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사이로 흐르는 음률

 

                                                                                          정부영

우리는 고성(古城)이 보이는 이층으로 자리를 잡았다. 사암으로 지어진 성채(城砦)는 스러지는 석양빛을 받아 황갈색을 띄고 있다. 조금 전 썬셋 포인트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햇빛을 그대로 되쏘아 황금성이라는 이름대로 화려하고 장중하여 해가 마지막 모래 언덕을 넘어갈 때까지 바라보았다. 한 가닥 여운이 남아 저녁 식당도 근처 야외식당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비닐로 된 허름한 식탁보가 얼룩져 있었지만 그동안 인도 여행에서 보아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고성을 향해 의자를 돌려 앉는다.

12 세기에 지어진 자이살메르 성은 사막 한가운데 높이 떠서 옛 라자스탄의 자취를 그대로 품은 채 이방인에게 꿈과 환상을 선사한다. 어슴푸레해지자 햇빛은 불빛 조명으로 바뀌어 여전히 동화 속 그림을 보는 듯하다. 도시의 회색 숲과 반복되는 일상에서 떠나 다른 세계를 접하고 싶어 떠난 여행이지만 이번에는 냉혹한 현실과 원시적 행태를 보는 여행이기도 했다.

식당에는 우리밖에 없다. 인도 음식인 난과 버터치킨을 주문하고 맥주도 시켰다. 하얀 폭스바겐으로 우리 둘을 안내한 여행사 기사는 우리를 식당으로 안내하고 자기도 같이 앉고 싶어하는 눈치다.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남아 있어 기사 신분으로는 여행객과 같은 장소에 있을 수도, 더구나 한 테이블에는 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 원칙이 이 나라에서는 통하질 않는다. 나는 조금 망설였다. 저들의 풍습과 전통에 맞춰 신분의 차이를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평등과 휴머니즘적인 배려로 자연스럽게 합석을 해야 할지 생각을 고루고 있었다. 우리는 같이 앉기로 했다.

우리의 배려가 좋았는지 그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려고 라자스탄의 악사를 불렀다며 작은 럼주를 가지고 식탁에 마주 앉는다. 음식이 나오고 잔을 마주쳤다. 어린아이를 낀 몇 명의 악사 가족은 우리만을 위해 식탁 밑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민속 음악을 켜기 시작한다. 아코디언(하루모니움)과 북(따불라), 그리고 캐스터네츠 같은 고유의 악기로 장단을 맞추며 목청을 돋운다. 그 노래는 드넓은 사막의 밤하늘을 가르며 처절하고 촉촉하게 울려 퍼진다. 왜인지 나는 그 곡조가 단조로만 들린다.

타르 사막은 무덥고 건조한 곳이다. 변화가 없고 외로운 사막의 유목생활을 이런 노래로 달래었나 보다. 수많은 별빛과 낙타와의 기나긴 여정, 척박한 사막생활의 비애와 고달픔, 그 속에서 싹트는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나 노래로 전해준다. 마을의 역사도 담고 왕과 영주들의 영웅담이나 희로애락, 사랑 얘기도 줄줄이 노랫말로 엮어 곡에 담았다. 어떤 곡은 우리의 판소리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나는 흥이 솟아오르질 않는다. 어설픈 춤을 추는 대여섯 살 아이의 재롱이 안쓰럽고 말끔히 쳐다보는 눈길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악사로 대물림을 받아야 하는 아이의 운명이 조금은 서글프다. 악사 가족은 낌새가 이상하다 느꼈는지 혼신을 다하여 이 곡 저 곡 레퍼토리를 바꾼다. 빠른 박자의 노래도 부르고, 팔을 내젓듯 춤사위를 곁들인 능숙한 캐스터네츠의 장단도 멋스럽다. 그러나 역시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루피 지폐가 오갈 때마다 한 곡씩 불러 제켰지만, 밥맛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공연히 어수선하기만 하다.

