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서 즐거움을 낚다

 

                                                                                             정경희

'늪'은 왠지 말만 들어도 칙칙하고 오싹 소름이 끼친다. 나는 늪을 떠올리면 무섭고 두려운 곳이라고 먼저 생각하게 된다. 수면의 침묵이 더 무거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래서 위험한 곳과 나쁜 일에 뛰어들어 절망할 경우 '늪 속에 빠졌다'라고 하거나 '늪에서 헤맨다'고 하나 보다. 그러나 반드시 늪에 빠져 헤매는 것이 비참하고 고통과 슬픔만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지난 오월 우포늪에 갔다. 겨우내 시린 바람을 끌어안은 우포늪은 온통 푸르러가고 있었다. 생이가래, 가시연꽃, 마름, 골풀들이 늪을 가득 채우고 논병아리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어 더없이 평화로웠다. 둑 한쪽엔 민들레가 노랗게 웃고 있었고, 보리이삭들이 패어 바람 따라 살랑거렸다. 그 아래 우포늪의 할 말을 대신이라도 하듯 자줏빛 자운영이 흐드러지게 피고, 찔레꽃 향기가 늪에 화사함과 생기를 불어넣었다.

늪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온 오월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늪'의 이미지가 무섭다기보다 정겨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남편만 믿고 따라온 도시는 낯설었고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느낌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에 흰나비가 가여운 날개를 팔랑거리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제 짝을 찾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집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엄마가 집 나간 아이를 찾는 것도 같았다. 날개 젖은 한 마리 나비, 내가 그 신세 같았다.

담장 밖의 세상이 궁금했다. 그곳은 어릴 적 보던 만화경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 같았다. 벗어나고 싶었다. 내 안에 무엇인가 고개를 빳빳이 치켜드는 게 있었다. 또 다른 나였다. 수없이 생채기를 내고 나를 안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끊임없는 갈망의 날들.

나비처럼 날고 싶었다. 낮은 온도에서는 날 수 없는 나비, 날기 위해서는 제 몸이 뜨거워져야 하는 나비. 뜨겁게 용솟음치는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나에게 날고 싶은 의지를 심어주었다. 이왕이면 모나코 나비가 되고 싶었다. 멕시코 계곡에서 겨울을 난 뒤 유럽까지 지구의 반 바퀴를 도는 정도의 먼 길을 쉬지 않고 나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다. 유난히 단풍이 붉던 그 해 가을이 그렇게 늪으로 나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일탈을 꿈꾸는 길이었다. 그곳엔 일상을 벗어난 자유가 넘실거리고, 가슴을 옥죄인 행복이 있었다.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학창 시절의 편지를 꺼내 읽으며 잠자던 감성을 깨우고, 일기장에 넋두리를 맘껏 풀어놓았다. 마음 맞은 벗들과 같이 들뜨고, 같이 마음 아파하는 동안 그들은 소중한 인생의 동반자들로 여겨졌다.

집안에서만 맴돌던 좁은 시각이 산과 들, 강과 바다로 넓어져 갔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민달팽이, 밭둑에 낮게 핀 꽃다지, 강아지풀에 앉은 이슬…….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에도, 계절의 변화에도 항상 새롭게 눈이 뜨였다. 보통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글 쓰는 일이 한량 같겠지만 자연 속에 같이 있으면 친구처럼 편안해지고 절로 교감이 이루어졌다. 고달픈 니힐리스트처럼 비관하고 방황했던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지난 시간들은 늪 속에 침잠되어 있다. 늪 속의 가라앉은 시간들을 하나씩 헤집어 보기로 했다.

수억 년 침묵을 흔드는 수초들의 씻김굿, 그 소리에 갯버들이 긴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우는 듯했다. 지난 세월이 물장지뱀같이 수면 위를 재빠르게 달렸다. 나는 점점 늪으로 빠져들었다. 제일 먼저 엄마의 한을 꺼내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라고 마음 속으로 불러만 봐도 가슴이 조여 오고 목이 메어왔다. 거기엔 늦은 밤 술주정하는 아버지가 졸고 있고, 한을 삭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있고, 하얀 교복을 입은 소녀가 깍두기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며 울부짖고 있다.

유년의 밑바닥을 기어다니며 각혈하듯 하얀 종이 위에 접혀진 꿈들을 뱉어놓는다. 세일러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합창부, 금술을 찰랑이며 연주하는 밴드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분장을 하고 변신하는 연극부……. 그러나 가난 때문에 번번이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던 꿈들.

글 쓰는 고통이 즐거운 건 누구와도 교감하지 못한 또 다른 내가 있기 때문이다. 며칠을 앓는 불면의 밤과 열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작품이 되지 못한 채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하고, 머릿속에서만 떠돌다 사라지는 상념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놓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피 토하는 치열함 뒤에 보람이 있고, 고통을 보듬어 삭이는 중에 내가 성숙해짐을 느낀다. 충만한 아픔과 가슴 벅찬 슬픔을 줄줄이 스파게티처럼 감아올려 며칠을 뒤척이다 보면 내림굿이 펼쳐지듯 무어라도 한 구절 건져올리게 된다. 그럴 때의 기쁨을 어디에 비할까. 떠도는 상념들도 시간이 점점 지나면 언젠가는 밭둑의 자줏빛 자운영으로, 칠월의 땡볕 아래 가시연꽃으로 화사하게 피어날 거다.

 

늪은 고요하다. 고여 있으나 수많은 생명이 끊임없이 살아 숨쉰다. 나는 때때로 늪의 고동 소리를 듣는다. 내 안에서는 새 떼들이 날갯짓을 하고 물풀들이 춤을 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뒤척이다가도 이내 잠잠하게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늪, 그 깊은 세계를 향하여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2004년). 안양문협 회원.