증이 일었다. 누군가 재료비를 안 들이고 눈에 확실히 뜨이는 걸 추구해 세상에서 가장 으스스한 길을 창작했나 보다. 그냥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왕 나선 걸음이라 '신들의 정원'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신들의 정원은 이렇게 먼 길목에서부터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들의 휴식터를 인간이 들여다본다는 게 불경스런 일이어서일까. 드디어 팻말이 보였다. 그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이 황무지 끝에 문득 신기루처럼 아기자기한 에덴동산이 나타나겠지… 거기에서 콜라나 커피를 팔고 있을 찻집 주인은 사람 구경을 못해서 얼마나 심심할까… 그때까지의 두려움이 일시에 사라지며 눈앞에 펼쳐질 경이로운 풍경을 빨리 보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신들의 정원'이라고 쓰인 낡은 나무 팻말을 지났는데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의아해 하는데 한순간 잡초가 사라지며 불쑥 돌무더기들이 나타났다. 길은 이제 끝나서 짙푸른 바다를 향한 낭떠러지가 있을 뿐이었다. 구릉을 이룬 붉은 땅에 가득 들어선 거무스름한 둥근 바위 떼. 그런데 그들은 특이하게도 겨울에 만드는 눈사람과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어른 키만 한 것, 어린애 같은 것… 즐비하게 서 있는 그들이 눈에 들어온 순간 돌인데도 마치 숨쉬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듯 섬뜩한 한기가 들었다. 생명체의 그림자도 안 보이는 괴괴한 고요가 그런 공포심을 일으킨 걸까. 에덴의 동산을 기대했기에 너무나 삭막한 그 장면이 더욱 기괴했던 걸까.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다. 참고 있으려니 가슴에 통증이 왔다.

남편은 거기까지 왔는데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나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빨리 돌아가자고 그를 재촉했다. 신들의 정원을 급히 빠져나오는데 느닷없이 로빈슨 크루소가 떠올랐다. 그가 떠내려갔던 무인도에서 겪었을 두려움과 막막함을, 그 섬을 절망도라 이름 지은 심정을 그 순간 절절이 이해할 수 있었다.

차가 인가로 들어서자 그제야 라나이 신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들은 왜 그렇게 황량한 곳을 정원으로 삼았을까. 그리스의 신들은 위대한 능력과 눈부신 아름다움을 뽐내며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느라 고독할 틈이 없었을 텐데, 그곳의 신들은 얼마나 외로웠기에 인간의 형상을 한 돌무더기들을 세워놓고 그들 곁을 거닐었을까. 신들도 인간을 그리워하는가.

그러고 보니 나를 내내 휩싸던 두려움의 정체는 사람들과 멀리멀리 떨어진 데 대한 불안감이었다. 생명체에 대한 맹목적인 그리움이었다. 아니 좀더 좁혀 말한다면 내 나라 내 이웃 속에 섞이고 싶은 갈망이었다. 로빈슨 크루소가 생각났던 건 그 까닭이었나 보다.

그 갈망을 다른 곳에서 또 만났다. 집으로 돌아오려 호놀룰루 비행장으로 향하던 택시 속이었다. 한국인인 택시기사는 우리말에 허기진 듯 쉴 새 없이 얘기했다. 그는 이민한 지 20년 되었고, 하와이에서 나름대로 성공하여 좋은 집에서 살며 일년에 몇 차례 해외여행을 한다고 했다. 택시 운전은 정년퇴직 후 탄력을 잃을까 건강을 위해 한다며, 집엔 한국서 알아주는 금딱지 롤렉스 시계를 비롯해 그동안 마련한 명품들이 수두룩한데 거기선 하고 갈 데가 없는 걸 아쉬워했다.

돈은 이제 넉넉한데 해외여행을 해도, 무얼 해도 통 재미가 없어요."

그가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가 살아가는 재미가 없는 건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고국의 친구들과 어우러져 살고픈 갈망 때문이었을 게다. 관심 가져주고, 함께 식사하고, 사소한 일상사를 얘기하며 형제 같은 정을 나누고픈 그의 간절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겐 호놀룰루 곳곳에서 붐비는 인파가 '신들의 정원'에 즐비하게 서 있던 돌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도 나처럼 살아 숨쉬는 생명체를 갈구했던 것이 아닐까.

매연에 찌든 공기, 거리의 부산함,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피해 섬을 찾았던 나는 『심심한 천국, 재미있는 지옥』이란 책제목처럼 온갖 공해와 소란이 가득한 서울이 몹시 그리웠다.

 

 

<수필문학>으로 등단. 전 에세이 포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