더 낮은 위치에 앉기 위해 찬 시멘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야만 하는 그들의 신분제도란 무엇인가. 대부분이 천막생활을 하며 하루에 한두 끼밖에 식사를 못하는 악사 가족들. 식탁 아래서 목청을 돋우어야 하는 노랫소리는 혹 절규가 아닐까. 그것은 순간 비명으로도 들렸다. 그들의 등 뒤로 비치는 붉은 불빛이 마치 '절규'라는 그림에서 보는 핏빛과 같아 보인다. 조금 전에 본 구름과 뒤섞인 잔광의 야릇한 색깔이 주는 혼란을 떠올리게 한다. 입을 한껏 벌리고 소리 없는 고함을 치는 '절규'의 그림 속 인간, 문명 속의 사람들. 소외의 바다에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고독과 아픔을 거기서는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저들은 그런 차원의 소리를 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편안하고 안락하지 못한 현실 ─ 그때그때 해결해야만 하는 한 끼의 식사, 딱딱한 모래땅 막사에 지친 몸을 눕혀야 하는 고달픔, 더 나아질 것도 없는 신분의 벽. 이런 것들에 대한 외침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힘든 하루 하루를 보내는 그들에게 남의 마음을 달래주는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생활이라는 게 우습고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인도 기사는 익숙한 듯 음악에 취해 즐기고 있다. 한 자리에서 같이 식사를 나눈 것에 고마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여행의 재미를 더해 주려고 우리를 곧잘 마하라자(왕)와 마하라니(왕비)로 불러주곤 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노래를 마치고 돌아서 나가는 그들의 흰 눈빛이 식탁을 훑고 지나간다. 순간 그 눈의 광채가 왜 그리 강하다고 느껴졌을까. "아! 배고파" 하는 눈빛 같다. 내 식욕은 가셔버리고 말았다. 왜 불러 세워 나누어주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결국 음악을 즐기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저녁식사는 되질 못했다. 아무래도 나는 마하라니는 되질 못하나 보다.

지난번엔 우리가 묵은 호텔 정원에서의 식사 시간이 이들의 향연으로 축제 같았다. 열 명 정도의 악사들이 연주하고 한껏 치장한 무희들이 민속무용을 곁들이며 화려한 저녁을 대접했다. 여기저기 큰 화로에 피워놓은 모닥불에선 불꽃이 튀어오르며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대부분이 은퇴하고 홀가분하게 여행온 서구 관광객들로 그들은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여유 있게 식사를 즐겼다. 거기에 악사들은 뽑혀진 직업인이었고, 많은 여행객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니 만큼 애처롭거나 안쓰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라자스탄만의 다양한 음률, 애조 띤 음색이나 독특한 풍취를 한껏 느껴볼 수가 있었다.

별빛이 무수히 흐르는 밤하늘에서 자이살메르 성은 위엄 있게 주위를 굽어본다. 모래 덩어리로 지어졌지만 단단하고 아름답다. 어떻게 그들은 이렇게 많고 다양한 문화유적을 지니게 되었을까. 그러면서 그들의 역사와 풍습과 의식을 되짚어본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닌 듯싶다. 어쩌면 물질문명에 젖어 있는 내가 올바르게 보질 못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안 되었는지도 모른다.

라자스탄의 악사들은 그들만의 생활의식과 그들도 감지 못하는 철학이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겐 제도나 틀에서 느껴지는 갈등조차도 삭여내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체념 섞인 지혜가 있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삶의 고통을 이겨낸 후에 더 성숙해졌을 수 있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아냈을까. 아마 그들의 종교,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가르침인 것도 같다. 그들의 믿음도 분석하고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 하얗게 광채를 띠는 눈빛은 비굴과 원망이라기보다 혼신을 다해 노래를 선사한 후에 오는 긍지랄까 만족, 그런 것이 비쳐진 것일 게다.

고스란히 남은 '난'은 싸가지고 갈 참이었다. 그러나 기사는 의아한 듯 힐난하듯 말린다. 내일 아침이면 'many many people'이 먹을 것을 가지러 음식점을 기웃거린다며…….

어디선가 북과 아코디언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가 청아하고 투명하게 퍼져나간다. 그들의 노래는 외침이 아니라 마음 속을 흐르는 강줄기 같은 깨달음일 것이다. 절규가 아니라 마음을 순화시키는 가락과 음유시어들이다.

 

 

<계간 수필>로 등단(97년). 한국문인협회 회원. 이대 동창문인회 회원.

공저 『하늘을 보면 눈이 시리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